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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게 비슷한듯 다른 '춘절', 신병처럼 눈치껏 물어보고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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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준 자유기고가]
대만의 가장 큰 명절 '춘지에(春節, 춘절)' 연휴가 끝났다. 춘절은 한국의 설날에 해당하는 명절이지만, 그 규모나 의미는 설날과 한가위를 합친 정도로 크다. 개인적으로 대만으로 이주한 후 세 번째 맞은 춘절 연휴를 보내고, 한국인 사위의 눈으로 본 대만 명절 관찰기이자 생존기를 적어 보려 한다.

무엇보다 춘절 연휴는 무척 길다. 두 번의 주말을 끼는 것이 보통이다. 올해 역시 2월 14일부터 22일까지 장장 9일 동안이 공휴일이었다. 긴 연휴 동안 대가족과 공동체의 다양한 행사들이 이어지다 보니 일정이 없는 쉬는 날을 두어야 할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출퇴근이 없는 프리랜서다 보니 직장을 쉬는 혜택 없이 연휴에도 일이 계속 이어졌다. 거기에 9일 동안 아기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연휴에는 식당이나 상점들도 쉬는 경우가 많다. 며칠 동안은 쓰레기와 재활용품 수거도 없다. 그래서 연휴 전부터 이것저것 준비할 것들이 제법 많았다. 재활용품과 음식물 쓰레기는 연휴 시작에 맞춰 깔끔하게 비웠다. 연휴를 맞기 전에 아기 기저귀와 분유 등을 점검하고, 집에서 먹을 음식과 간식도 채워뒀다. 친척 집 방문 때 가지고 갈 선물과 빨간 봉투 그리고 봉투에 넣을 현금 준비도 빼놓을 수 없는 명절 준비다.

명절을 코앞에 둔 금요일 오후, 장인과 처형과 함께 '디화제(迪化街)'에 나갔다. 디화제는 해마다 춘절을 앞두고 장을 보러 가는 전통시장으로 100여 년 전에 타이완에서 생산되는 차(茶)가 인기를 끌면서 차를 수출하는 항구로 번성했던 '다다오청(大稻埕)' 지역의 핵심 상권이다. 100년이 넘은 당시 서구식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고, 거리 곳곳에 차와 약재, 말린 과일이나 생선을 비롯해 다양한 전통음식을 판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지만, 춘절을 앞두고는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이 거리가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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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다오청(大稻埕)' 지역으로도 알려진 '디화제(迪化街)'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춘절을 앞두고 장도 보고 명절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디화제 전통시장을 찾곤 한다. ⓒ필자



아이를 데리고 나오기 힘들 것 같아서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왔는데, 정작 유모차를 타거나 아빠에게 안긴 아기들도 제법 볼 수 있었다. 춘절을 앞두고 굳이 디화제에 나가는 이유는 장을 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명절 분위기를 느끼고, 길거리에서 파는 간식이나 음료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도 많다. 이국적인 명절 분위기를 맛보러 나온 외국인 관광객도 가끔 눈에 띄었다. 주로는 친척 집을 방문할 때 가져갈 선물, 손님을 맞을 때 내놓을 간식거리를 많이 산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홍바오(紅包)'라고 불리는 빨간 봉투를 사는 일이다. 대만에서 명절이나 결혼식이나 좋은 일이 있을 때 건네는 봉투는 반드시 붉은색이어야 한다. 흰 봉투는 장례식의 조의금을 넣을 때만 쓴다. 한국과는 달리 부모님께도 홍바오를 드리는 점도 특이하다. 말의 해 병오년(丙午年)을 맞아 올해 홍바오에는 대부분 다양한 말 그림이 들어간다. 봉투뿐 아니라 대만의 춘절은 온통 빨간색이다. 연휴 직전에 붉게 물든 디화제를 다녀오니 이제 진짜 명절 기분이 났다.

