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에는 활동량이 줄어든다고 해서 무조건 적게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노년기에는 오히려 줄어드는 근육을 지키기 위해 젊은 시절보다 더 높은 밀도의 영양 섭취가 필수적이지만, 현실은 밥, 국, 김치 위주의 식단으로 칼로리만 채우고 단백질은 놓치는 '배부른 영양실조'가 빈번하다. 이정주 임상영양사(용인세브란스병원)의 자문을 기반으로 약해진 치아와 소화 기능을 고려해 영양소 흡수율을 높이는 조리법과, 만성질환을 동시에 관리하는 현명한 식사 원칙을 알아본다.
탄수화물 늘고 단백질은 실종… 노쇠 부르는 '단순한 밥상'
어르신들은 삼시 세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어도 막상 검사를 해보면 영양 결핍인 경우가 많다. 최근 발표된 '2025 한국인 영양소 섭취 기준'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해당 기준에 따르면 노년기에는 신체 활동 저하 등으로 인해 성인 대비 하루 에너지 요구량이 약 10~20% 감소한다. 이는 전체적인 식사량(칼로리)은 줄이더라도,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단백질 권장량'만큼은 젊은 시절과 동일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소화가 안 되거나 치아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고기 등 단백질 섭취는 확연히 줄어드는 반면, 오히려 섭취를 줄여야 할 밥이나 국수 등 탄수화물의 비중만 늘어나는 것이 노년층 영양 결핍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소화가 안 된다고 고기를 피하고 나물이나 김치 위주로 식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식물성 식단이 만성질환에 좋다는 것은 잡곡, 견과류, 콩, 두부 등 다양한 식품으로 영양 균형을 맞췄을 때의 이야기다.
실제로 '한국 노인의 식사 섭취와 노쇠와의 연관성 연구(국민건강영양조사)'를 보면, 근력과 신체 기능이 저하된 어르신들은 건강한 노인에 비해 육류, 어패류, 우유 등 주요 단백질 급원 식품 섭취가 턱없이 부족했다. 이정주 임상영양사는 "식사량을 줄일 때 고기 같은 단백질을 먼저 빼는 것은 금물"이라며, "오히려 줄여야 할 것은 탄수화물"이라고 강조했다.
단백질 파우더, 혈당 상승 위험도… 고기는 먹기 쉽게 조리해야
단백질 보충을 위해 고기 대신 파우더나 음료만 마시는 것은 어떨까. 이정주 임상영양사는 "단백질 파우더의 급원은 대부분 유청이나 콩 단백질로 매우 제한적이라 모든 필수 아미노산을 온전히 채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단백질이 소화·대사 되려면 비타민과 무기질이 조효소 역할을 해야 하는데, 단백질만 있는 파우더를 과잉 섭취하면 체내 영양소가 고갈되고 간과 신장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단맛을 내기 위한 첨가물은 당뇨 환자의 혈당을 올릴 위험도 있다. 따라서 살코기, 생선 등 자연식품을 골고루 먹는 것이 최선이다. 육류에는 다른 식품으로 완전 대체가 힘든 비타민 B6, B12, 철분, 아연이 풍부하다. 위산과 펩신(소화효소) 분비가 줄어 소화가 벅차다면 다음과 같이 조리법을 바꿔보자.
- 표면적 넓히기: 잘게 다진 고기를 구입해 요리한다.
- 부드럽게 조리: 요리 중 물을 붓고 오래 끓여 표면을 부드럽게 만든다.
- 믹서기 활용: 치아 기능이 매우 저하됐다면, 삶은 고기를 블렌더로 갈아 된장국이나 미역국의 육수처럼 활용한다.
물에 밥 말아 먹기 '독'… 잡곡밥 '2중 삶기'로
입맛이 없다고 물이나 국물에 밥을 호로록 말아 먹는 습관도 위장과 영양에 치명적이다. 이정주 임상영양사는 "수분을 한꺼번에 많이 섭취하면 얼마 없는 소화효소마저 희석되어 소화가 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또한 탄수화물 대사에는 비타민 B군이 다량 소모되는데, 밥만 먹고 반찬을 안 먹으면 결핍 증상이 올 수 있다. 국을 먹을 때는 고기, 생선, 두부가 풍부하게 들어간 영양국을 끓여 '건더기' 위주로 씹어 먹어야 한다.
소화 능력이 저하된 노인의 경우, 당뇨와 고혈압 관리에 필수인 '잡곡밥' 섭취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잡곡은 혈당을 천천히 올리고 비타민 B1, B2가 풍부하지만 소화가 어렵다. 이럴 땐 오랫동안 물에 불려 전기밥솥의 '잡곡 모드'를 쓰거나, 잡곡만 먼저 삶은 뒤 쌀과 섞어 밥을 짓는 '2중 삶기'를 권장한다. 불가피하게 백미를 먹어야 한다면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와 다양한 반찬을 반드시 곁들여야 한다.
