/AP 연합뉴스 지난 22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건물이 성조기와 손상된 전투기가 놓여진 미 군함의 모습이 그려져있고 영어와 페르시아어로 '바람을 뿌리면 회오리바람을 거둔다'는 글귀가 쓰여있다.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대한 항전의지를 담은 글과 그림으로 보인다. |
이란은 1979년 루홀라 호메이니를 앞세운 이슬람 시아파 근본주의 세력이 친미 팔레비 왕정을 축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중동에서 가장 서방 친화적이고 세속적인 성격이 강한 나라였다. 미국과 밀착해온 팔레비 왕정은 ‘백색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강력한 서구·세속화 정책을펼쳤다. 당시 이란의 풍경은 젊은이들이 최신 유행하는 미국 팝송 등 대중문화를 즐기고, 여성들 역시 미니스커트와 청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그러나 급격한 서구화 정책에 대한 보수 진영의 불만과 빈부 격차에 따른 경제난으로 바닥 민심은 악화했다. 이런 틈을 타서 대표적인 반정부 지도자였던 호메이니가 이끄는 시아파 근본주의 세력은 1979년 4월 팔레비 왕정을 축출하고 이슬람공화국을 선포했다. 국가 형태를 이슬람 근본주의에 입각한 신정체제로 바꾸면서 공화국의 형태를 띈,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이른바 신정(神政) 체제를 수립했다. 혁명을 이끈 호메이니는 대통령보다도 막강한 권한을 지닌 ‘최고지도자’가 됐다.
이를 기점으로 왕정을 후원하던 미국과 집권 이슬람 세력은 관계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지미 카터 미국 행정부가 신병 치료차 미국행을 요청한 팔레비 국왕를 받아들인 것이 기폭제가 됐다. 이슬람 체제 수립 7개월 뒤인 11월 급진 학생운동 세력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 난입해 미국인 52명을 무려 444일 동안 억류하면서 할리우드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소재 등으로 여러 차례 등장했던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완전히 파탄에 이르렀다.
미국 역대 행정부는 이후 이란과 크고 작은 악연으로 엮였다. 카터 행정부는 미국 내 모든 이란인의 자산을 동결하며 집권세력에 타격을 안겼다. 이후 집권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이란에 무기를 밀매한 수익으로 중미 니카라과의 친미 반군을 지원했다는 ‘콘트라 사건’이 발생했다. 1988년 7월에는 페르시아만에 있던 미국 순양함 빈센스호가 이란 여객기를 군용기로 오인해 격추해 290명이 사망하는 비극도 벌어졌다.
빌 클린턴 행정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평화협정의 방해 세력이라고 간주한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 고삐을 더욱 단단히 죄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2002년, 이란을 이라크,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그 해 2002년 이란 반정부 조직이 이란이 나탄즈와 아락에 핵 시설에서 핵을 개발하고 있다고 폭로하면서 이란의 비밀 핵개발이 국제사회의 핵심 이슈가 됐다. 이에 미국 주도의 강력한 경제 제재가 단행되면서 미국과 이란은 국제사회 최악의 불구대천 원수가 됐다.
두 나라의 관계는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때 전환점을 맞았다. 이란·쿠바 등 오랜 적성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었던 오바마 행정부의 주도로 2015년, 유엔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과 독일 등 여섯 나라가 이란과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이라고 불리는 핵협상을 타결했다. 이란이 국제 사회의 핵감시 체제를 적극 수용하는 대가로 경제 제재를 풀어주는 내용이다. 족쇄가 풀린 이란이 중동의 강국으로 단숨에 발돋움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랐다. 그러나 이듬해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 당선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양국 관계는 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후보자 시절부터 이란 핵합의를 재앙적 최악의 거래라고 몰아붙였던 트럼프는 1기 두번째 해인이란 핵합의를 전격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전면 복원했다. 그리고 이란의 중동 내 숙적이었던 이스라엘과 강력하게 밀착했다. 2020년 1월에는 이란군의 영웅으로 꼽히던 카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사령관이 이라크 바그다드체류중 미군이 주도한 무인기 공격으로 사망했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집권한 이란에서는 강력한 이슬람 세력 집권 하에서 부정선거의혹, 생활고, 인권탄압 등의 사건이 불씨가 돼 반정부시위가 벌어졌다가도 당국의 강경 탄압으로 사그라드는 일이 반복됐다. 개혁파 대통령이 집권해 서방과의 관계를 도모하다가도 흐지부지됐다. 2024년부터 잇딴 정치적 격변이 벌어졌다. 1989년 사망한 호메니이의 후임인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온 성직자 출신 보수 강경파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이해 5월 헬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뒤이어 열린 보궐 선거에서 의사 출신의 온건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스라엘에 맞서 이란이 후원하는 이른바 ‘저항의 축’인 팔레스타인 하마스,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가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의 강력한 공격으로 지도부가 붕괴되거나 중대한 타격을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듬해 1월 ‘트럼프의 귀환’으로 인해 이란과 미국의 전운은 더욱 짙어졌다. 2025년 6월 이스라엘과 미국이 잇따라 이란의 핵시설을 타격했다.
이란 핵합의가 파기된 뒤 조 바이든 행정부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중동의 대표적인 중재국가인 카타르·오만 등의 관여로 이란과 간접 협상을 벌여왔다. 그러나 핵의 완전 폐기를 요구하는 미국과 핵을 최소한의 생존 수단으로 간주하는 이란간의 입장 차는 끝내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으로 이어지게 됐다.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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