대만에서는 춘절을 맞아 가족끼리 큰 도교 사원을 방문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물론 새해 복을 빌기 위해서다. 폭죽과 불꽃놀이도 여기저기서 터진다. 악귀들이 소리에 놀라 도망간다고 하는데, 사람도 놀라긴 마찬가지다. 특히 새해를 맞는 순간에는 자정에 여기저기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대만의 춘절은 여기저기 붉은색, 시도 때도 없는 폭죽 소리 속에서 지나간다.

명절 연휴가 시작하는 토요일엔 아기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감기 기운이 살짝 있어서 명절 전에 의사에게 한번 보였다. 다행히 상태도 괜찮고 날씨도 따뜻한 봄날이라 동네 공원에 나갔다. 가족과 함께 공원에 나온 동네 형들, 누나들, 강아지들과 어울려 한참을 놀았다. 일요일엔 처형 집에 가서 함께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아내와 처형이 음식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동안, 장인과 나는 아기를 보거나 심부름을 했다.

대만에서는 설날에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세배도 드리지 않는다. 대신 전날 밤인 '샤오니엔예(小年夜, 소년야)'에 모여서 '투안위앤판(團圓飯, 단원반)을 함께 먹는다. 섣달그믐인 월요일 밤에 처형 집에서 손님을 맞았다. 손님은 일곱 번째 고모와 아들 내외다. 일곱 번째 고모는 십 남매의 막내인 장인의 바로 위 누나다. 보통 소년야에는 고모 집으로 가는데, 올해는 처형 집으로 고모 식구들을 초대했다. 단원반에는 각각의 의미를 담은 음식들을 차린다. 생선, 닭, 경단, 우리가 만두라고 부르는 교자 등은 각각 풍요, 행운, 화목, 금전운을 의미한다. 그렇게 차린 단원반을 함께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TV도 같이 본다.

사실 아기가 없을 때는 가족 모임이 좀 지루했다. 다들 영어를 잘하지만 나 하나 때문에 가족 모임을 영어로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가끔 내가 대화에 낄 때만 영어를 사용한다. 대체로 개인적인 질문이나 한국이 화제에 올랐을 때다. 말이 통하지 않는 모임이 길어지면 지루하기 마련이었는데, 아기가 생기고 나서는 훨씬 편해졌다. 아기가 모임의 중심이 되니 나는 대화에서 자유롭다. 아기만 잘 살피고 놀아주면 된다. 내가 참여한 대화는 길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과 나에 대한 애정과 배려는 충분히 느껴졌다.

밤이 깊어 모임이 끝나면, 홍바오와 준비한 선물을 주고받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아기는 거의 100% 홍바오를 받는다. 한국에서는 아기가 세배드리는 시늉이라도 하고 세뱃돈을 받는데, 대만 춘절엔 그런 게 없다. 세배를 드린 대가로 세뱃돈을 받는다는 우리 관념과는 다르다. '신녠콰일러(新年快樂)', '꽁시파차이(恭喜發財)' 신년 인사를 주고받으며 헤어진다. '즐거운 새해', '돈 많이 벌어' 직관적이고 노골적인 새해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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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지에게 돈을 담아 건네는 '홍바오(紅包)'는 우리 설날의 세뱃돈과는 비슷한 듯 다른 풍습이다. 올해는 말의 해인 병오년(丙午年)이라 다양한 캐릭터의 말 그림이 그려진 봉투가 많이 오고 갔다. ⓒ필자



