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인간은 실수하는 존재…용서와 관용은 그 주체에게도 ‘치유’를 준다

댓글0
아이돌 그룹 비스트 전 멤버 장현승
‘과오와 반성·회복의 서사’
경향신문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 의 <장현승이 달라졌다 [장현승 A/S 팬사인회 2화]> 썸네일. 유튜브 ‘MMTG 문명특급’ 채널 갈무리


최근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이 <아이돌 엑소시스트>라는 제목으로 한 달에 걸쳐 올린 4개의 영상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엑소시스트는 서양에서 악령을 쫓아내는 퇴치자를 뜻하는데, 미국의 공포 영화 <엑소시스트>의 전세계적 흥행으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단어다. 그런데 아이돌과 엑소시스트요? 이거 혹시 <케이팝 데몬 헌터스>예요? 해당 기획의 주인공은 아이돌 그룹 비스트(한동안 하이라이트)의 멤버였던 장현승이다. 2009년 데뷔한 장현승은 2016년 지속적인 태도 논란으로 구설수에 오르다 결국 팀을 탈퇴했다. 자신을 보러 온 팬들을 무시하거나, 스케줄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거나, 무대에서 가만히 서 있는 등의 행동이 빈축을 샀다. 팬과의 친밀감이 중요한 자원이고, 도덕성과 진정성이 미덕인 케이팝 아이돌에게 이러한 태도 논란은 범죄에 준하는 수준의 반발과 단죄를 초래한다. 케이팝 역사상 숱한 아이돌이 이 ‘태도의 난’에 추풍낙엽처럼 스러졌다. 그런데 이 중에서 장현승은 조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이돌 엑소시스트 영상은 장현승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것을 <문명특급>이 뚝딱 차려낸 기획이다.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이 과오와 반성, 용서와 신뢰의 서사를 따라가 보자.

장현승은 탈퇴하고 1년 후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사과문을 게시했다. 자신의 미숙함과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대중과 팬덤의 반응은 싸늘했다. 장현승의 탈퇴로 그룹은 큰 부침을 겪었고, 팬덤은 타격을 받을 만큼 받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런 식으로 자신의 잘못을 직면하고 사과하는 장면을 보기 힘든 현실에서, 장현승의 사과는 깊은 인상을 남기도 했다. 이후 군 복무를 이행하던 장현승이 ‘이달의 칭찬 릴레이’라는 사진에서 대원 모두에게 귀감이 된다는 설명과 함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등장하면서, “장현승이 군대에서 퇴마됐다”라는 농담이 밈(meme)화 되었다. 퇴마된 장현승이 팬들과의 소통 어플에서 주고받는 대화가 재미있다고 입소문을 타면서 문명특급 출연이 성사됐다. 장현승과 진행자 재재가 진행한 라이브를 2회로 나누어 올린 영상의 제목은 <악귀 퇴마 후 장현승 근황(w. 엑소시스트 재재)>, <장현승과 악귀 시절 목격담 읽고 최종 퇴마식 올렸습니다>. 팬들이 장현승이 ‘악귀 씌어 저지른’ 만행을 제보하면, 마늘 목걸이를 건 재재가 우렁차게 “악귀야 물렀거라”를 외친다. 주로 오랜 기다림과 설렘을 안고 찾아온 팬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사인회에서 무성의했던 사연이다. 팬과의 소통 어플에서 팬들이 보내는 메시지를 꼼꼼하게 읽고 재치 넘치게 답장하거나, ‘너희가 페이했으니 나는 너희의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라는 발언을 하는 (퇴마 후) 최근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장현승은 과거의 자신이 버릇 없다고 평가하며 아이돌에게 올 수 있는 악귀를 연차별로 구별해서 설명한다. 데뷔 초에는 들떠서, 중반에는 자신의 멋에 취해서, 연차가 차면 남의 떡이 더 커 보여서 악귀가 쓰인다는 설명에 아이돌 팬덤이 열광했다. 아이돌 교육 자료로 쓰여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악귀는 수많은 아이돌의 문을 두드리나 보다. 퇴마된 장현승이 악귀 쓰인 시절의 잘못에 참회하며 괴로워하자 문명특급 팀은 ‘A/S 팬사인회’라는 전무후무한 행사를 연다. 이는 장현승에게 만회의 기회를 주는 동시에, 상처 받은 팬들의 마음을 달래주려는 의도다. 영상의 3회는 사인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4회는 사인회 현장을 담았다. 사인회의 구성은 재치 넘친다. 참석한 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써서 걸고, 팬들을 웅장한 의자에 앉히고 장현승은 쪼그리고 앉아 올려다보는가 하면, 레드카펫을 깔았지만 장현승은 자격이 없으니 옆으로 걸어가라는 재재의 잡도리가 큰 웃음을 유발한다. 진지한 반성이 선행되었기에 잘못을 유머로 승화하는 접근도 유쾌했던 것이다.

