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여전히 장애가 욕설로 사용되거나 약점이 될까 숨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당당히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드라마, 유튜브, 연극, SNS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중의 편견을 깨부수고 있다. <프레시안>은 장애를 소재로 대중문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살아온 과정, 활동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들어 봤다. 편집자
게이머 사이에서는 실력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게임 발로 하느냐"는 질문을 던지거나 '발컨'이라고 부르곤 한다. 질문도 호칭도 모욕을 주기 위해 비아냥대는 말이다. 손으로 조작한다기엔 형편없는 실력이라, 섬세한 작업이 어렵다고 여겨지는 발로 하는 듯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에 당당히 "맞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 말 그대로 발로 게임하기 때문이다. 편견과 달리, 손으로 캐릭터를 조작하는 어지간한 사람보다 실력이 좋다. 그는 현재 주로 하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상위 16%에 포함된다.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생방송으로 게임 화면과 발을 함께 송출하기까지 한다.
▲유튜버 '만능발'이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릴스. 많게는 822만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만능발 인스타그램 갈무리 |
숙련된 발재간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그는 '만능발'이란 이름으로 유튜브 활동을 하는 이시형(28) 씨다. 이 씨는 게임을 비롯한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손 대신 발을 사용하는 모습을 선보여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들은 수십~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다.
서울 관악구 소재 자택에서 만난 이 씨는 발로 게임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프레시안> 요청에 망설임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왼발로 키보드를 누르고 오른발로 마우스를 클릭하며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하는 일은 이 씨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일처럼 보였다. 하지만 평생 손으로 게임해 온 기자의 눈에는 생경하기 그지없는 장면이었다.
다만 이 씨는 이날 게임에서 패배했다. 그는 "이거는 페이커가 와도 못 이겨요"라고 했다. 페이커는 리그 오브 레전드 씬에서 가장 많은 국제대회 우승을 획득한 프로게이머다. 패배의 책임이 본인이 아닌 팀원들에게 있다는 뜻이다. 팀원을 탓하는 모습만은 손으로 게임하는 사람들과 똑같았다.
▲유튜버 '만능발' 이시형 씨가 본인의 자택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하고 있는 모습ⓒ프레시안(박상혁) |
이 씨가 발을 손처럼 다루게 된 배경엔 그의 장애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씨는 태어나는 과정에서 탯줄이 목에 감긴 탓에 뇌병변장애를 가지게 됐다. 다섯 살까지는 일어나지 못해 엉덩이를 끌고 다녔고, 여섯 살부터는 걸어 다닐 수 있게 됐지만 양손을 사용하지 못했다. 이후 성장 과정에서도 양손을 비롯한 상체를 마음대로 가누지 못해 비교적 능숙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발을 주로 쓰게 됐다.
다수 또래 친구들과 달랐지만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이 씨는 어려서부터 낙천적이고 사교성이 좋아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회장·부회장을 세 번이나 맡을 정도다.
이 씨와 학창시절을 함께 한 석환(28) 씨는 <프레시안>에 "학교에서 시형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사교성이 좋아 친구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도맡았다"라며 "많은 친구들이 시형이에게 '네가 하는 게 제일 적합하다'라며 회장 직을 맡을 것을 권유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이시형 씨ⓒ이시형 제공 |
장애는 이 씨가 게임에 흥미를 갖게 만든 요소기도 하다. 유년 시절 친구들과 밖에서 뛰놀고 축구도 하고 싶었지만, 장애가 이를 어렵게 했다. 반면 게임은 장애로 인한 장벽이 비교적 낮았다. 이 씨는 "게임은 몸의 한계를 그나마 덜 느낄 수 있어 좋아하게 됐다. 처음에는 조작이 어려웠고 실력도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낮았지만, 계속하다 보니 자연스레 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유튜브 활동은 이 씨 성장 과정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장애와 게임, 낙천적인 성격이 맞물린 결과다. 그는 자신의 장애가 숨길 일이 아니라 뽐낼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전까지는 찾아볼 수 없었던 '발로 게임하는 유튜버'를 자신이 한다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정확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 관심받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발로 게임 하는 건 솔직히 아무나 못 하는 거잖아요. 나만의 강점을 살려 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방송을 시작했어요. 최근 시청자가 많이 늘어서 1000명 넘는 사람들이 동시에 제 방송을 보기도 해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게 목적이라서, 제가 재밌다고 웃어주는 댓글을 보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해요."
▲제67회 문학의봄 신인상에 당선된 이시형 씨. ⓒ이시형 인스타그램 갈무리 |
이 씨에게는 유튜버 외에도 직업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시인이다. 2024년 제67회 문학의봄 신인상에 당선됨으로써 등단에 성공했다. 현재까지 60여 편의 시를 작성한 이 씨는 올해 출판사와 계약한 에세이 책을 낸 뒤 시집을 출간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게임 유튜버와 시인이라는 직업을 함께 갖는 게 어색해 보일 수 있지만, 이 씨의 성장 과정을 들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장애로 인해 외부 활동이 어려웠던 이 씨가 게임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부모의 눈치를 봐야 할 때 자연스레 발에 잡힌 게 책이었다. 독서량이 늘면서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교내 백일장에서 2등을 할 정도의 필력을 갖추게 됐다.
이 씨의 수상이 미심쩍었던 당시 국어 선생님은 이 씨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이 글 쓰는 걸 도와줬느냐"고 물었다. 이 씨의 부모님은 그제서야 아들이 백일장에 지원·수상한 것을 알았다. 오해를 푼 선생님은 이 씨의 부모님에게 "글 쓰는 데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 문예창작과로 대학을 준비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 씨의 부모님은 아들의 소질을 알아차린 뒤부터 물심양면으로 문학 생활을 돕기 시작했다. 30여년 동안 직업군인 생활을 하다 전역한 이 씨의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전국 팔도를 누비며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이 씨는 1년 만에 15개 백일장 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이를 토대로 중앙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이시형 씨가 1년 동안 전국 백일장에서 받은 상장ⓒ이시형 제공 |
이 씨는 현재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 스스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평가할 정도다. 하지만 자신의 삶의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나 본보기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조언할 자격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노력만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는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저는 제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해서 용기 내라, 힘내라 이런 말 하기가 좀 어려워요. 사람들마다 처한 환경도, 멘탈의 강도도 다르잖아요. 저보다 노력을 많이 해도 안 되시는 분들도 분명히 있으실 거고요. 그런데 어떻게 제가 감히 저를 보며 힘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아요."
실제로 이 씨 및 그의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다행히"와 "그래도"라는 표현이 두드러지게 자주 사용됐다. 몸을 전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다른 뇌병변장애인들과 달리 발을 능숙하게 쓸 수 있다는 점, 장애 아동을 원활히 교육할 수 있는 희소한 유치원을 다닐 수 있었다는 점, 학교폭력에 노출된 많은 장애 학생들과 달리 또래 친구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 장애를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가족이 있었다는 점 등이 언급될 때 그랬다.
그래서 이 씨의 목표는 단순하다. 장애인 유튜버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일조하는 것이다. 최근 이 씨는 게임 전문 유튜버의 범주에서 벗어나 여행, 운동, 예능 등 종합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로 거듭나고 있다.
"앞으로도 사람들이 영상 봐주시면서 많이 웃어주면 좋겠어요. 그게 제 행복이거든요. 더 많은 웃음 드리도록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유튜버 '만능발' 이시형 씨. ⓒ이시형 인스타그램 갈무리 |
[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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