드디어 새해 첫날, 차례가 없으니 오히려 여유가 있다. 한국의 부모님께 영상통화로 새해 인사를 드리고, 오후부터는 가족들이 함께 친가에 인사를 드리러 다녔다. 장인의 형제자매 중에 세상을 뜨거나 외국에 계신 몇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행히 대부분 가까운 타이베이 시내에 사신다. 찾아가서 인사드리고, 준비한 간식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홍바오와 선물을 주고받고 사진을 찍는다. 아기와 함께 가니 다들 좋아하신다. 이렇게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둘째 날은 외가를 방문했다. 장모의 고향은 타이베이 근교의 바닷가 마을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지우펀(九份)'이라는 관광지로 잘 알려진 지역이다. 아무래도 시골 마을이다 보니 좀 더 끈끈하고 분위기도 흥겹다. 식당을 빌려 함께 점심을 먹은 후에 친척 집에 모여 담소를 나눈다. 외가 쪽에는 아이들이 많다. 조금 낯을 가리던 우리 아들도 형들 누나들과 어울려 좋은 시간을 보냈다. 돌을 앞둔 여동생도 만났는데, 내년에는 여동생을 챙기는 오빠의 모습을 보여줄지 모르겠다.

장모의 오빠 중에 중국에서 사업을 성공한 분이 있다. 지금은 은퇴해서 태국에 살고 있는데, 이분이 춘절 행사 때마다 모든 친척들을 위해 꽤 두툼한 홍바오를 준비하신다. 한번은 자신이 지지하는 당이 선거에 져서 기분이 안 좋다며 홍바오에 넣은 금액을 확 낮춘 적이 있었다. 성공한 형제가 가족 행사를 지원하는 방식도, 자신의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방식도 꽤 흥미로웠다.

셋째 날인 목요일엔 하루 숨을 골랐다. 금요일엔 가까운 이웃들과 점심을 먹었고, 토요일, 일요일에도 친구들, 가족들 모임이 이어졌다. 장인의 십 남매 가족이 모두 모이는 식사는 다가오는 일요일로 잡혔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춘절 연휴가 끝난 월요일 아침, 아이는 다시 어린이집에 갔다. 그 사이 냉장고에 채워둔 음식은 바닥나고, 이어지는 행사 사이에 틈틈이 일하느라 체력도 바닥났다. 아이를 데리고 다녔더니 어깨도 팔도 허리도 뻐근하다. 현관에는 새로운 '춘리엔(春聯)'이 붙었고, 휴대폰 사진첩엔 모임마다 함께 찍은 사진들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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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절 연휴 동안 친지, 친구, 이웃들과의 모임마다 찍은 사진들. 차례를 지내는 의식보다는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는 시간에 더 집중한다는 점에서 대만의 춘절은 한국의 설날과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필자



우리 설날과 비슷하지만 낯설다. 무엇보다 차례를 모시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 새삼 느낀다. 단원반도 나름 격식을 차려 준비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손님맞이'다. 그런데 차례는 조상을 기리는 '의식'이다. 설날 아침에 격식에 맞춰 정갈하게 상을 차려야 하고, 제사를 주관하는 남성과 음식을 준비하는 여성의 역할이 명확히 분리된다. 어차피 그 취지는 같은 조상을 둔 자손들이 모여서 친목을 다지고 즐기는 것인데, 의식(儀式)이 중심이 되면서 형식화되고 책임과 의무가 강조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른 명절 문화에 녹아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든 게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다. 부대에 막 전입 온 신병처럼 물어보고 배우며, 눈치껏 참여하고 도와야 한다. 게다가 말도 잘 통하지 않는다. 결혼해서 한 가족이라지만 다른 집 행사에 맞추고 참여해야 하는 며느리들의 고충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말이 통하지 않으니 외국인 며느리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일정을 짜고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도 머리가 아프겠지만,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기다려야 하는 소외감도 있다. 그래도 다들 배려해주고 챙겨줘서 즐거운 명절이었다.

명절은 즐거운 날이지만 그 즐거움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기 마련인 듯하다. 공휴일이 끝나고 아침에 아기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후에는 오랜만에 대청소를 하고 아내와 외식도 했다. 정말 수고했다고, 다들 아프거나 다친 데 없이 즐겁게 춘절 연휴를 마쳐서 다행이라고 서로를 격려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새 식구를 늘 배려해주고 챙겨주는 처가 식구들에게도, 멀리 외국에서 명절을 보내는 아들 가족을 이해해주는 한국의 부모님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박범준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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