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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위기, 범인은 넷플릭스와 위고비? [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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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위스키 재고가 넘쳐나고, 프랑스에선 남아도는 와인이 대거 폐기 처분됩니다. 중국 바이주, 유럽 맥주, 멕시코 테킬라까지 모두 판매가 급감하며 전 세계 술 시장이 동시에 침체하고 있는데요.

이게 다 술을 멀리하는 Z세대 때문이라고요? 글쎄요. 솔직히 정확한 원인은 아무도 모릅니다. 워낙 여러 요인이 겹쳐있기 때문이죠. 그럼, 이대로 주류 산업은 담배처럼 사양산업이 되어가는 걸까요. 역사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요. 오늘은 글로벌 술 시장의 침체를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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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안 팔린다. 범인은 누구인가. 게티이미지


*이 기사는 2월 2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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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도, 맥주도 남아돈다

갑자기 다들 금주라도 하는 건가요. 지난해부터 술이 안 팔려서 난리라는 뉴스가 전 세계적으로 쏟아져나옵니다. 그중 눈에 띄는 몇 가지 소개하자면.

-미국 버번위스키의 상징인 짐빔이 2026년 한 해 동안 켄터키주에 있는 주력 증류소 가동을 중단합니다. 미국 금주법 폐지로 1933년 증류소를 재가동한 이후, 9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죠. 위스키 재고는 쌓였는데, 소비는 줄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2위 맥주 기업인 네덜란드 하이네켄이 얼마 전 2027년까지 최대 6000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어요. 전체 직원의 7%를 감원하는 거죠. 2025년 이 회사의 맥주 판매량은 전년보다 1.2% 감소했는데, 특히 미국과 유럽 시장 판매가 급감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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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주류업체 디아지오의 데킬라 브랜드 돈훌리오. 디아지오는 최근 미국에서 돈훌리오 등 고급 데킬라 수요가 급감하면서 올해 판매 목표치를 하향 조정했다. 디아지오 제공


-중국에선 마오타이 가격이 지난해에만 30% 넘게 폭락했습니다. 소매시장 판매가격이 공식 출고가를 밑도는 기현상이 벌어졌죠. 마오타이를 수십 상자씩 사재기해 뒀던 상인들은 큰 손실을 보게 됐습니다. ‘마오타이=확실한 투자 상품’이란 공식은 깨지고 말았죠.

-한때 뜨거웠던 ‘데킬라 붐’은 2025년 급격히 식었습니다. 데킬라 원료인 아가베 가격은 3년 전 ㎏당 30페소(약 2500원)까지 치솟았지만, 지난해엔 2페소(약 170원)로 폭락했죠. 뒤늦게 아가베 재배에 나선 멕시코 농부들은 직격탄을 맞았고요. 돈 훌리오, 카사미고스 같은 고급 데킬라 브랜드를 보유한 디아지오 역시 경영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렇게 술이 안 팔리고 재고가 넘치면서 전 세계 주류업체 주가도 급락했는데요. 블룸버그에 따르면 세계 50대 주류 기업의 시가총액은 정점이었던 2021년 6월과 비교해 46% 하락했다고 하죠. 약 8300억 달러(1185조원)의 시장가치가 사라졌습니다. 모건 스탠리 애널리스트인 사라 사이먼은 이렇게 말합니다.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사람들이 술을 덜 마셔요.”

이건 단순한 사이클이 아닐지도?

팬데믹 때 ‘홈술’로 반짝 늘어났던 술 소비의 정상화 과정이다, 물가가 급등하면서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탓이다…. 2022년 정점을 찍은 미국 술 소비가 2023년 꺾였을 때, 업계에선 이런 분석이 나왔습니다. 술을 덜 마시는 건 어디까지나 경기 사이클 탓이고, 좀 지나면 다시 소비가 살아날 거라고 봤던 거죠.

