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규 기자(=김해)(cman9@hanmail.net)]
"김해의 원조 할아버지로서 수로왕을 의심할 사람은 없겠지만, 수로왕 집단도 처음부터 김해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즉 선진문화를 가지고 외부에서 이동해왔던 사람들이었다는 것.
이영식 김해 인제대 명예교수는 최근 이같이 주장했다.
이 교수는 "우선 수로왕의 이동 경로는 고조선(古朝鮮)이 있었던 서북한(西北韓) 지역을 주목해야 할 것"이라며 "<삼국사기>는 신라의 건국자에 대해 조선유민(朝鮮遺民)이 산과 계곡 사이에 살면서 시작되었다고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식 김해 인제대 명예교수. ⓒ프레시안(조민규) |
이 교수는 또 "조선유민이란 기원전 108년에 중국의 한(漢)에게 망하고 남았던 고조선 사람들이다"며 "고조선의 마지막 단계였던 위만조선(衛滿朝鮮)은 세계적 철의 제국이었던 한(漢)을 상대로 1년 동안이나 싸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만큼 고조선의 철기문화가 고도로 발달했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위만조선의 철기문화는 요하의 연화보유적과 청천강의 세죽리유적 등에서 잘 확인되고 있다"면서 "결국 한에게 패한 고조선의 유민들이 남하해 경주에 도착해 신라를 세웠고, 바닷길을 통했다고 생각됩니다만, 김해에 도착해 가락국을 세웠다"고도 했다.
이 교수는 "수로왕은 고조선에서의 국가적 경험과 철기문화를 가지고 당시까지 아홉 촌장들에 의해 영도되고 있던 부족연합의 구간사회를 통합했던 것이다"며 "구간사회인은 청동기문화와 고인돌을 남겼지만, 수로왕 집단은 철기가 부장되는 목관묘(木棺墓)와 목곽묘(木槨墓)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영식 교수는 "목곽묘는 수로왕 집단의 고향이었던 서북한 지역의 무덤 형태와 많이 닮아 있다"고 하면서 "지금까지의 자료에 따른다면 수로왕의 출신은 서북한 지역과 고조선의 멸망에서 구하는 것이 가장 정당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조민규 기자(=김해)(cman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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