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중구 북창동의 한 건물에서 불이 나 상층부가 타버렸다. 정주원 기자 |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 “오후 6시30분경 연기 냄새가 심하게 나서 밖으로 나와 보니까 이미 작은 불길이 보였어요. 처음에는 규모가 크지 않아 금방 잡힐 것 같았는데 장어집이라 기름때가 많고 건물이 오래돼서 그런지 불이 잘 잡히지 않더라고요.”
26일 화재가 발생한 서울 중구 북창동의 한 건물 근처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전날 상황을 이렇게 떠올렸다. 이곳에 상주하는 시민들이 유독 공포심을 느낀 건 화재 자체보다 ‘또 이곳에서’ 사고가 났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약 2년 전 바로 이 일대에서 9명의 목숨을 앗아간 시청역 역주행 참사가 발생했다.
점심시간이면 직장인과 관광객으로 붐비던 골목은 다음날에도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매캐한 탄 냄새가 거리를 뒤덮었고 문을 닫은 상가 앞에서 인근 상인들은 화재 장소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화재가 발생한 상가의 1층 한식당 입구의 모습. 화재로 타서 무너진 2층의 잔해들이 떨어져 주변이 어질러져 있다. 정주원 기자 |
화재는 전날 오후 6시22분께 3층 옥탑 구조의 목조 낡은 건물에서 시작됐다. 1층은 한식당, 2~3층은 민물장어집이 영업하고 있었다. 불이 나자 소방당국은 인력 122명과 장비 31대를 투입했고, 불길 확산을 막으려고 굴착기로 외벽 일부를 허물면서 진압에 나섰다. 약 3시간30분 걸려 불길이 완전히 잡혔다. 건물이 목재 구조였고 음식점 특성상 기름때가 쌓여 있어 진화가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화재 현장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50대 장수근 씨는 “오랫동안 장사해 온 가게라 더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전기도 끊기고 장사도 멈춰” 화재 여파로 상권 마비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주변 상권이 입은 피해는 컸다. 진화 과정에서 일대 전기가 차단되면서 상당수 업소가 문을 닫아야 했다. 인근 편의점 직원은 “퇴근 시간대부터 전기가 나가 새벽 2~3시쯤에야 복구됐다”며 “냉장·냉동 식품이 상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27일 오전 구청 관계자들이 화재 현장 주변을 청소하는 모습. 정주원 기자 |
완전히 타버린 화재 상가 외에도 양옆의 일부 건물엔 27일 점심께까지 전기 공급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화재 진압 과정에서 안전 확보를 위해 전날 오후 8시6분부터 10시22분까지 인근 상가 전력망을 차단했다”며 “현재 화재 건물 바로 옆 일부 건물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현장에서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텔과 주변 업소도 화재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인근 호텔 직원은 전날 화재 당시에 대해 “손님들이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지만 객실에서 냄새가 난다는 문의 전화가 몇 건 있었다”며 “불길을 크지 않았지만 북창동 일대가 연기로 뒤덮여 숨이 막힐 정도였다”고 했다.
인근 건물 1층 카페 사장 A씨는 “오후 6시 마감이어서 정리하고 집에 가려는데 냄새가 나기 시작하더라”며 “옆옆 건물이어도 워낙 다닥다닥 상가 건물들이 붙어있어 혹시나 불길이 번지지 않을지 걱정돼 퇴근 못 하고 한동안 지켜봤다. 상황이 조금 안정되면 다음 주부터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사고…터가 문제인가” 참사 기억 되살린 인근 상인·직장인
2024년 7월 1일 이 도로에서는 역주행 차량 돌진 사고가 났다. 차량이 인도로 돌진하며 시민 9명이 숨졌고 식당도 큰 피해를 봤다. 화재 건물 바로 옆에 있는 삼계탕 전문점은 역주행 사고 때 차량이 가게 안으로 들이닥쳤던 곳이다. 해당 식당 관계자는 “끔찍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또 사고가 나니 정말 절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열심히 복구해서 겨우 버티고 있었는데 또 이런 일이 생기니 마음이 무너진다”고 덧붙였다.
인근 약국 사장도 “시청역 사고 때도 사람들이 몰려 울고불고 난리였는데 이번엔 불까지 나니 너무 허탈하다”며 “사람 다친 건 없어서 다행이지만 계속 사건이 반복되니 겁이 난다”고 말했다.
27일 오전 청소 작업과 안전 감식을 위해 화재 장소 주변 출입이 통제됐다. 이곳은 정화 작업을 마친 오후 들어 출입이 허용됐다. 정주원 기자 |
다행히 불길은 주변 건물로 크게 번지지 않았지만, 밀집된 노후 상가 구조상 자칫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날 현장에서 작업하던 화재복구 전문업체 관계자는 “목재 구조와 기름을 사용하는 음식점이 밀집한 지역은 항상 위험 요소가 크다. 이번에는 확산이 막혀 그나마 피해가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최근 은마아파트 화재와 맞물려 노후화된 건물·소방시설의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전선·화재경보기·소방시설 등이 기존 건축물보다 연식이 오래된 데다가 내부가 목조로 이뤄졌는데 화기를 다루는 음식점이다 보니 화재 위험성이 매우 높은 곳”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이날 오전 10시께만 해도 해당 골목 전체는 출입이 통제된 상태였다. 오후에 접어들며 소방·경찰이 합동 안전 감식을 진행하고 화재 잔해 제거와 도로 정화 작업이 이뤄지며 전소된 건물 주변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통행이 다시 허용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