그런데 웬걸. 추세가 반전될 기미는 없고, 점점 늪에 빠지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지난해 미국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가 놀라웠죠. 미국 성인의 음주율은 54%로, 1939년 조사 이래 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금주법 시대 이후 미국인이 가장 술을 적게 마신단 뜻인데요. 미국은 세계 2위 주류 시장(1위는 중국)이기에 업계엔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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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은 주류 산업이 이러다 ‘제 2의 담배’처럼 되는 게 아닌가 걱정한다. 게티이미지


이거 그냥 지나가는 사이클이 아닐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점점 고조됩니다. 이제 투자자들은 주류업계에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죠. ‘술은 제2의 담배가 될 것인가?’ 마치 담배회사처럼 주류기업도 성장을 멈춘 채 사양산업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죠.

만약 이게 구조적 변화라면, 주류 산업을 위기로 몰아넣은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일까요. 많은 분석이 쏟아지는데, 그중 다수의 지지를 받는 건 다음과 같습니다.

①Z세대의 웰빙과 절제 트렌드
Z세대(1997~2012년생)가 술을 덜 마시는 건 한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 중국 등의 공통 현상이죠. 특히 한 번에 많이 마시는 폭음이 크게 줄었다는 게 특징인데요.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20대 고위험 음주율은 9.9%로 40대(20.9%)의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특히 2018년 17%였던 20대 남성의 고위험 음주율은 가파르게 줄어서 9.7%에 그쳤어요. 지난해 처음으로 20대 여성(10.2%)에 역전됐죠. (다만 남성은 1회 7잔, 여성은 5잔 이상으로 ‘고위험’의 기준 자체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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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청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구글 노트북LM이 작성한 그래프.


왜 Z세대 남성은 폭음을 덜 하게 됐을까요. 이를 두고 소셜미디어 영향이란 분석이 나오는데요. 괜히 술 취해서 실수라도 하면 자칫 SNS에 평생 ‘박제’될 수 있단 공포가 작용한다는 겁니다. 또 몸매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이유로 꼽히고요. 한마디로 술 취하는 건 더 이상 힙하지 않아요. 술 잘 마시는 게 남자답다고 여겨지던 시절은 끝났죠.

②술 마실 시간에 넷플릭스 본다
퇴근 후 자기 전까지 3~4시간, 뭘 하며 노는 게 가장 즐거울까요. 친구들과의 술자리? 아니면 집에서 혼자 넷플릭스 정주행? 술과 OTT 서비스는 인간의 자유시간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입니다.

일본 아사히의 아츠시 카츠키 CEO는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술 소비 감소 이유를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과거엔 술이 사람들의 오락과 즐거움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어요. 지난 10년 동안 게임을 포함한 오락거리가 늘어나면서 술이 주는 재미와 즐거움, 행복이 줄어들었죠.” 그는 건강에 대한 관심보다는 디지털 미디어가 술 소비 감소의 직접적인 요인이라고 확신했는데요.

물론 넷플릭스를 보면서도 한잔할 순 있지만, 캔맥주나 하이볼 같은 가벼운 술이 주를 이루죠. 부어라 마셔라 식의 폭음은 덜 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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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이 술 수요 감소의 원인이란 분석이 나온다. 술 마실 시간을 빼앗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


③위고비 맞으면 술 생각이 사라진다
위고비·마운자로 같은 비만치료제를 맞으면 술 마시고 싶은 욕구 자체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죠. 물론 이게 진짜로 술 소비량을 줄이고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진 않았는데요.

하지만 그럴 거란 예측은 파다합니다. 지난 1월 영국의 유명 펀드매니저 테리 스미스는 15년간 보유한 디아지오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비만치료제를 꼽았죠. 비만치료제가 주류시장의 성장을 위협한다고 본 겁니다.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인데…

주류 시장이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데는 업계 관계자들도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제프리스의 에드 먼디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8.3L로 추정되는 미국의 1인당 연간 주류 소비량이 앞으로 추가 감소해 7L까지 줄어들 거란 비관적 전망을 내놨죠.

