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1등만을 기억한다’는 말이 빈번히 회자됨에도, 어떤 2등은 1등보다 더 사랑받는다. E. B. 화이트의 ‘샬롯의 거미줄’(Charlotte’s Web, 1952)이 그런 경우다. 1953년 ‘안데스의 비밀’이 뉴베리 메달을 차지할 때 ‘샬롯의 거미줄’은 차석(次席)인 명예상을 받았다. 하지만 70여 년이 흐른 지금 ‘안데스의 비밀’을 읽는 이는 드문 반면, ‘샬롯의 거미줄’은 47개 언어로 번역되어 여전히 수많은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스쿨라이브러리저널’ 선정 ‘최고의 어린이소설 100선’ 리스트에선 ‘해리 포터’ 시리즈를 제치고 선두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 책이 시공을 초월해 사랑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진실한 우정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맞물려 이루는 자연의 섭리를 감동적으로 그려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아빠는 도끼를 들고 어디 가시는 거예요?”라는 펀의 물음으로 시작된다. 농부 아버지는 허약한 무녀리(한 태에 낳은 여러 마리 새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새끼) 돼지를 죽이려 하지만, 펀은 울며 매달려 이 갓난쟁이를 구해낸다. 윌버라는 이름을 얻은 이 돼지는 거미 친구 샬롯의 도움으로 도축될 위기를 모면하고 품평회 특별상까지 받는다.
화이트가 선택한 첫 문장은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한 생명이 세상에 나고서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폭력과 투쟁을 함축한다. ‘오만과 편견’이나 ‘안나 카레니나’ 같은 작품의 재치 있는 첫 문장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명문이다. 윌버의 생존과 승리의 이야기는 ‘어떤 생명이든 일단 태어났다면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독자에게 일깨운다. 세상의 모든 무녀리들, 나아가 새 생명에게 보내는 응원이자 격려인 셈이다.
화이트는 메인주 농장에서 직접 돼지를 기르고 헛간의 거미를 관찰하며 작품을 썼다. 자신이 속한 세계가 지닌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진정 사랑했기에, 그는 ‘샬롯의 거미줄’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좀처럼 양립하기 어려운 재미와 의미를 한꺼번에 독자에게 선사하는 이 책의 성취는 바로 그런 깊은 애정에서 비롯한다. 아직 읽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펼쳐볼 일이다.
신승한 광운대 교수·영미문학 |
[신승한, 광운대 교수·영미문학]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