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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화방탕 대명사’ 북한 2인자 최룡해의 퇴장 [주성하의 ‘北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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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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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룡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해 10월 평남 백송농장을 시찰하고 있다. 말년의 김정일이 그랬듯이 최룡해도 최근 갑자기 몸이 삐쩍 마르는 모습을 보였다. 노동신문 뉴스1


25일 끝난 북한 제9차 노동당 대회를 통해 김정은 정권의 ‘공식 의전 서열 2위’이자 빨치산 2세를 상징하는 인물,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퇴진이 확정됐습니다.

최룡해는 ‘백두혈통’을 강조하는 북한에서 김정은의 위상을 돋보이게 하는 보조적인 상징자산이었습니다. 올해 그의 나이 76세. 북한에서 상징자산은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그의 전임자였던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91세까지 현역을 지켰습니다.

최룡해의 이른 퇴진은 오랜 지병인 당뇨병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는 10여 년 전인 60대 초반부터 한쪽 다리를 절면서 김정은을 수행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됐습니다. 당뇨병과 척추질환이 겹쳤다고 합니다. 이를 고려하면 당뇨 합병증이 시작되고도 10년 넘게 자리를 지킨 자체만으로 대단한 일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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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당시 북한 대외적 국가수반이던 최룡해(앞줄 왼쪽)가 김정은의 손을 잡으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조선중앙방송 캡처


● ‘체제의 행운아’ 최룡해

최룡해의 인생은 전반적으로 운이 매우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룡해는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 최현의 서자(庶子)입니다. 최현은 빨치산 동료 김철호와 결혼해 1942년 최룡택이라는 적자(嫡子)를 낳았습니다. 최현은 38경비여단 여단장 시절에 일본군 간호사 출신인 황해북도 거주 여성과 불륜 관계였는데, 1950년 1월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최룡해입니다.

혈통을 중시하는 북한에서 빨치산 출신이 낳은 적자가 많음에도 최룡해가 빨치산 2세를 대표하는 상징자산이 된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김일성과 같은 항일연군 2군 출신이던 최현은 북-중 국경 근처에서 전투를 자주 벌여 국내에 많이 알려졌던 인물로 김일성 유일 독재체제를 가장 앞장서 옹호했습니다. 즉 부친의 후광이 빨치산 출신 중 가장 강력했다는 점이 최룡해에겐 첫 번째 행운이었습니다.

두 번째 행운은 최현의 적자 최룡택이 높은 벼슬보다는 방탕한 삶을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최룡택은 오랫동안 노동당 3대혁명소조지도부 과장 자리에 있었는데, 김정일이 더 높은 자리를 주겠다고 해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3대혁명소조지도부 과장은 전국의 20대 초반 여대 졸업생들을 쥐락펴락하는 위치였습니다. 노동당에 입당시켜 준다며 마음에 드는 젊은 엘리트 여성들을 침실로 끌어들일 수 있는 권력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난봉꾼으로 살던 최룡택은 60세도 채 되지 않은 2000년대 초반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최룡해의 세 번째 행운은 어렸을 때부터 김정일을 따라다녔다는 점입니다. 김정일과 최룡택은 나이가 같아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사이였는데, 그러다 보니 최룡해도 코흘리개 시절부터 김정일을 알게 됐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최룡해는 김정일 시대에 빠르게 출세했습니다. 36세에 벌써 노동당 중앙위 위원에 선출됐고 2년 뒤엔 북한 청년 조직 수장인 조선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 비서로 발탁됐습니다.

어린 나이에 큰 권력을 움켜쥔 최룡해는 빠르게 부패했습니다. 청년동맹 협주단을 만들고 전국 미녀들을 뽑아 부화방탕(浮華放蕩)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가 변태적 성욕 충족을 위해 ‘수청 드는’ 여성들 치아를 하나당 100달러씩 주고 뽑았던 일을 북한 사람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최룡해에 대한 이 같은 정보는 김정일에게 흘러들어갔습니다. 백두혈통만이 차지할 수 있는 최고 미녀들을 감히 빨치산혈통이 빼돌려 ‘기쁨조 파티’까지 흉내를 냈으니 김정일이 격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최룡해는 이후 6년 동안 ‘혁명화’를 하게 됩니다.

