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매매 매물은 쌓여가는데 전세 물량은 급감하는 이른바 '매물 엇박자' 현상 속에 실수요자들의 방황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성동구 등 주요 재개발 추진 지역에선 전세 매물이 1년 새 반토막 줄었다. 전세 수급 불균형이 월세 수요 증가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직장인들의 주거비 부담도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향후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시행과 맞물린 정책 미세 조정 등이 이 수급 불균형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25일 기준 서울 성동구에 나와 있는 전세 매물은 551건으로 지난해(1401건) 대비 약 40% 줄었다. 사진은 성동구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업소.[사진=김민지 기자] |
직장인 박모 씨는 최근 서울 성동구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를 전전하다 허탈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고 전했다. 성동구는 강북권 최대 규모의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며 향후 1만 가구 규모의 초고층 주거벨트 형성이 예고된 서울 내 핵심 입지다. 그렇다보니 철거를 앞두고 당장 입주할 수 있는 전세 매물은 손에 꼽을 정도라는 얘기다.
이런 목소리가 과장된 것인지 통계치를 들여다보면 현장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과 서울부동산광장 등에 따르면 24일 기준 성동구 아파트 전세 물건(공급량)은 1년 전 1363건보다 약 60% 쪼그라든 555건에 불과하다.
박 씨가 거주하는 동대문구 역시 2월 말 기준 매매 물건이 전월 대비 31.3% 급증하며 1992건까지 쌓인 데 비해, 전세 물건은 424건으로 전년 대비 70% 줄어들었다. 전월(615건)에 비해서도 200건이나 감소한 수치다. 매매 시장의 공급 확대가 임대차 시장의 공급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성북구의 경우 수급 불균형이 더욱 극단적이다. 설 연휴 전 1597건이던 매매 매물 수는 24일 기준 1903건으로 약 20% 증가했다. 반면 전세 매물은 1년 전 1359건에서 현재 124건으로 91%나 급감했다.
전통적 상급지인 강남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월 기준 매매 물건은 8800건 이상으로 켜켜이 쌓이고 있지만, 나와있는 전세 물건은 1년 넘게 꾸준히 5000건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관악구 아파트 매매 물건은 1900건으로 전월 동기 대비 14.2% 증가한 반면, 나와 있는 전세 물건은 전년 대비 78% 급감한 161건에 불과하다. 지난 1월(235건)과 비교하더라도 한달만에 약 70건 감소한 수치다.
서울 전체로 확장해 보면 매매와 임대차 물건 물량은 뚜렷하게 대비된다. 24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물건은 6만5000건 넘게 올라와 있는 반면, 아파트 전세 물건은 1만8932건으로 집계됐다. 전세 물건량은 전년 같은 기간(2만8942건) 대비 1만건이나 감소한 수치다.
매매용 물건은 넘치는데 전세 거래는 얼어붙은 셈이다. 매매 시장에 매물이 쌓이는 것과 달리, 세입자들의 선택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를 앞두고 매도는 증가했지만, 임대차 시장의 공급 여력은 회복되지 못한 모습으로 풀이된다.
성동구 인근 중개업소 대표 A씨는 "지금 직전 거래가보다 1억~2억 원씩 낮춘 급매물이 나오지만, 대출 규제 때문에 거래까지 이어지긴 쉽지 않다"며 "집주인이 팔려고 집을 비우거나 새 주인이 실거주를 위해 입주하면서 기존 전세 물량이 시장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A씨는 "매매가격이 조정 흐름을 보이는 상황에서 집주인들이 전세를 끼고 버티기보다 실거주 매도나 월세 전환을 택하는 사례가 늘었다"며 "실거주 의무 강화와 대출 규제가 맞물리며 매물이 임대차 시장으로 유입되는 통로가 차단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임대차 계약에서 월세 비중은 최근 60%를 넘어섰다. 신규 계약 10건 중 6건이 월세로 체결되고 있는 셈이다. 전세를 원해도 시장에 물건이 없어 억지로 월세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이른바 '비자발적 월세 난민'이 양산되는 배경이다.
