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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하나된 순간, 무대 위 호랑이가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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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몸통·뒷다리 맡아 한몸처럼 연기
포효·점프·호흡까지 세심하게 묘사
무대 위 최장 22분…"연습 통해 익숙해져"
"관객이 믿어줄 때 완성"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처음엔 걷지도, 앉지도 못하는 갓 태어난 송아지 같았어요.”

벵골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머리를 맡은 김시영이 첫 연습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최은별(심장 역할)과 이지용(다리 역할)이 동시에 “맞아, 그땐 그랬어”라며 크게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갓 태어난 송아지 같던 퍼펫티어(인형 조종 배우) 세 사람은 약 두 달간 훈련해 서로의 호흡만으로도 상태를 읽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렇게 탄생한 무대 위 ‘리처드 파커’는 등장할 때마다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또 다른 주역으로 ‘라이프 오브 파이’ 공연에서 맹활약 중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시영은 “퍼펫티어는 퍼펫에 영혼을 불어넣는 역할”이라며 “인형이 살아 움직인다고 느끼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 서로에게 의지하며 치열하게 무대를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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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 공연의 한 장면. 머리 파트를 맡은 배우 김시영이 벵골호랑이 퍼펫을 조종하고 있다(사진=에스앤코).


세 배우가 만든 ‘살아있는 호랑이’

‘라이프 오브 파이’는 얀 마텔의 베스트셀러 소설 ‘파이 이야기’를 무대화한 작품이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구명보트에 남겨진 소년 파이와 벵골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227일간 펼치는 감동과 희망의 여정을 그린다. 원작은 전 세계 15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맨부커상을 받았고, 영화로도 제작돼 세계적인 흥행을 거뒀다. 공연도 토니상 3개 부문, 올리비에상 5개 부문을 석권하며 작품성을 입증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퍼펫티어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리처드 파커는 파이와 함께 이야기를 이끄는 중심축이며, 오랑우탄·얼룩말·원숭이 등 다른 동물들 역시 무대를 야생으로 바꾸는 핵심 요소다. 2022년 ‘올리비에상’에서 퍼펫티어가 이례적으로 조연상을 공동 수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세 사람은 리처드 파커뿐 아니라 각자 맡은 동물들을 구현하기 위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훈련을 거듭했다. ‘퍼펫 디렉터’ 케이트 로우셀이 제시한 핵심 원칙은 △호흡 △시선과 집중 △무게감 △정지 △리듬 △상상력 △마임 등 일곱 가지였다. 익숙하지 않은 근육을 쓰는 작업이었기에, 연습 초반에는 ‘공던지기’ ‘술래잡기’ 등의 게임으로 몸을 풀며 동물의 움직임을 익혀갔다. 김시영은 “훈련 과정이 마치 ‘오징어 게임’ 같았다”며 웃었다.

세 사람은 연습 전부터 몸을 풀며 서로의 호흡을 맞추는 시간을 가졌다. 최은별은 “퍼펫은 팀워크가 가장 중요해 일주일 먼저 연습을 시작해 서로 친밀해지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고, 이지용은 “아령 등 운동기구를 나눠 쓰며 연습 1시간 전부터 몸을 푸는 게 일상이 됐다”고 돌아봤다.

세 사람이 각각 리처드 파커의 머리, 몸통, 다리를 맡다 보니 쌓인 노하우도 조금씩 달랐다. 김시영은 “머리 역할은 상대 배우의 표정과 감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읽기 때문에 그 신호를 팀원들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몸톰 역할의 핵심은 호흡이었다. 최은별은 “호랑이가 실제로 숨 쉬는 것처럼 보이도록 표현에 특히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다리 역할을 맡은 이지용은 “뒷다리가 조금만 늦어도 호랑이의 생동감이 사라진다”면서 “몸통과의 거리 조절과 순발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 순간 긴장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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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 공연에서 리처드 파커 역을 맡은 배우 이지용(왼쪽부터), 최은별, 김시영(사진=에스앤코).


몸을 구부린 자세로 무대 위를 뛰어야 하는 만큼,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다. ‘리처드 파커’가 무대에서 가장 많이 머물 때는 약 22분. 그 동안 세 사람은 흐트러짐 없이 점프하고, 파이를 위협하며 살아 있는 호랑이의 움직임을 유지해야 한다. 최은별은 “처음엔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연습을 거듭하고 체력을 조절하면서는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리처드 파커 외에도 여러 퍼펫을 맡는다. 체격이 큰 김시영은 작은 ‘쥐’ 표현이 가장 까다로웠고, 이지용은 빠른 움직임이 필요한 ‘하이에나’, 최은별은 몸집이 큰 ‘기린’을 다루는 데 가장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세 사람 모두 연극과 뮤지컬에서 다양한 배역으로 무대에 선 경험이 있지만, 퍼펫티어 연기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최은별은 “처음엔 퍼펫의 몸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안에서 객석의 공기까지 느낄 만큼 여유가 생겼다”며 미소지었다.

퍼펫을 통해 배우로서의 시선도 달라졌다. 이지용은 “우리를 감출수록 관객에게는 더 또렷한 호랑이가 보일 거라 생각했다”며 “관객이 우리를 진짜 동물로 믿어줄 때 비로소 공연이 완성된다”고 했고, 김시영은 “어떤 역할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오는 3월 2일까지 GS아트센터에서 공연한 뒤, 부산 드림씨어터로 옮겨 15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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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 공연의 한 장면(사진=에스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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