경향신문

장현승 A/S 팬싸인회 포스터. 문명특급 공식 인스타그램 갈무리 @mmtg_oops


하지만 웃기기만 했다면 4회 <장현승이 달라졌다 [장현승 팬사인회 2화]>는 금방 조회수 100만회를 돌파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A/S 팬사인회라는 기획을 완성한 것은 사인회에 참여한 100명의 팬들이다. 한때 장현승에게 크게 상처 받았기에 그 자리에 모인 팬들은 장현승의 사과와 진심을 받아 들이고, 진심으로 행운을 빌어준다. “사람들이 오빠의 좋은 모습을 알아봐주는 게 좋고, 이런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벅차다.”라는 팬의 말에는 어떤 사람의 나쁜 행동이 그 사람의 본질이나 전체가 아닐 수도 있고, 그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다. 또한 상처를 받았지만 그것이 관계의 전부가 아니고 좋았던 순간이 분명 존재하며, 자신은 거기에 더 큰 의미를 둔다는 말은 그 말을 듣는 장현승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가 닿는다. 장현승과 팬이 주고받는 감정은 살면서 숱하게 잘못을 저지르고, 또 누군가의 잘못과 연루될 수 밖에 없으며, 사과하고 싶고 사과 받고 싶고 용서하고 싶고 용서받고 싶은 ‘나’와 ‘너’의 관계에 포개어진다.

아이돌 엑소시스트 영상과 장현승의 행보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누군가가 반성하고 변화하고자 하며, 그런 시도를 수용하거나 받아들이는 과정의 불편함과 어색함을 경험할 기회가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가해자는 즉시 나락으로 보내야 한다고 믿는 캔슬 컬쳐, 변화의 가능성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 온라인 파묘(과거의 게시물이나 잘못을 파내어 현재로 계속 소환하는 행위) 문화 속에서 가해자의 고통만이 목적인 복수극이 인기를 끈다. 자신의 잘못을 직면하는 일은 원래 힘든 일이지만, 이렇게 용서와 관용에 가혹한 구조에서는 더더욱 어렵다. 가해자가 방어적이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다. 용서와 관용에 인색한 사회에는 다양한 원인이 혼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가해자가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는 현실, 권력이 정의를 훼손하고 피해자를 기만하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는 용서와 관용은 피해자에게 강요되는 폭력일 수 있다. 변화와 용서가 피해자를 기만하는 윤리적 탈취가 될 우려도 한몫 한다. 영화 <밀양>에서 피해자가 힘겹게 유괴의 가해자를 용서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자신은 이미 종교를 통해 구원 받았다고 말하는 가해자의 평온한 얼굴을 보고 무너지는 전도연의 오열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또, 피해자의 고통을 가해자의 고통으로 보상할 수 있다는 환상이 처벌과 보복만을 갈구하게 한다.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박이대승, 오월의 봄, 2026)는 복수극처럼 대중이 가해자의 행위에서 감정의 피해를 보고 ‘강력한 처벌’을 통해 감정적 보상을 받으려 할 때 정작 피해자의 존재는 삭제되는 문제를 지적한다. 가해자의 고통을 원하는 피해자도 당연히 존재하겠지만 그것이 회복과 치유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피해자는 때때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괘씸함을 느낀’ 대중의 욕구와는 완전히 다른 것을 원한다. 장현승의 사인회에서 실제로 장현승에게 상처 받은 팬들이 보여준 태도처럼 말이다.

물론 범죄는 적절하게 처벌 받아야 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태도 논란처럼 도덕적이거나 규범적인 차원의 잘못이다. 성실하거나 겸손하지 않은 모습, 경솔한 발언은 바람직하지 않으나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히는 행위도 아니다. 누구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성숙하고 올바른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타인에게 집요하게 굴며 변화와 용서를 불신할수록, 인간이기에 언젠가는 실수하고 나쁜 선택을 할 자신의 목에 올가미를 걸게 된다. 용서는 그 사람의 잘못을 상쇄하거나 지우는 것이 아니다. 용서를 하고 말고는 전적으로 자유이기에, 여전히 장현승이 싫은 팬들은 싫을 것이고 그 감정 역시 정당하다. 그럼에도 용서와 관용이 중요한 이유는, 용서가 용서하는 주체에게도 치유의 효과를 거두기 때문이다. 흔히 용서 받는 대상만 그 수혜를 누린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돌 엑소시스트 영상에서 나쁜 경험을 한 주체가 사과를 수용하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모습을 본다. 사과를 수용 받은 용서의 객체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새로운 주체로 거듭난다.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믿고, 잘못한 사람이 뉘우치고 변화할 가능성을 믿을 때 더 나은 선택과 가능성이 움튼다. 삶은 한 발만 헛딛으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외나무다리가 아니고,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을 부정한다면 세상은 경직된 채 낡아갈 뿐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성과 용서의 기회가 젠더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장현승이 꾸준히 반성하고 뉘우칠 수 있었던 이유는 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 연예인이 독립운동가를 몰라보거나, 경솔한 발언을 하거나, 앞뒤가 다른 말을 했다는 이유로 매도당한 전적은 수두룩하다. 그 여성들에게도 그를 믿고 지지하는 존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경향신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주요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

이 기사를 본 사람들이 선택한 뉴스

  • 뉴시스'관광 100선'으로 기억하는 광복…문체부, 독립기념관·대구서문시장 등 소개
  • 스포츠조선김태리 싱크로율 100% 그 아역 맞아? '좀비딸' 최유리, 이번엔 웹툰 찢고 나왔다
  • 중앙일보손질 걱정 없이, 집에서 간편하게 전복 요리 도전해요! [쿠킹]
  • 연합뉴스조계종 종정 "폭우에 신음하는 이웃에 따뜻한 손 될 수 있느냐"
  • 아시아경제쓰레기도 미래 유산…매립지에서 물질문화의 의미 찾는다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