청년동맹 부하 간부들은 대거 처형당했고 이가 뽑힌 여성들도 25호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 죽음을 맞았지만, 최룡해는 몇 년간의 노동 단련으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같은 서자 출신인지라 동병상련이었을까요. 최룡해는 김정은 시대에 더 승승장구했습니다. 2010년 난데없이 인민군 대장이 된 데 이어 2012년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군 총정치국장으로, 그리고 차수로 승진했습니다. 이후 두루두루 요직을 옮겨 다니다가 몸이 더 버틸 수 없을 때쯤 안전하게 은퇴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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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제8차 노동당 대회 기념사진 촬영장에서 김정은(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이 조용원(앞줄 왼쪽)을 향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최룡해(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지켜보고 있다. 김정은의 양팔 노릇을 한 조용원과 최룡해는 각각 자기 아들의 목숨을 빚졌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조선중앙방송 캡처



● 대를 이은 목숨 빚


최룡해의 퇴진으로 이제 빨치산 2세는 북한 정치 무대에서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최 씨 가문의 빨치산 혈통은 3대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요.

최룡해에겐 김정은과 동갑인 아들 최현철이 있습니다. 최현철은 29세이던 2013년 큰 교통사고를 당해 다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당시 평양시당 조직부 책임부원이던 최현철은 친구와 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공교롭게도 부친이 수장인 북한군 총정치국 소속 군용 승합차에 치어 소생 불가 판정을 받고 사체실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날 오전 4시 김정은이 봉화진료소에 나타나 “최 씨 가문의 대가 끊기면 안 된다. 무조건 살려 내라”고 지시했습니다.

북한 최고 의료진이 총동원됐습니다. 최현철은 42일 만에 눈을 떴습니다. 이후 그는 2년 넘게 재활치료를 했습니다. 김정은은 거액을 들여 그를 싱가포르까지 보내 고막 수술을 받게 했습니다.

함께 사고를 당한 친구는 초기 상태가 최현철보다 좋았지만,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김정은의 소생 지시는 최현철만 해당했기 때문입니다.

뇌를 다쳐 발음도 어눌하고 거동도 불편하던 최현철이 고위 간부로 출세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노동당 9차 대회에서 발표된 250명의 노동당 중앙위 위원 및 후보 위원 명단에 최현철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부친인 최룡해는 36세에 위원이 됐지만, 42세 최현철은 아직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빨치산 3대 혈통의 본격적인 등장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김정은에겐 빨치산 혈통이라는 상징성이 3대까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여담이지만 최현철과 비슷한 사례가 또 있습니다.

간부 인사권을 모두 틀어쥐고 있어 ‘인간계 권력’ 최고 수장이라고 불리는 조용원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아들도 김정은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2019년 초 호위국 군관 신분으로 30대 중반이던 조용원의 아들은 평양역 인근의 한 고급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셨습니다. 최고 핵심 실세의 아들인지라 나름 북한에선 비싼 브랜드인 ‘송악소주’를 마셨는데, 이것이 메탄올로 만든 가짜 술이었습니다. 북한에선 가짜 술이 시중에 공공연하게 도는데, 하필 조용원의 아들이 피해자가 돼 시력을 잃게 됐습니다.

이때도 김정은이 나섰습니다. 무조건 시력을 회복시키라는 지시에 조용원의 아들은 치료 시설이 훨씬 좋은 중국으로 이송됐습니다. 중국 의료진은 처음엔 치료할 수 없다고 난색을 보였지만, 결국 오랜 치료 끝에 시력이 돌아왔습니다.

함께 마셨던 친구는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해 시력을 잃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 내부에서는 “같은 술을 마셨는데 조용원 아들만 해외에서 치료받고, 친구는 힘이 없어 소경이 됐다”는 소문이 쉬쉬하면서도 돌았습니다.

김정은의 분노로 메탄올 술을 판매한 식당 지배인은 처형됐고, 그 식당 주변 10여 개의 다른 식당도 몽땅 철거됐다고 합니다.

김정은 시대 실세였던 최룡해와 조용원은 공교롭게도 김정은에게 아들 목숨이라는 ‘큰 빚’을 지게 됐습니다. 그러니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 더 높아질 것은 뻔한 일 아닐까요. 실제로 조용원은 김정은에게 “아들에게 광명을 찾아주어 감사하다”며 “대를 이어 충성하겠다”는 편지를 바쳤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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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7일 전승절 행사장에서 김정은을 쳐다보고 있는 최룡해. 불과 10개월 전 최룡해 옆엔 장성택도 있었지만, 그 사이 처형됐다. 동아일보 DB


숱한 처형을 목도했지만, 정작 자신은 늘 안전지대에 머물던 최룡해는 이제 권력을 내려놓았습니다.

그의 몸 상태를 봤을 때 몇 년 안에 김정은이 최룡해의 운구를 직접 나르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볼 가능성도 있습니다. 북한 언론은 최룡해를 대를 이은 충신의 귀감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할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 인민들은 최룡해를 만민 평등을 지향한다는 북한 사회주의의 기만적 사기극을 낱낱이 드러낸 상징이자 부화방탕의 대명사로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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