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겸 가수 김준수는 '비틀쥬스'를 또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억했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그 어느 도전보다 결심을 크게 먹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100억살 유령이라는 파격적인 캐릭터에 뛰어든 순간, 스스로도 "이게 맞나" 싶은 마음이 들 만큼 낯설고 새로운 선택이었다. 베테랑 뮤지컬 배우인 그에게도 쉬운 도전은 아니었고, 그를 오래 지켜본 팬들 사이에서도 우려와 기대가 교차했다.
팀 버튼 영화의 상상력을 블랙 코미디로 풀어낸 이 작품에서 김준수는 뮤지컬의 틀을 깨는 '비틀쥰스(비틀쥬스를 맡은 김준수 배우 애칭)'로 변신했다. 지금까지 그가 맡아온 진중한 캐릭터들과 결이 다른 인물이다. 그는 "저도 그걸 알고 도전을 했다"며 "막상 무대에 올라 보니 걱정했던 것보다 반응이 훨씬 좋아 다행이다. 뿌듯하기도 하다"고 웃었다.
◆ "웃기는 거 좋아해요"…개그 본능, 블랙코미디 '비틀쥬스' 도전기
김준수가 이 작품에 끌린 이유는 다름 아닌 '웃음'이었다. "원래 웃기는 걸 좋아한다"는 그는 "정말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는 거의 개그맨"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진지한 작품을 하더라도 웃길 수 있는 장면이 나오면 애드리브를 더하며 "타율이 높은 편"이라고 자부해왔다. 특히 '알라딘'처럼 밝은 작품을 경험하며 객석을 가득 채운 웃음과 아이들의 '까르르' 소리를 들었을 때, 배우로서 또 다른 보람을 느꼈다고 돌아봤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작품이 '비틀쥬스'였다. 작품 초연 당시 제안을 받았지만 다른 일정으로 함께하지 못했지만 이번 재연에서 연을 맺었다. 그는 "배우로서 안주하지 않고 나 자신을 깨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며 "이걸 해내면 더 배우로서 성장하고, 더 좋게 봐주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다만 욕심은 곧 불안으로 바뀌기도 했다. 계약 후에도 '내가 왜 그랬지' 싶은 마음이 올라왔고, 연습실에서는 "도망가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중 하나가 '욕'이었다. 그는 "평소 욕을 안 하는 걸로 오해받는 이미지가 오히려 '족쇄'였다"며 "작품 안의 욕이 캐릭터와 어울려야 하는데,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컸다"고 했다.
◆ 속사포 대사·슬랩스틱·마술…"자다가도 AI처럼"
'비틀쥬스'는 웃기기만 하는 작품은 아니다. 김준수는 이를 두고 "두세 개 작품을 동시에 연습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대사는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지고, 빠른 호흡으로 속사포처럼 쏟아내야 한다. 그 와중에 의상 속에 숨겨둔 소품을 꺼내 정확한 타이밍에 '마술'까지 해내야 한다.
무엇보다 비틀쥬스의 음악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루프가 없는 구간은 그 안에 대사를 다 욱여넣어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정해진 박자 안에 말과 동작을 맞추지 못하면 곧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버린다. 그는 "자다가도 버튼 누르면 AI처럼 대사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체득'이었다. 침대에 누워 대사를 시작하면 끝까지 가느라 "3시간을 못 자는" 날도 있었다고 했다. 한 번 막히면 처음부터 다시, 몸이 먼저 반응할 정도로 만들었다.
특히 넘버 '세이 마이 네임'은 극의 고난도가 응축된 구간으로 꼽았다. 노래 자체보다 제스처와 슬랩스틱, 상대와의 타이밍이 음악 안에서 딱 맞아야 한다. 처음엔 부담이 컸지만 일단 체화하고 나니 오히려 "너무 재미있는 넘버"가 됐다고 했다. 배우로서 느끼는 부담의 방향도 다른 작품과 달랐다. 김준수는 "예전엔 노래를 클리어해야 한다는 압박이 컸다면, 이번엔 노래 부담은 거의 없어요. 대신 대사를 얼마나 텐션 있게 살리느냐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 "한 신이라도 다르게"…애드리브는 예의이자 '즐거움'
공연이 시작되자, 연습실의 괴로움은 무대 위의 자유로움으로 바뀌었다. 김준수는 "이 캐릭터의 자유로움이 너무 익숙해져서, 다시 틀 안의 작품으로 돌아가는 게 두려울 정도"라고 했다. 그 자유로움을 완성하는 건 관객 반응과 배우들 간 티키타카다. 그는 특히 "중후한 남성 관객이 크게 웃을 때" 희열이 크다고 말했다.
'비틀쥬스'의 애드리브는 즉흥이라기보다 '진화'에 가깝다. 배우들이 서로 모니터를 하며 받은 것을 다음 회차에 되돌려 주고, 반복의 미학으로 웃음을 키운다. 김준수는 "이른바 'N차 관람(같은 극을 2회 이상 관람하는 현상)'이 많아질수록, 적어도 한 신이라도 다르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긴다"고 했다. 이미 시작한 만큼 "끝까지 한 신이라도 똑같은 게 없게" 가보겠다는 게 배우의 마음이다.
그가 말하는 애드리브의 원칙은 '캐릭터의 논리'였다. 예컨대 죽는 장면에서 유언처럼 감정선을 쌓기보다, '죽음의 두려움이 없는 존재'라는 설정을 더 밀어붙여 오히려 엉뚱한 말로 웃음을 만들었다. "원래 죽어 있던 상태에서 잠깐 인간이 됐다가 다시 돌아가는 거"라는 캐릭터의 관점을 끝까지 가져가면, 관객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판단에서다.
이 작품이 남긴 가장 큰 변화를 묻자 김준수는 "이제 어떤 배역이 와도 예전만큼 무섭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스스로도, 팬들도 '안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던 캐릭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해낸 경험이 자신감을 남겼다. 그는 "관객과 팬이 있기 때문에 도전도 가능하다"며 "시간을 내서 보러 와주는 분들에게 '표값이 아깝지 않다'고 느끼게 하는 게 유일한 사명감"이라고 했다.
그 사명감은 쉴틈 없이 다음 무대로 이어진다. 김준수는 3월 10일부터 뮤지컬 '데스노트'의 '엘(L)' 역으로 또 한 번의 변신에 나선다. 상반기에는 10년 만의 정규 앨범 발매도 예정돼 있다. 그는 "올해는 정규 앨범과 함께 콘서트 계획도 있다"며 "'데스노트'를 마친 뒤에도 뮤지컬과 콘서트로 계속 관객을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뮤지컬 '비틀쥬스'는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LG SIGNATURE홀)에서 오는 3월 22일까지 공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