미래를 알 순 없지만,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술은 이대로 우리 삶과 점점 멀어지게 되는 걸까요. 일단 이 그래프를 한번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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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립알코올남용연구소(NIAAA) 제공


1935년 이후 미국의 1인당 주류 소비량을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오른쪽 부분에 골짜기가 패어있는 게 보일 거예요. 1980년부터 1995년까지 이어진 미국 주류 시장의 대침체기입니다.

1980년대 미국 주류 업계는 여러모로 궁지에 몰렸습니다. 1982년 배우 제인 폰다가 출시한 에어로빅 비디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미국엔 에어로빅 열풍이 불었고요. 나이키가 이끈 조깅 붐까지 겹치면서 건강과 운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습니다. 칼로리와 건강 관리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이 술, 특히 독주를 멀리하기 시작했죠.

사회적으론 음주 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어요. 1980년 ‘음주 운전 반대 어머니회’가 조직돼 워싱턴을 움직였고요. 1984년 레이건 행정부는 주마다 달랐던(18~21세) 음주 연령을 21세로 상향, 통일했죠.

비디오와 케이블TV의 보급으로 집에서 즐길 거리가 늘어난 것도 1980년대입니다. 집안 엔터테인먼트가 바깥의 술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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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배우 제인 폰다가 1980년대 출시한 ‘워크아웃’ 비디오는 무려 1700만장이나 팔리며 미국에 에어로빅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미국에선 건강과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독한 술은 외면받기 시작했다. janefonda.com


술에 각종 규제와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지면서 ‘사회적 쿨함’이 줄어들었고요. 이 15년 동안 미국의 1인당 술 소비량은 23%나 줄었습니다. 특히 위스키 같은 증류주 소비는 35~40% 급감해 ‘독주는 끝났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그나마 맥주는 약 10% 감소에 그쳐, 상대적으로 선방했는데요. 일반 맥주 대신 칼로리를 낮춘 라이트 맥주로 시장이 재편됐습니다.

어쩐지 요즘 상황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은데요. 당시 주류업계는 그 긴 침체기를 어떻게 끝내고 되살아날 수 있었을까요. 한마디로 ‘이미지 세탁’에 성공한 덕분입니다. 다시 술을 힙하게 만든 건데요.

1990년대 후반, ‘섹스 앤드 더 시티’ 같은 드라마 속 주인공이 마시는 칵테일이 인기를 끌면서 독주가 세련된 음료로 탈바꿈했고요. ‘프랑스인이 심장병이 적은 이유는 레드 와인 덕분’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와인 한 잔은 건강에 좋다’는 (지금 보면 잘못된) 인식을 심어줬습니다. 또 고급 샴페인이나 테킬라 등이 성공한 사람이 마시는 럭셔리의 상징으로 통하게 됐죠. 결국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낸 마케팅의 승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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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엔 보드카가 들어간 칵테일 ‘코스모폴리탄’이 자주 등장한다. 워너브라더스 제공


지금 주류 업계도 비슷한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도수 0%의 무알코올 맥주, 캔에 든 하이볼 같은 저도주에 대한 투자를 빠르게 늘리고 있죠. 취하게 만드는 술이 아닌 ‘맛있는 성인용 음료’로 정체성을 바꾸려는 건데요. 술을 못 마시거나 건강을 생각해 멀리하던 사람까지 끌어 들일 수만 있다면, 업계엔 희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마운자로와 넷플릭스가 버티고 있어서 쉽지 않을 거라고요? 단기에 분위기를 반전하긴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인류는 무려 8000년 전부터 술을 만들어 마셨다고요. 인류의 유구한 ‘술 사랑’이 그렇게 쉽게 사라질 리는 없어 보이는데요. ‘부어라 마셔라’ 시대는 저물었지만, 대신 좀더 맛있고 멋있는 술의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해봅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2월 2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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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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