감퇴한 미각, 소금 대신 감칠맛 돋는 양념 활용해야
단백질 부족 못지않게 노년기 밥상을 위협하는 또 다른 문제는 바로 '둔해진 미각'이다. 나이가 들면 미각 세포가 퇴화해 자꾸만 간을 세게 하고 단맛을 찾게 된다. 문제는 단맛을 더할수록 짠맛이 약하게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소금을 더 들이붓게 되는 치명적인 악순환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소금 대신 '식초나 레몬즙'을 활용해야 한다. 신맛은 짠맛을 훨씬 강하게 느끼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새콤한 맛을 살짝 더해주기만 해도 혀가 짠맛을 훨씬 잘 느끼게 되어, 소금을 많이 넣지 않아도 간이 충분히 배어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트륨 섭취를 줄이면서도 입맛을 살리는 훌륭한 속임수인 셈이다. 여기에 달래, 양파, 쑥갓, 미나리 등 향이 강한 채소나 후추, 겨자 같은 향신료를 더하는 것도 방법이다. 처음부터 무조건 소금을 많이 첨가하기 보다 국간장, 멸치액, 참치액 등 고유의 풍미와 감칠맛을 지닌 양념을 소량 활용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불 쓰기 귀찮다면 빵 대신 '도시락' 선택하고, 미니 샐러드 곁들여야
매번 장을 보고 반찬을 만들어 간을 맞추는 요리 과정은 어르신들에게 체력적으로 만만치 않은 일이다. 특히 혼자 지내시는 경우, 불 앞에 서서 요리하기가 힘에 부쳐 빵이나 떡으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식단은 단백질은 부족하고 탄수화물만 과잉 섭취하게 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요리가 힘들다면 차라리 편의점이나 대형 마트의 도시락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편이 낫다.
도시락을 고를 때는 소시지 같은 가공육이 많은 것보다 살코기, 생선, 계란, 두부 반찬이 1~2개 이상 포함된 것을 선택해야 단백질을 채울 수 있다. 소스 양을 조절하기 힘든 덮밥류보다는 밥과 반찬이 분리된 일반 도시락 형태가 나트륨 섭취를 줄이는 데 유리하다. 또한, 시판 도시락만으로는 채소 섭취량이 턱없이 부족하므로 별도의 미니 샐러드를 하나 더 곁들여 영양 균형을 맞추는 것을 권장한다.
임상영양사 추천 소화가 편한 '영양 식단'
고기를 씹기 부담스럽고 매번 반찬을 차려 먹기가 버겁다면, 전문가가 짠 식단 표를 참고해 보자. 이정주 임상영양사가 맛과 영양은 물론 소화 흡수율까지 한 번에 잡은 현실적이고 간편한 메뉴들을 추천했다.
- 소고기 버섯 미역국
소고기(40g), 버섯(20g), 건미역(3g)을 넣고 끓인 뒤, 들기름과 국간장(또는 멸치액)으로 간을 한다. 액젓의 감칠맛을 활용하면 소금(나트륨) 사용을 줄이면서도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든든하게 챙길 수 있다.
- 황태 두부 뭇국
황태채(10g), 두부(40g), 무 또는 숙주(40g)를 넣어 끓인다. 육수를 낼 때 쓴 고운 다시마 채는 버리지 않고 건더기와 함께 씹어 먹어 식이섬유를 섭취하고, 소화가 힘든 콩나물 대신 숙주를 사용해 위장의 부담을 덜어준다.
- 나물 비빔밥
일반 고추장 대신 간장에 다시마 육수와 다진 채소(부추, 달래, 파프리카, 양파 등)를 듬뿍 섞은 '특제 저염 간장'을 만들어, 다양한 나물과 함께 밥에 비벼 먹는다.
- 한입 라이스페이퍼 롤
라이스페이퍼에 삶은 새우나 불고기, 계란지단, 채 썬 채소를 넣고 한 입 크기로 말아준다. 소형 채썰기 기계를 활용하면 편리하며, 멸치액, 식초, 올리고당, 다진 채소를 섞어 만든 상큼한 '저염 피시소스'를 곁들인다.
무조건 제외하기보다 '먹을 수 있는 방법' 찾아야
나물 반찬을 매번 무치기 번거롭다면 마른 김이나 상추쌈을 매끼 곁들이는 식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 매번 생선 굽기가 힘들고 냄새가 부담스럽다면, 냉동 동태 살을 구비해 두고 단백질이 부족할 때 한두 개씩 간편하게 부쳐 먹는 것도 훌륭한 대안이다. 고기를 매번 조리하기 버겁다면 다짐육을 한 번에 사서 소금과 후추로 볶아 소분 냉동해 두자. 필요할 때마다 꺼내 된장국이나 나물볶음에 소량씩 섞어 먹으면 씹는 부담 없이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다. 단, 냉동한 고기는 한 달 이내에 소비하는 것이 좋다.
이처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요령들이 모여 노년기 건강의 뼈대가 된다. 마지막으로 이정주 임상영양사는 "이런저런 이유로 식사를 대충 거르거나 특정 식품을 식단에서 아예 제외하기보다는, 조리법을 바꾸어 내 몸 상태에 맞게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조정해 나가는 것이 노년기 식단 관리의 핵심"이라고 힘주어 당부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당뇨병, 비만, 고혈압, 골다공증 등 만성질환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질환은 약물치료뿐 아니라 일상 속 식단 관리가 곧 치료이자 예방법이 될 수 있어 '무엇을 먹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환자가 스스로 식단을 구성하기는 쉽지 않고, 인터넷 정보는 과다해 혼란을 주기도 한다. 이에 하이닥<건강식단>은 임상영양사와 함께 질환별 식단 원칙, 올바른 식재료 선택법, 피해야 할 실생활 습관 등을 통해 건강한 식생활 실천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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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금 기자 hidoceditor@mcircle.biz저작권자>건강식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