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왜곡죄' 국회 본회의 통과 |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형사사건에서 법관이나 검사, 경찰이 고의로 법을 왜곡해 적용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는 '법왜곡죄법'이 26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향후 수사·재판 관행에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해당 법 조항이 직접적으로 겨냥한 법관들의 경우 어려운 판결은 미루고 논쟁의 여지가 큰 사건에선 '무난한 판결'만 하게 돼 새로운 시각이나 법리를 내세우고, 기존 인식에 도전하는 선도적 판결 사례를 찾기 어렵게 되리란 지적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온다.
이런 경향이 심화해 지속하면 결국 하급심 판결과 대법원 판례 형성 과정에까지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급심 선행 판결을 깨면 동료 법관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안전지향적 판결을 선호하게 되고 종국에는 3심제의 기능이 유명무실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법개혁안 처리 시동…법관대표들은 내일 정기회의 |
법왜곡죄는 형사사건의 재판에 관여하는 법관, 검사 또는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타인에게 위법 또는 부당하게 이익을 주거나 권익을 해할 목적으로 법을 왜곡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법왜곡 행위는 ▲ 법령의 적용 요건이 충족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적용하거나, 적용돼야 할 법령임을 알면서도 적용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재판·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경우 ▲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변조하거나 위조·변조된 증거를 사용한 경우 ▲ 위법하게 증거를 수집하거나, 적법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범죄사실을 인정한 경우로 정했다.
법안이 통과되면서 앞으로는 법왜곡이 의심되는 법관 등을 수사기관에 고소·고발할 수 있다. 수사 결과 특정 법관이 고의로 법을 왜곡했다고 판단해 재판에 넘기면 다른 법관이 해당 법관의 법왜곡 여부를 살피게 된다.
법왜곡죄법은 과거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 직후에도 도입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사법의 독립성을 흔들고 사건 관계자들의 고소·고발 남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입법화하지 못한 채 유야무야됐다.
그러나 작년 3월 지귀연 재판부의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과 그해 5월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 공직선거법 사건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계기로 논의는 재점화했다.
법왜곡죄 적용 대상은 법관과 검사, 경찰 등이지만 법관이 주요 타깃이 됐다. 이 대통령 당선 이후 민주당이 사법 불신 여론을 강조하며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제 도입 등과 함께 법왜곡죄 신설을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면서다.
민주당은 법왜곡죄법 도입으로 법관이나 검사가 임의로 법리를 왜곡해 판결·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지귀연 재판부의 윤 전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 이에 대한 심우정 전 검찰총장의 즉시항고 포기 등과 같은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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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법조계 안팎에선 논의 초기부터 부작용 우려가 강하게 제기됐다.
범죄 구성요건이 불명확해 죄형법정주의, 형벌 법규의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법왜곡죄법는 '위법 또는 부당하게 이익을 주거나 권익을 해할 목적'을 구성요건으로 둔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이뤄지는 판단 대부분은 당사자 일방에게는 이익이 되고 상대방에게는 불리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결과적으로 어떤 판단이 누구에게 이익이나 해가 된다면 이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대법원은 법왜곡죄법에 대해 "개별 증거를 종합적으로 살펴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법규범을 적용하는 재판 업무 특성상 법관에게는 사실인정에 폭넓은 재량이 인정된다"며 "본질적 특성상 법관의 재판 업무가 법왜곡 행위와 구분이 매우 어렵다"고 우려한다.
사법권 독립 침해와 법관의 직무수행 위축 가능성도 거론된다. 법관이 고소·고발, 형사 처벌을 우려해 기존 선례에 따르는 안전한 선택을 하도록 만들고, 결국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한 전향적 판결을 내놓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하급심 법관들이 상소(항소·상고)심에서 판결이 취소될 경우 피고인으로부터 고소당해 잠재적 피의자가 될 우려가 있으므로 상급심 법관 역시 하급심 판결을 깨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거란 염려도 있다. 3심 심급제도의 실효성이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은 본질적으로 여러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있다"며 "만약 재판 과정이나 결과에 오류가 있으면 상급심에서 바로잡는 게 정상적인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실제 고소·고발이 돼서 수사 가능성이 있는 것 자체가 법관에게 위축 효과를 불러온다"며 "결국 어려운 사건은 기존 판례에 따르거나 처리하지 말라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법왜곡죄 도입 시 고소·고발이 더욱 남발되고 동일한 사건에 대해 수사와 재판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법관은 "법왜곡이라고 기소를 한 사건에서 판사가 무죄로 판단하면 '제 식구 감싸기'라고 또 법왜곡으로 고소하지 않겠느냐"며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왜곡죄를 둘러싸고 당내에서도 위헌 우려가 나오자 민주당은 본회의 상정 직전 법안을 수정해 위헌 요소를 최소화했다고도 강조했지만, 법관들 사이에선 "달라진 게 없는 수정안"이라는 평가가 다수다.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
전국 법원장들도 전날 긴급 임시회의를 열어 법왜곡죄 입법 강행하는 여권에 강한 유감과 우려를 표명했다.
법원장들은 "법왜곡죄 수정안을 고려하더라도 범죄 구성요건이 추상적이어서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수 있고, 처벌조항으로 인해 고소·고발이 남발되는 등 심대한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재판의 신속과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냈다.
법원장들은 "국민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안들이 사법부와 사회 각계 우려 표명에도 개편 부작용에 대한 숙의 없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됐다"며 "심각한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al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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