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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뿐 아니고 친지 9명이 주한미군 복무”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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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1월 초 경기 연천 고랑포 비무장지대(DMZ)에서 북괴가 판 땅굴이 발견됐다. ‘제1땅굴’로 불리는 이 지하 이동로의 길이는 약 3.5㎞에 달했다. 서울과의 거리는 고작 65㎞에 불과했다. 북괴군이 이를 통해 기습 남침을 시도했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지 모골이 송연해질 따름이다. 땅굴 발견 당시 미 해군 소속인 로버트 벨린저 소령은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군과 함께 땅굴 조사에 나섰다가 북괴군이 심어 놓은 폭발물이 터지며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1974년 11월20일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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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브라운 주한 미 8군 부사령관(준장)이 25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주한미군 전사자·실종자 추모 시설’ 제막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브라운 장군은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에서 싸운 친척이 있다”며 “저뿐 아니라 9명의 친지가 주한미군으로 복무했다”고 소개했다. 전쟁기념사업회 제공


1976년 8월18일 오전 11시 판문점 JSA 내 사천교(일명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부근에서 미루나무 한 그루를 상대로 가지치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가 유엔군 초소 경계병들의 시야를 가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괴 경비병들이 “나무를 그대로 두고 돌아가라”며 위협했다. 현장 지휘관인 미 육군 아서 보니파스 대위가 이를 거부하자 야만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도끼에 머리가 깨진 보니파스 대위는 픽 쓰러졌고 부하인 마크 바렛 소위도 크게 다쳤다. 두 사람은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이른바 ‘8·18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로 6·25 전쟁의 총성과 포성은 멎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계속됐고 이에 맞서는 과정에서 주한미군이 100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25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선 전쟁기념사업회(회장 백승주) 주최로 ‘주한미군 전사자·실종자 추모 시설’ 제막식이 열렸다. 6·25 전쟁 이후 70여년이 흐르는 동안 작전이나 훈련 도중 숨진 주한미군 장병 그리고 전쟁 당시 실종돼 아직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미군 참전용사를 기리는 공간이다. 특히 한미동맹재단(회장 임호영)이 정리한 휴전 이후 주한미군 전사자 101명의 명단이 새겨졌다니 참으로 뜻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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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구내에 조성된 ‘주한미군 전사자·실종자 추모 시설’ 모습. 전쟁기념사업회 제공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축사를 통해 “앞으로도 주한미군 전사자·실종자를 비롯한 모든 영웅의 헌신을 잊지 않고 그 정신을 굳건히 계승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주한미군을 대표해 참석한 로버트 브라운 8군 부사령관(준장)은 “한·미 공동의 희생과 영속적인 파트너십, 끊어지지 않는 유대를 상징한다”는 말로 화답했다. 브라운 장군은 아울러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에서 싸운 친척이 있다”며 “저뿐 아니라 9명의 친지가 주한미군으로 복무했다”고 소개했다. 본인은 물론 친지 9명이 한국 방어에 기여했다니, 한·미 동맹의 산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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