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해동첨단공학관(303동) 5층 로봇 시연장. 엄마 손을 꼭 잡은 어린아이들이 네 발로 선 로봇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몸을 웅크렸다가 펴고는 한쪽 다리를 들어 귀를 긁는 동작까지 흉내 냈다. 강아지의 모션 캡처 데이터를 학습한 4족 보행 로봇이었다. 이영환 전기정보공학부 대학원생(26)은 "건설 현장에서 자재를 운반하거나 재난 현장에서 인명 구조에 활용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두 발로 걷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보다 4족 보행 로봇이 험하고 가파른 지형을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 활용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서울대학교 로보틱스 데이(SNU Robotics Day)가 열린 2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301동에서 강아지 로봇이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다. 이지예 기자 |
올해 2회째를 맞은 '서울대학교 로보틱스 데이(SNU Robotics Day)'에는 20여개 연구실, 60여명의 연구진이 참여해 성과를 공개했다. 행사의 화두는 단연 '인간 중심 기술'이었다. 최근 휴머노이드를 중심으로 한 열풍과 달리 현장에선 사람의 움직임을 보조하는 웨어러블 기술 등이 전면에 섰다. 인간-로봇 상호작용(HRI)을 중심에 두고 논의를 확장하겠다는 취지다.
시연장 안쪽에는 장갑을 낀 사람의 손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 하는 로봇 손이 방문객을 사로잡았다. 원격 조작 기술이 담긴 '웨어러블 글러브'다. 장갑을 낀 시연자가 엄지손가락을 안쪽으로 접자, 맞은편 로봇 손도 지체 없이 오므렸다. 박태준 박사과정생(30)은 "이 기술이 고도화되면 사람 손이 필요한 작업장의 자율화는 물론, 의사의 원격 수술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한 연구진이 2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로보틱스 데이(SNU Robotics Day)에서 '웨어러블 글로브'를 시연하고 있다. 이지예 기자 |
로보틱스 데이가 열린 301동 로비에는 각 연구실의 포스터가 빼곡히 붙었고, 연구진은 팀당 핵심 연구를 1분 동안 압축해 발표했다. 응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연구가 등장했다.
한 학생은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며 가상 인체 모델의 다리를 움직였다. 화면 속 아바타가 걸음을 옮기자 웨어러블 로봇의 구동이 함께 시뮬레이션 됐다. 임건호 컴퓨터공학부 박사과정생(29)은 "웨어러블 로봇은 사람 몸에 붙여 실험해야 하지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반복 실험은 한계와 비용 부담이 커 가상환경에서 제어 방식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다"며 "보행 보조 기술 고도화를 넘어 수술 이후 경과를 예측하는 분야로도 확장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2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열린 로보틱스 데이(SNU Robotics Day) 로봇 시연장 모습. 서울대 |
이번 행사의 기획자 중 하나인 김아영 기계공학부 교수는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소프트웨어 개발에만 매몰돼선 안 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행사의 핵심은 한국 로보틱스의 방향을 함께 짚어보는 것"이라며 "결국 사람을 빼놓고는 로봇을 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단순한 상용화 문제보다 기술의 '적재적소 배치'를 최대 과제로 꼽았다. 김 교수는 "코너 케이스(현장에서 발생하는 변수)까지 고려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작동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을 위한 기술'에 방점이 찍힌 행사답게 기계·전자공학 전공자만의 무대는 아니었다. 의류학·바이오 등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가 대거 참여해 사람의 움직임과 사용성을 연구하고 있었다. 김민경 의류학과 석사과정생(25)은 "영화 '아바타'처럼 로봇을 활용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며 "아무리 뛰어난 로봇이라도 사람이 쓰기 불편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로봇을 위한 로봇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로봇'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헨릭 크리스텐슨 교수가 2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로보틱스 데이(SNU Robotics Day) 로봇 시연장을 둘러보고 있다. 서울대학교 |
오후에는 '글로벌 로보틱스 포럼'을 통해 기술의 속도보다 방향성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논의가 이어졌다. 헨릭 크리스텐슨 미국 UC샌디에이고 교수와 박종우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가 무대에 올라 인공지능(AI) 로봇 시대의 과제를 짚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연구의 방점을 '과시'가 아닌 '현장 적용'에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것과 산업 현장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한 학생이 '로봇 기술이 가장 적합한 분야는 무엇인가' 묻자 그는 "그렇게 묻지 말고 현장(real world)에 나가보라.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최근 휴머노이드 열풍에 대해 "그저 꿈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는 "로봇계는 지금 과하게 팔고 기대에 못 미치는(overselling and underdelivering) 상황"이라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당장 모든 가정에 휴머노이드가 들어갈 것처럼 말하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꼬집었다. 휴머노이드가 가정에 보편적으로 보급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제한적인 능력을 갖춘 로봇에 1만달러를 지불하진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로봇 산업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 그는 "한국의 제조업은 훌륭한 산업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며 "삼성·LG가 만든 제품을 전국이 사용하는 것은 제조뿐 아니라 유통 시스템도 강하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러면서 "더 글로벌한 마음가짐을 갖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이지예 기자 eas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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