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공연 사진.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
[파이낸셜뉴스] “신이여, 이 사랑을 심판하소서.”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도록 뒷면에 새겨진 글귀로, 원작 소설에서 따온 문장이다.
지난 20일 개막한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서 검정 드레스를 입고 팜므파탈처럼 등장한 안나는 마치 철도 위 기차처럼 사랑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채 폭주하고, 결국엔 핏빛 드레스를 입고 절망을 토해낸다.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 ‘안나’ 역 김소향은 2막 오페라 공연 장면에서 마치 사회 규범에 맞선 외로운 로커처럼 무대를 장악하고, 당시 결혼한 여성이 지켜야 할 의무에서 이탈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안나와 젊은 장교 브론스키의 불같은 사랑과 달리 한차례 실연의 아픔을 겪은 레빈(노윤)과 키티(윤소리)의 사랑은 서서히 무르 익어 대조를 이룬다.
철도역은 이 작품의 주된 배경이다. 실제로 러시아에서는 1851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잇는 철도가 완공됐다. 안나는 이 철도를 타고 아마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터. 작품에서 철도역은 사랑이 시작된 곳이자 끝이 나는 상징적 공간이다.
2018년 재연 이후 7년만의 귀환
'안나 카레니나'는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러시아 뮤지컬로, 지난 2019년 재연 이후 약 7년 만에 돌아왔다. 다양한 영상을 활용한 무대를 비롯해 러시아의 낭만적인 겨울 풍경과 발레 동작 안무, 클래식·록·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특징적인 작품이다. 특히 2막에서 19세기 후반 유럽을 대표하는 실존 인물, 소프라노 아델리나 패티를 모델로 한 오페라 공연 장면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다.
이날 공연에서는 패티 역 한경미의 드라마틱 보컬로 듣는 ‘오, 나의 사랑하는 이여!’와 ‘그 없이 살수 없다’며 자신의 사랑에 집착하는 안나의 절망이 폭발하며 극의 고조를 향해 달려갔다. ‘오, 나의 사랑하는 이여!’는 잔잔하게 안나의 내면을 들려주다가 후회의 감정이 절정으로 치닫는 과정을 탁월한 기교와 드라마로 표현해야 하는 매우 난이도 높은 클래식 곡이다.
톨스토이의 원작소설에서 안나의 비극은 단순한 불륜 서사가 아니라, 19세기 러시아 상류사회가 강요한 규범과 개인의 욕망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존재론적 파열로 해석된다.
하지만 대극장 뮤지컬 장르의 특성상 원작의 철학과 사회적 맥락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안나의 직진 행보는 때론 당혹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이 내린 뒤 안나의 선택과 그의 비극적 결말을 한 번쯤 곱씹어 보게 된다는 점에서 원작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공연 초반이기 때문인지 배우들의 역할 몰입도가 다소 아쉬운 가운데, 가창력을 뽐낸 김소향의 존재감은 인상적이다.
알리나 체비크 연출은 "이번 작품의 핵심 메시지는 첫번째 넘버에 담겨있다"며 "우리가 평생 행복을 찾아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전한다"고 말했다. "특히 '자유와 행복' 넘버는 작품의 클라이맥스로, 안나가 평생 추구해온 가치를 응축해 보여주는 장면이자, 그녀가 이를 이루기 위해 기존 사회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모습을 담고 있다"고 부연했다. 3월 2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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