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이홍위 역을 맡은 배우 박지훈. (사진제공=쇼박스) |
"조선의 왕을 다룬 영화가 또?"
개봉 초반만 하더라도 영화'왕과 사는 남자'는 특별한 관심을 얻진 못했습니다. 사극은 익숙하고 조선의 왕을 다룬 작품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설 연휴를 기점으로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인 만큼 극장에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눈에 띄었고요. 입소문이 나면서 n차 관람 열풍이 시작됐죠.
인기는 숫자로 드러나는 중입니다. 빠르게 500만 관객을 돌파하고 600만 돌파 이정표를 세웠는데요. 이 기세라면 '1000만' 고지까지도 넘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흥행을 넘어n차 관람, 화제가 되는 무대인사, 직접 관련 장소를 방문하는 성지 순례 등 '과몰입' 현상이 화제가 되고 있기도 하죠. 이 영화가 왜 통하는지 설명해 주는 단서이기도 합니다.
(사진제공=쇼박스) |
'왕과 사는 남자'는 최근 박스오피스 1위를 독식하는 중입니다.
24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왕과 사는 남자'는 전날 19만5485명의 관객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습니다. 누적 관객 수는 602만4348명으로 집계됐는데요. 4일 개봉해 20일 만에 600만 명을 돌파했죠.
이는 기존 흥행 사극인 '왕의 남자'(29일), '사도'(26일)의 600만 돌파 시점을 앞선 기록인데요. 특히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2005)는 사극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기도 하죠. 또 123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와는 동일한 흥행 속도입니다.
'왕과 사는 남자'가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건 11일 연속입니다. 실시간 예매율 역시 큰 차이로 1위를 달리고 있어 당분간 독주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과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한국 영화 최초로 단종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작품은 유쾌한 웃음과 진한 감동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장항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배우 박지훈, 유해진, 유지태, 전미도 등이 출연했습니다.
특별한 소재와 출연진만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아닙니다. 눈에 띄는 건 가파른 흥행 곡선인데요. 개봉 첫 주까지만 하더라도 일일 관객 10만 명대 수준을 기록했지만, 설 연휴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는데요. 연휴 5일간 266만 명을 동원하더니 빠르게 관객을 끌어모아 600만 고지를 밟았죠.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출연 배우들과 장항준 감독이 600만 관객 돌파를 축하하고 있다. (사진제공=쇼박스) |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은 낯선 장르가 아닙니다. 왕을 둘러싼 권력 다툼, 궁중 암투, 비극적 운명은 수많은 작품을 통해 그려져 왔죠. 그런데 '왕과 사는 남자'는 결을 조금 비틀었습니다. 거대한 정치 서사 대신 왕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시선에 이야기를 얹으며 밀도를 높인 겁니다.
특히'쫓겨난 왕'이라는 설정이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권력을 쥔 절대자가 아니라, 유배지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고립된 어린 선왕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관객이 자연스럽게 인물에게 이입하도록 설계한 건데요. 화려한 궁궐과 대비되는 영월 청령포의 거친 자연은 어린 왕의 심리적 고독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피어나는 인물 간의 정서적 밀착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작용했습니다. 여기서 리더의 외로움, 관계의 균열 같은 정서는 2026년 현재를 사는 관객들에게도시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했죠.
캐스팅은 이 영화의 흥행 화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동력입니다. 특유의 능청스러운 코믹과 묵직한 감정선을 오가며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 호평을 듣는 유해진은 극의 중심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여기에 섬세한 감정선으로 단종의 슬픔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박지훈의 연기 합은 입소문을 타며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렸습니다.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왕과 사는 남자'가 '효도템(효도 아이템)'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단국애사' 등으로 널리 알려진 단종의 유배 생활이라는 역사적 사실 위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설정은 전 세대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배우들의 매력과 현대적 연출로 젊은 세대의 취향도 저격하면서 온 가족이 함께 관람하기 좋은 영화로 입소문을 탄 겁니다.
X(옛 트위터) 등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가족과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는 인증과 추천 후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관객 만족도를 반영하는 CGV '에그지수'는 97%(관람객 100명 중 97명이 '추천/만족' 의사 표현)를 기록하고 있고요. 네이버 실관람객 평점 역시 9.0을 유지하며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월 장릉, 남양주 광릉에 각각 상반된 반응의 후기가 달렸다. (출처=네이버 플레이스) |
n차 관람 열풍도 일고 있습니다. 관객들은 인물의 미묘한 심리 변화와 복선을 재확인하기 위해 반복 관람을 선택하고 있으며, 이는 실제 박스오피스 점유율을 유지하는 동력으로도 작용하죠.
특히 인기를 얻는 건무대인사인데요. X를 중심으로 유해진, 박지훈의 유쾌한 무대인사 현장이 화제를 빚는 중입니다. 특히 박지훈은 2017년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에 출연해 "내 마음속에 저장"이라는 멘트, 윙크하는 장면으로 대중에 얼굴을 알리며 최종 2위라는 성적으로 그룹 워너원 멤버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만큼 천부적인 재능을 무대인사에서도 가감 없이 자랑하는 중입니다. 그가 등장하는 무대인사 클립 영상은 수십만~수백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죠.
작품의 인기는 영월 청령포 관광객 증가로도 이어졌습니다. 설 연휴 기간 청령포 방문객이 전년 대비 5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영화라는 가상 세계의 경험을 오프라인에서 실체화하려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 가능합니다.
웃음을 자아내는 '과몰입' 현상도 있습니다. 단종과 관련된 장소의 네이버 지도, 카카오맵 리뷰 페이지에는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로 빼곡합니다. 단종의 묘소인 장릉(莊陵)의 네이버 지도 리뷰에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성지 순례하듯 여행 다녀왔다", "홍위야 진정한 조선의 왕은 너야", "단종옵(오빠) 안아…" 등 안타까운 마음과 응원을 담은 네티즌들의 후기가 다수 달렸죠. 반대로 세조가 묻힌 광릉에는 악플 세례가 쏟아지면서 영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는 '과몰입'은 작품의 생명력을 한층 길게 만듭니다.극장에서 시작된 감정이 SNS를 거쳐 현실 공간으로 확장되고, 다시 입소문으로 돌아와 관객을 불러들이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 셈인데요. 단순히 잘 만든 사극을 넘어, 관객이 자발적으로 세계관을 소비하고 재해석하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거대한 스케일이나 자극적인 설정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과 관계에 집중한 서사가 세대를 가로지르며 공감을 얻고 있는데요. 가족 단위 관람, 팬덤의 n차 관람, 성지 순례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왕과 사는 남자'가 특정 관객층에 머무르지 않고 외연을 넓히고 있다는 점을 방증하죠.
이제 관심은 자연스럽게1000만 고지로 향합니다. 또 하나의 '1000만 사극'이 탄생할지 시선이 쏠리는 가운데, "전화번호를 바꾸고 개명과 성형을 한 뒤 귀화할 생각"이라며 "요트를 사서 선상 파티를 하겠다"고 말한 장항준 감독의 1000만 돌파 공약도 재조명되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중입니다.
[이투데이/장유진 기자 (yxxj@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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