전세를 구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월세로 몰리면서 가격 상승 압력은 커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150만40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150만원 시대'를 열었다. 2년 전보다 36.7%나 오른 수치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기준 서울 30대 직장인의 평균 세후 소득(약 350만원)과 비교하면 소득의 40% 안팎이 주거비로 지출되는 셈이다.
박 씨는 "월급을 받으면 절반 가까이가 바로 집주인 계좌로 '자동 이체'된다"며 "적금은 커녕 당장 먹고 쓰는 비용부터 줄여야 할 판인데, 전세를 원해도 선택지가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조치 기간 연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서울을 포함한 규제지역에서 양도세 중과를 회피하려는 일부 다주택자들의 급매물이 당분간 시장에 풀릴지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1월 25일 서울 남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내 곳곳에 아파트 단지가 빼곡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
이런 현상을 정책의 나비효과로 분석하는 일각의 목소리도 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보유세 강화 기조에 따른 조세 전가 가능성을 지적했다. 김 소장은 "정부의 보유세 강화가 결과적으로 서민의 가처분 소득을 앗아가는 '보이지 않는 세금'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늘어난 세금 부담을 이기지 못한 집주인들이 매물을 쏟아내면서도, 동시에 그 부담이 월세나 전세가에 전가되며 세입자의 가계 통증을 유발하는 구조"라고 해석했다.
김 소장은 강남3구 등 상급지에서 호가가 하향 조정되는 등 매매 시장의 '양적 성과'는 인정하면서도, 임대 시장의 병목 현상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갭투자를 차단하기 위해 도입된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 조치가 신규 전세 공급의 씨를 말리고 있다"며 "전세대출 없이는 잔금을 치르기 어려운 시장 환경에서 신축 아파트 전세라는 공급의 보루가 막힌 것이 성북구 등지에서 나타난 90%대 전세 증발의 요인"이라고 했다.
전세대출 없이 잔금을 치를 수 있는 세입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신축 입주 아파트 전세 물량이 사실상 막히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반면, 이 같은 진통을 시장의 '정상화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성북구의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 B씨는 "전세 매물이 줄어드는 현상은 단기적으로는 불편하지만, 갭투자 중심의 레버리지 구조가 축소되는 신호로도 볼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실거주 중심의 거래가 늘고, 과도한 전세 레버리지로 발생했던 깡통전세·역전세 리스크가 완화되는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역시 수급 불균형에 대한 공포를 경계했다. 이 교수는 지난 4일 페이스북(메타)을 통해 "보유세 강화 부담으로 다주택자가 집을 팔면 임대 공급이 줄어든다는 것은 한쪽만 본 논리"라며 "임대 주택 1채가 사라져도 그 집을 산 세입자 1명이 임대 시장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에, 시장 전체의 수급 총량은 결국 균형을 맞추게 된다"는 경제학적 '제로섬(Zero-sum)' 논리를 폈다. 통계상 전세 매물이 급감한 것처럼 보여도, 그만큼 실소유자로 전환된 물량이 된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임대차 시장의 난맥상이 커지자 지난 12일 '실거주 의무 완화 보완책'을 내놓으며 진화에 나섰다.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신축 아파트에 입주할 때 전입 의무를 유예하는 등 전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두고도 전문가들의 시선은 여전히 엇갈린다. 서진형 광운대 교수는 "유예는 임시방편일 뿐, 결국 매도 물량이 실수요로 충분히 연결되지 못하고 매물로만 쌓여있는 지금의 정체 국면을 해소할 근본적인 세제 개편 없이는 주거 사다리 복원이 어렵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5월 세제 분수령을 앞두고 다주택자를 매도 시장으로 유도하는 정책 기조는 이어질 전망이다. 갈 곳 잃은 세입자들의 주거 불안이 해소될 수 있을지, 정부의 정책 미세 조정 여부에 시장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김민지 기자(itismjkee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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