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기 길고, 흉통 등 증상 서서히 진행
발견 후 치료 늦으면 2년내 사망률 50%
기존 흉골 절개 통한 수술 고령자에 부담
TAVI, 0.5㎝ 내외 절개로 통증 등 줄여
대부분 시술 후 2~3일내 퇴원 가능 장점
경희대병원 심장내과 이진호 교수가 TAVI 시술을 진행하고 있다. 경희대의료원 제공 |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퇴행성 심장질환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동맥판막협착증'은 노인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과거에는 고령이라는 이유로 치료를 포기해야 했던 이 질환이 최근 '경피적 대동맥판막치환술(TAVI)'이라는 혁신적인 시술 도입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26일 경희대병원 심장내과 이진호 교수는 "대동맥판막협착증의 가장 흔한 원인은 노화에 따른 석회화이며, 선천성 이첨판막 기형이나 류마티스성 심질환도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중증으로 진행해 증상이 동반되면 약물치료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판막 교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90세 고령 환자도 회복 가능
올해 90세인 A씨는 8년 전 뇌경색과 관상동맥 협착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당시 심장초음파 검사에서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 진단도 함께 받았다. 하지만 고령과 기저질환을 고려할 때 흉부를 절개하는 개흉수술을 견디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약물치료로 경과를 관찰해 왔다.
그러나 최근 평지를 걷는 것조차 힘들 만큼 호흡곤란이 악화됐고 결국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판막이 거의 닫혀 혈액이 온몸으로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경희대병원 하트팀은 환자의 전신 상태를 면밀히 평가한 끝에 TAVI 시술을 결정했다. 시술은 약 1시간 만에 마무리됐고, A씨는 가슴에 흉터를 남기지 않은 채 시술 3일 만에 스스로 걸어 퇴원했다.
우리 심장에는 혈액이 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돕는 4개의 판막이 있다. 그중 대동맥판막은 심장에서 대동맥으로 나가는 마지막 관문이다. 이 판막이 노화로 인해 딱딱하게 굳는 석회화가 진행되면서 제대로 열리지 않는 질환이 대동맥판막협착증이다.
이 질환의 특징은 잠복기가 길다는 점이다. 판막이 서서히 좁아지는 동안 심장은 부족한 혈류를 보상하기 위해 근육을 두껍게 하며 버틴다. 그러나 한계를 넘어서면 흉통, 실신, 심한 호흡곤란 등의 3대 증상이 나타난다. 증상 발현 후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2년 내 사망률이 5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슴 열지 않는 판막치환술
과거에는 흉골을 절개하고 심장을 일시적으로 멈춘 뒤 판막을 교체하는 '수술적 대동맥판막치환술(SAVR)'이 유일한 치료법이었다. 그러나 80세 이상 고령 환자에게 전신마취와 인공심폐기를 동반한 수술은 큰 부담이었다.
TAVI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한 시술이다. 허벅지 대퇴동맥을 통해 가느다란 도관(카테터)을 삽입해 병든 판막 위치에 인공판막을 전달한 뒤, 풍선 확장 또는 자가 확장 방식으로 펼쳐 고정한다. 기존 판막을 제거하지 않고 그 위에 새 판막을 삽입하는 방식이다.
사타구니에 약 0.5cm 내외의 작은 절개만으로 가능해 통증과 흉터 부담이 적고, 대부분 시술 후 2~3일 내 퇴원이 가능하다. 전신마취 부담도 상대적으로 낮아 90세 이상 초고령 환자나 만성질환자도 치료 대상이 될 수 있다.
TAVI는 직접 시야를 확보하는 수술이 아니기 때문에 사전 영상 분석의 정밀도가 매우 중요하다. 시술 전 시행하는 다중시기 심장 CT는 일종의 설계도 역할을 한다.
의료진은 CT를 통해 판막의 석회화 분포, 대동맥륜의 크기와 형태, 관상동맥 입구와의 거리 등을 정밀 분석한다. 판막 크기가 맞지 않으면 조직 파열이나 판막 주위 누출 등의 합병증 위험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환자 해부학적 구조에 가장 적합한 판막 종류를 선택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정확한 사전 시뮬레이션이 시술 성공률을 높이고 합병증을 낮춘다"고 말했다.
TAVI는 심장내과 의사 한 명의 기술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하트팀'이라 불리는 다학제 협진 체계가 필수적이다.
심장내과는 도관을 조작해 판막을 안착시키는 시술의 메인 집도를 맡고, 시술 중 실시간 초음파를 통해 판막의 위치와 기능을 평가한다. 흉부외과는 시술 중 발생할 수 있는 긴급 상황(혈관 파열 등) 시 즉각적인 개흉 수술로의 전환 대기 및 수술적 위험도를 공동으로 평가한다. 영상의학과는 초정밀 CT 분석을 통해 시술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마취통증의학과도 시술 중 환자의 활력 징후 모니터링 및 안정적인 상태 유지를 보장한다.
■수명 연장 넘어 삶의 질로
최근 의학계의 화두는 TAVI의 적용 범위를 어디까지 넓힐 것인가이다. 초기에는 수술이 불가능한 고위험군 환자에게만 시행됐으나, 현재는 중등도 위험군은 물론 해외 임상 결과에 따라 저위험군 환자에게도 TAVI가 수술 못지않은 성적을 내고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하지만 초고령 환자를 치료할 때는 질환 자체뿐만 아니라 환자의 '전신 건강 점수(Frailty)'를 따져야 한다. 근력이 너무 없거나 인지 기능이 심하게 저하된 경우, 혹은 신장 기능이 매우 좋지 않은 경우에는 시술 후의 기대 효과가 낮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치료의 목표는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니라 환자가 다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산책을 하고 가족과 식사를 나누는 삶의 질 회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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