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연세대학교 인천 송도국제캠퍼스 양자융합연구동. 세계 다섯 번째이자 국내 최초로 도입된 상용 수준 양자컴퓨터 ‘IBM 퀀텀 시스템 원’은 거대한 기계 장치일 것이란 예상과 달리 아담한 크기였다. 종 모양을 연상시키는 금속제 본체 내부에는 127큐비트급 ‘이글’ 프로세서가 담겨 있었다. 본체 내부 온도는 영하 273.14°C로 심우주보다도 차갑다고 한다.
연세대 연구진은 이 장비를 활용해 일본 국가연구소 ‘리켄’과 협력해 노화의 근원적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바이오 외에도 △금융 △반도체 설계 △신소재 △국방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활용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정재호 연세대 양자사업단장은 “글로벌 빅테크 본사 관계자들이 자신들의 플랫폼에 양자 기술을 결합시키기 위해 최근 방문했다”며 “공공 영역에서의 사용이 활발할 뿐 아니라 국내 주요 대기업들 역시 산업통상부 과제를 통해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양자컴퓨터의 압도적인 성능은 기존까지 상상하기 어려웠던 협업이나 연구과제를 성사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 단장은 “결국 신약 개발은 시간과 계산의 싸움”이라며 “기존 슈퍼컴퓨터로는 전 세계 자원을 총동원해도 수천 개월이 걸릴 복잡한 단백질 구조 연산을 양자 100큐비트로 처리함으로써 최대 수조 원의 비용과 수십 년의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이 이처럼 거액을 투자해 하드웨어를 직접 소유·운영하는 모델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로 평가받는다. 2024년 연세대가 양자컴퓨터를 확보한 이후 국내 산업계와 정부 연구기관도 혜택을 입고 있다. 해외 빅테크의 클라우드 서비스 대비 70~90% 저렴한 비용으로 장비를 활용할 수 있어서다. 특히 신약 후보 물질 등 핵심 데이터의 해외 유출 우려가 원천 차단되는 점도 경쟁력으로 꼽힌다.
연세대는 모듈형 계약 구조를 활용해 기존 하드웨어를 연내 최신 사양인 ‘나이트 호크’ 프로세서로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하드웨어 성능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상시 최고 수준의 사양을 유지해 연구의 연속성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정재호 연세대 양자사업단장은 “10년 후에는 구글이나 엔비디아가 만든 항암제를 처방받는 ‘기술 독재’ 시대가 올 수도 있다”면서 “하드웨어와 달리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는 전 세계가 같은 출발선에 있기에 이곳에서의 연구가 빅테크 종속을 막을 국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동건 기자 brassg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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