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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돌아온 봄날의 클래식…다만 더 밝게, 길게[박민지 디자이너의 옷 잘 입는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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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트렌치코트
경향신문

이번 시즌엔 기본 충실…컬러는 베이지 기반 약간의 변주
여유로운 핏이 주는 ‘자연스러운 주름’ 매력 포인트
취향 따라 견장·벨트 등 장식 덜어낸 맥코트도 선택지

겨울에는 풍성한 아우터를 먼저 입은 이에게서 따듯함은 물론 부지런한 태도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봄은 생각보다 매콤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꺼운 겨울 겉옷을 고집하는 사람은 자칫 둔하고 살짝 게을러 보이기까지 한다. 이처럼 옷 잘 입는 사람의 기본 공식은 계절감을 한 발씩 앞서 준비하는 데 있다.

늦가을 정리해두었던 트렌치를 다시 꺼내는 계절, 봄이 오고 있다. 사계절이 있는 나라이지만 점점 짧아지는 봄과 가을을 만끽하기 위한 방법은 별다른 것이 없다. 두꺼운 아우터를 좀 더 빨리 정리하고 가벼운 옷을 한발 앞서 입는 것이다. 아우터가 얇아진 대신 이너를 여러 겹 레이어드해 보온성을 보완하면 된다.

2026년 봄 트렌치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새로움’이 아니라 ‘정확함’이다. 이번 시즌 트렌치는 과장된 변형이나 눈에 띄는 장식보다, 트렌치코트라는 아이템이 본래 가지고 있던 매력으로 다시 돌아왔다. 실루엣은 더 정제되고 길이는 길어졌다.

트렌치의 기장은 원래 고정된 기준이 없었다. 통념적으로 무릎 언저리의 길이가 기본처럼 여겨져왔지만, 실제로는 시대마다 길이는 반복적으로 변해왔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트렌치 역시 과거 여러 시즌에 걸쳐 등장했고, 짧아졌다가 다시 길어지는 흐름을 거듭해왔다.

이번 시즌의 트렌치는 몸에 맞춰 날씬해 보이려는 접근을 명확하게 벗어난다. 허리를 강하게 조여 실루엣을 만들거나 이너까지 몸에 밀착시켜 선을 강조하는 방식은 이제 구식에 가깝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사이즈에 꼭 맞는 옷을 입어야 날씬해 보인다는 생각은 오히려 체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결과적으로 스타일의 시대감을 떨어뜨린다. 반면 오버사이즈 트렌치를 느슨하게 걸치고 허리를 가볍게 묶었을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구김과 주름은 그 자체로 스타일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컬러 역시 기본은 여전히 베이지이다. 베이지는 트렌치코트라는 아이템이 가진 정체성에 가장 충실한 색이고, 유행을 가장 오래 견뎌온 색이기도 하다. 다만 2026년의 베이지는 조금 더 밝고 투명한 쪽으로 이동한다. 크림 베이지, 연한 샌드, 밝은 톤의 캐멀까지 아우르는 스펙트럼이다. 그다음으로 눈에 띈 것은 밝은 옐로 계열이다. 머스터드색처럼 무게감 있는 노랑이 아니라 빛이 섞인 밝은 옐로 베이지에 가깝다. 카키 역시 꾸준히 등장하지만 피부 톤과 나이에 따라 얼굴에 영향을 주는 색이기도 하다. 안정성과 활용도를 생각한다면 베이지와 캐멀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트렌치의 역사는 군용 외투에서 출발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에서 입던 코트에서 유래했고, 전쟁이 끝난 뒤 민간으로 확산되었고 일상복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트렌치코트를 지금의 클래식 아이템으로 끌어올린 브랜드는 ‘버버리’다. 창업자 토머스 버버리는 개버딘이라는 혁신적인 직물을 개발했다. 개버딘은 구김에 강하고, 발수 기능을 갖추면서도 통기성이 뛰어난 소재다. 기능성과 착용감을 모두 만족시키면서 지나치게 투박하지 않다는 점에서 일상복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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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코트’


트렌치와 함께 늘 비교되는 아이템이 맥코트다. 맥코트 역시 영국에서 출발한 코트로, 19세기 방수 고무 원단을 개발한 찰스 매킨토시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트렌치가 더블브레스트와 견장, 벨트 등 군복의 디테일을 간직하고 있다면, 맥코트는 그런 요소를 모두 덜어낸 싱글브레스트 코트다. 단정한 버튼, 직선적인 실루엣, 장식 없는 구조가 특징이다. 최근에는 ‘The Row(더 로우)’ ‘Cos(코즈)’ 같은 브랜드들이 맥코트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선보이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은 트렌치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훨씬 더 조용하고 절제된 선택지가 맥코트다.

그래서 트렌치와 맥코트는 경쟁 관계라기보다 취향의 문제에 가깝다. 트렌치는 구조와 디테일에서 오는 존재감이 분명하고, 맥코트는 단순함과 정돈된 인상이 강하다. 컬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베이지, 캐멀, 밝은 브라운 계열은 두 아이템 모두 활용도가 높다. 어떤 디자인을 선택하든 중요한 것은 그 안을 어떻게 채우느냐이다. 이처럼 구조가 분명한 코트 안에는 복잡한 디자인과 패턴의 옷보다는 좀 더 클래식한 아이템으로 스타일링하는 것이 좋다. 지금처럼 차가운 봄에는 밝은 캐시미어 니트, 혹은 레이어링이 가능한 오버사이즈 셔츠, 진이나 슬랙스, 로퍼 정도면 충분하다. 코트가 길고 실루엣이 분명할수록, 이너가 단순해야 전체적인 조화가 잘 맞아 보인다.

2026년 봄의 트렌치는 새로운 옷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알고 있는 아이템을 어떻게 선택하고, 어떤 기준으로 입느냐를 묻는다. 유행은 늘 바뀌지만 이런 외투들은 반드시 돌아온다. 그리고 이번 시즌 그 돌아옴은 유난히 조용하고 깔끔하다. 그 점이 지금의 트렌치를 가장 트렌디하게 만든다.

▶박민지

경향신문
파리에서 공부하고 대기업 패션 브랜드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20여년간 일했다. 패션 작가와 유튜버 ‘르쁠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세 번째 저서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 50인>을 펴냈다.


박민지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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