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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삶을 도둑맞은 사람들[점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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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사실들): “전쟁으로 도둑맞은 삶”
선(맥락들): 소리와 어둠의 고통
면(관점들): 숫자 뒤에 가려진 진짜 사람들
경향신문

하르키우에 공습경보가 울리자 고려인 3세 테티아나가 두 딸을 안고 방과 현관 사이 복도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


오늘(24일)은 바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이 시작된 지 4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결사 항전으로 맞섰고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며 러시아의 영토 야욕을 규탄하고 제재를 가해왔는데요. 종전 협상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고, 사상자는 계속 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숫자로만 기록되는 사상자 데이터 뒤에는 평범한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러·우 전쟁 4년을 맞아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았는데요. 이들은 지난 4년 동안 어떤 일상을 보냈을까요? 오늘 ‘에디터픽’은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점(사실들): “전쟁으로 도둑맞은 삶”


2022년 2월24일(현지시간) 오전 4시.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에 살고 있던 언론인 이리나 셰우첸코(45)는 격렬한 폭발음에 남편과 함께 잠에서 깼습니다. 아파트 창밖을 바라보니 인근 비행장 일대가 이미 불길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는 이를 두고 “완전히 초현실적인 느낌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바로 이날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침공을 개시한 날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은 거론됐지만 현실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전쟁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부부는 반려묘를 데리고 하르키우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내륙으로 향하는 도로는 극심한 정체로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이 되어서야 친척이 사는 마을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일주일 뒤 다시 서쪽으로 이동했고 사흘에 걸친 피란 끝에 대피소에 몸을 의탁했습니다. 두 달 후에는 또 다른 최전선 도시로 거처를 옮겨야만 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4년이 지났는데요. 그는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부부는 지금도 전쟁 한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어떻게 표현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희망도 없는 삶, 도둑맞은 삶”이라고 답했습니다.

경향신문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긴급 구조대원들이 러시아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주거 지역을 수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선(맥락들): 소리와 어둠의 고통


2023년 6월27일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동부 크라마토르스크의 식당 ‘리아 피자리아’를 공격했습니다. 식사 중이던 민간인들 가운데에는 릴라 트로히메츠(30)와 남동생 로만도 있었습니다. 남매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눈앞에서 친구와 종업원들이 희생되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트로히메츠의 삶은 전쟁으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바차타 춤(라틴 댄스 장르 중 하나)과 노래를 즐기고 음악 밴드 활동을 하는 청년이던 그는 이제 아버지와 함께 영국에서 픽업트럭과 구급 후송 차량을 들여와 전선 지역까지 직접 운전해 전달하는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결혼도 아이를 가질 기회도 누리지 못한 채 전선에서 스러진 20대 친구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의 일상 역시 크게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물과 전기, 잠을 잘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과 친구가 곁에 살아 있다는 사실의 소중함을 절실히 확인하는 삶이 됐습니다. 러시아의 에너지 기반시설 집중 공격으로 인해서 전기와 난방 수도 공급이 수시로 끊기고 있다는데요. 그런 까닭에 시민들은 충전 스테이션을 이용하거나 인버터 배터리를 구매하는 등 각자 방식으로 정전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는 “미사일이나 무인기(드론) 공격뿐 아니라 끊임없는 위협과 수면 부족 속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문의 한 형태”라고 말했습니다.

경향신문

러시아의 공습으로 정전과 단수가 발생한 하르키우에서 한 남성이 전기 스쿠터를 타고 어두운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드론과 미사일 공습 사이렌 발전기 소음까지…. 전쟁이 만들어낸 소리의 고통은 우크라이나 현지인들 모두 공통으로 언급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최전선 도시에 거주 중인 셰우첸코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날아다니는 러시아 드론과 10분 간격으로 울리는 공습 사이렌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셰우첸코는 “미사일이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분이다. 그 시간 동안은 아무도 숨을 쉴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2024년 초부터 하르키우와 키이우 등지에서 생활해온 비유럽 국가 출신 A씨(30대)도 밤마다 울리는 폭발음은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머리 위를 스치는 드론 소리는 몸이 먼저 반응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그는 “누구도 전쟁에 진정으로 익숙해질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경제적 고통도 더해집니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최저임금은 약 200달러(약 28만원), 평균 임금은 300~400달러 수준입니다. 병사들의 월급도 400달러를 조금 넘는 정도라고 하는데요. 반면 실제 생계비는 600~700달러에 이릅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시민들이 짊어진 고통과 비용 피로와 불안이 겹겹이 쌓이며 삶의 무게는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면(관점들): 숫자 뒤에 가려진 진짜 사람들


경향신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2월28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전쟁으로 도둑맞은 일상을 되찾으려면 해법은 단 하나뿐입니다. 어서 이 전쟁을 멈춰야 합니다. 문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지역을 러시아에게 넘기라고 압박하는 등 종전 협상을 러시아에 유리하게 끌고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쏟아붓는 예산이 아까우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좀 가져가더라도 이 전쟁이 그저 빨리 끝나면 좋겠다는 입장인 거죠.

하지만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침략자가 점령한 땅을 내주고 전쟁을 멈추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쪽에 치우친 중재안을 내놓을수록 우크라이나는 국내 반발을 우려해서라도 이 전쟁을 멈출 수 없게 되고요. 이에 월스트리트저널은 “유럽 고위 관계자들은 전쟁이 1~3년 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전했습니다.

키이우 시민 A씨는 “상황을 숫자로만 축소하지 말아 달라”면서 “드론의 수, 미사일의 수, 사상자의 수…. 그 숫자 하나하나 뒤에는 모두 사람이 있다”고 호소합니다. “전쟁은 늙은이들이 결정하고, 죽는 것은 젊은이들”이라는 미국 제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의 말처럼 전쟁은 권력자들이 결정하지만 그 결정으로 인해 지금도 평범한 시민들이 스러져가고 있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 [러·우전쟁 4년] 전쟁 4년, 멈춘 시간 아래 꺾이지 않은 사람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2230600071/?utm_source=article&utm_medium=newsletter&utm_campaign=k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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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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