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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엔 밥 먹을 친구 있습니까?” 212만 독거노인, 月 10만원이 가른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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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늙어가는 212만명 시대, 노년층 年 소비 243조8000억원 육박
고립 막으려 ‘관계 유지용 곗돈’ 모아 호텔 찾는 노인들의 생생한 현장
빈곤율 43.6% 최고 수준…무료급식소 앞 긴 줄, 양극화된 지갑의 명암
28일 정오 서울 도심의 한 4성급 호텔 로비. 엘리베이터 앞에서 챙이 넓은 모자를 고쳐 쓴 70대 여성 5명이 서로의 옷매무새를 살핀다. “오늘은 내가 예약했어. 다음 달엔 네가 맡아.” 익숙한 농담이 오가고, 팔짱을 낀 채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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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10만원씩 곗돈을 모아 정기적으로 외출하는 ‘관계 소비’ 현상이 일부 고령층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freepik


이들의 공통점은 ‘월10만원 곗돈’이다. 매달 10만원씩 모아 50만원을 만들고, 한 달에 한 번 고급 식당이나 문화공간에서 모임을 연다.

이 생경한 풍경의 배경에는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가 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65세 이상 1인가구는 212만명으로 처음 200만명을 넘어섰다.

국가데이터처 가계동향조사(2023년)에 따르면 65세 이상 가구의 연간 소비지출 총액은 243조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2% 증가했다. 고령 인구 증가와 물가 상승 효과가 함께 작용한 결과지만, 고령층 소비 총액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는 흐름은 분명하다.

◆밥값 아닌 ‘관계 유지비’가 된 10만원

왜 이들은 곗돈까지 부어가며 호텔로 향할까. 이들에게 10만원은 단순한 외식비가 아니다. 고립을 피하기 위해 기꺼이 지불하는 ‘관계 유지비’에 가깝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러운 약속은 줄어든다. 곗돈이라는 강제성이 없다면 만남이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이들을 묶는다.

모임에 참석한 김모(73) 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집에만 있으면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지나가. 호텔 밥이 맛있어서 오는 게 아니야. 이 모임은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날 구실을 사는 거지.”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2023년)에 따르면 독거노인 다수가 외로움을 경험한다고 응답했다. 사회적 고립은 우울감과 건강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기적인 외출과 소비는 스스로를 지키려는 자구책이기도 하다.

◆종로 무료급식소 앞 긴 줄…“식권 1장에 하루가 걸려”

같은 날 오후 1시,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의 한 무료급식소 앞. 낡은 점퍼를 껴입은 노인들의 줄이 골목 끝까지 이어졌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하루 수백명이 찾는 날도 적지 않다.

현장에서 만난 이모(79) 씨의 손에는 낡은 식권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이거 한 장 받으려고 아침부터 나와 있어. 요즘은 물가가 너무 올라서 천원으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여기가 유일한 식사처야.”

국가데이터처 소득 5분위별 소비지출을 재구성해 보면(2023년 기준), 상위 20% 고령층의 오락·문화 지출은 하위 20%보다 약 9배 이상 높게 나타난다. 문화생활이 일상인 집단과, 식사 한 끼가 우선 과제가 되는 집단이 동시에 존재하는 구조다.

고령층 전체 소비 규모는 확대됐지만 내부 격차는 뚜렷하다. OECD 최신 가용 통계(2021년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상대적 빈곤율은 43.6%로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에 해당한다. 같은 도시 안에서 호텔 런치와 무료급식 줄이 공존하는 배경에는 이 수치가 자리한다.

◆지갑의 두께, ‘관계의 수명’ 좌우

그래서 왜 우리는 노년의 10만원에 주목해야 할까. 초고령사회에서 돈은 생존을 넘어 인간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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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여가 지출이 늘어나는 한편, 도심 무료급식소를 찾는 노인들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unsplash


국가데이터처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70세 이상 1인가구의 지출은 주거비와 식료품비, 보건의료비 등 필수 항목 비중이 매우 높다. 여가와 교제에 배분할 수 있는 여력이 제한적인 구조다. 관계를 유지할 비용이 줄어드는 순간, 사회적 단절 가능성도 커진다.

은퇴 후의 일상은 단순히 생계비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노후 자금 설계에서 ‘관계 유지 비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고립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올 수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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