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숫자로 움직인다. 출발점은 선거권이다. 그러나 몇살부터 권리를 부여할 것인가는 단순한 숫자 문제를 넘어선다. 시민의 책임과 권리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 기준을 정하는 사회적 합의이기 때문이다. 영국 정치철학자 존 로크는 “정치적 권리는 이성을 지닌 개인에게 부여된다”고 했다. 선거권 연령을 둘러싼 논쟁은 ‘몇살부터 시민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정치철학 질문과 맞닿아 있다.
최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공직선거법상 선거권 연령을 만 16세로 낮추자고 공식 제안하면서 이 질문이 한국 사회로 소환됐다. 장 대표는 “16세 이상 청소년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세금을 내며 사회적 판단 능력도 충분하다”면서 투표권 연령 하향을 주장했다. 그러나 선거권 연령이 5년 전 만 18세로 낮춰진 지 오래지 않은 데다, 이는 특정 세대를 겨냥한 정치적 계산이라는 해석도 제기되면서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16세 선거권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오스트리아는 2007년 만 16세 이상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첫 유럽 국가다.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조기에 유도해 시민 의식을 키우겠다는 판단이었다. 도입 이후 효과는 긍정적이다.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정치학자 에바 자이클 등이 2014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16~17세 유권자의 정치 관심도는 선거권 부여 이후 뚜렷하게 상승했다. 16~17세 중 ‘정치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60%로 선거권 연령 조정 이전(약 50%)보다 10%포인트 이상 늘어났다.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은 다른 연령대와 대비되는 결과였다.
2022년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소에서 만 18세 고등학생들이 투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
실제 투표 참여율도 높았다. 16~17세의 첫 선거 투표율은 약 75%로, 18~20세 초년 유권자(55~60%)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연구진은 “학교에 다니며 또래와 함께 첫 투표를 경험하는 것이 정치 관심과 참여 의지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16~17세는 대부분 학교에 재학 중인 상태에서 첫 투표를 경험하는데, 이 과정에서 교사의 안내와 또래 토론이 결합하며 정치 정보를 접할 기회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조기 정치사회화 효과’로 규정했다. 투표권 부여 자체가 정치 관심과 참여 의지를 끌어올리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오스트리아의 사례는 세계 각국에서 선거 연령 하향 논의를 확산시키는 근거로 활용됐다. 영국 스코틀랜드는 2014년 독립 국민투표를 계기로 지방선거에 16세 투표권을 도입했고, 웨일스도 2020년 지방선거부터 같은 기준을 시행했다. 영국 정부는 더 나아가 전국적으로 투표권 부여 연령을 만 16세까지 낮추는 법안을 하원에 제출했다. 독일과 벨기에도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16세 유권자 참여를 허용했다.
18세 선거를 위해 16세 선거인 등록을 시작하는 호주. 호주 정부 홈페이지 캡처 |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국가가 18세 이상 선거권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마다 기준이 다른 이유는 ‘어른의 나이’가 고정된 기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전, 어린이는 보호 대상이라기보다 노동력이었다. 어린 나이에 노동에 투입되는 일이 흔했고, 지금처럼 촘촘한 연령 기준도 존재하지 않았다. 변화는 산업화의 부작용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시작됐다. 아동 노동을 제한하고 의무교육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아이를 어디까지 보호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등장했다. 20세기 들어 청소년을 성장 과정에 있는 독립된 집단으로 보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1989년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18세 미만을 보호 대상으로 규정했다.
선거권의 역사는 다른 방향에서 움직였다. 보호의 역사라기보다 시민권 확대의 역사에 가깝다. 재산이 있는 남성에게만 허용됐던 권리는 여성, 노동자, 소수 인종으로 점차 확장됐다. 20세기에는 ‘군 복무 연령’ 논리를 바탕으로 21세였던 투표 연령이 18세로 낮아졌다. 최근 일부 국가가 16세 기준을 도입한 것도 청소년의 완전한 성숙을 인정했다기보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정치에 더 일찍 참여시키려는 선택에 가깝다.
김희진 국제아동인권센터 변호사는 “아동과 청소년 역시 시민으로서 사회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고,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도 참여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해왔다”면서 “투표권이 없는 상태에서는 청소년 권리 보장이 충분히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일각에서 제기한 투표권 연령 하향과 동시에 청소년도 성인과 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책임을 학습하고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이지, 권리와 의무를 동일한 수준으로 즉각 묶어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처럼 청소년의 미래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 영역에서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선거권 연령 논쟁의 핵심은 단순한 숫자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을 여전히 보호의 대상으로 볼지, 아니면 정치적 주체로 인정할지에 대한 사회의 선택이다. 우리 사회는 어느 쪽에 무게를 둘 것인가. 프랑스 정치철학자 장 자크 루소의 말처럼, 시민은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길러진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