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066570)가 북미 지역에서 주방 가전 기업간 거래(B2B) 시장을 확장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업 대 소비자간거래(B2C) 가전 시장에서는 이미 확고한 1위를 유지하는 만큼 제품 경쟁력은 확실하다는 평가다. 반면 제너럴일렉트릭(GE), 월풀 등 오랫동안 미국에서 B2B 사업을 한 현지 업체에 비해 물류 등 기반시설과 사업 네트워크 측면에서는 아직 불리한 입장이다. LG전자는 초고급 B2B 주방 가전 브랜드인 ‘SKS’ 등을 앞세워 올해 안에 상위 3개사로 이름을 올리겠다는 복안이다.
최고급 B2B 주방 가전 기술 선뵌 LG전자...KBIS에 빌더들 인산인해
지난 17일(현지 시간) 서울경제 취재진이 찾은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오렌지카운티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북미 최대 주방·욕실 전시회 ‘KBIS’ 행사장은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주방 가전의 최신 트렌드를 살피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주택 건축업자(빌더)와 인테리어 전문가, 주방 디자이너들이 주요 업체 부스 곳곳에서 인산인해를 이뤘다. 미국 주방 가전 B2B 부문의 절대 강자인 GE의 최상위 브랜드 ‘모노그램’의 부스 앞에는 방문객이 긴 줄을 섰다. 2위 업체인 월풀의 부스는 아예 빌더 위주로만 관람객을 선별해서 받았다.
폐쇄적 전시관을 구성한 경쟁 업체들과 달리 행사장 입구에 1003㎡에 달하는 개방형 부스를 차린 LG전자의 인기는 압도적이었다. 기존 고급 브랜드인 ‘시그니처’와 지난해부터 선보인 초고급 주방 가전 브랜드 ‘SKS’를 체험하려는 북미 B2B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하루종일 끊이지 않았다. 관람객들은 LG전자가 SKS를 통해 올해 처음 내놓은 36인치 초대형 컬럼(Column) 냉장고, 36인치 풀플렉스(전면 자유 화구) 인덕션 쿡탑 등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또 시그니처·SKS 냉장고가 사용자마다 자주 쓰는 시간대를 인공지능(AI)으로 자동 학습해 컴프레서(공기 압축기) 가동을 조절하고 전력 소비를 조율한다는 설명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SKS 부스에서 셰프들이 요리를 만드는 ‘쿠킹쇼’를 참관하고 음식을 두 차례나 직접 맛본 빌더 에롤 패럴 씨는 “SKS 브랜드를 이미 잘 알고 찾아왔다”며 “음식이 아주 훌륭하게 요리됐다”고 칭찬했다.
올해 LG전자의 B2B 주방 가전 시리즈는 ‘SKS 런드리 솔루션’을 처음 적용해 제품의 사용폭을 부엌에서 세탁실까지 넓힌 것도 큰 특징이었다. ‘SKS 워시콤보’는 24~27인치인 북미의 일반 제품보다 큰 29인치의 크기를 갖췄고, AI 드럼 회전 제어 기능을 장착했다. LG전자는 또 건조 효율을 높이고 옷감 수축을 줄이는 ‘AI코어테크’ 기술을 건조기에 적용했다. 상당수 여성 관람객들은 LG전자 B2B 시리즈에만 유일하게 비치된 의류관리기 ‘스타일러’의 문짝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기도 했다. 전시관을 찾은 니콜 스튜어드 씨는 “집안에 전신 거울 역할을 하는 디자인의 가전이 있다는 게 너무 멋지다”며 “다른 회사들 제품보다 현대적”이라고 평가했다.
LG전자는 나아가 빌더들이 AI로 제품 등록, 세대별 가전 점검, 원격 사후 관리, 에너지 조율, 사전 고장 감지 등을 한번에 수행할 수 있게 하는 ‘LG 씽큐 프로’도 차별화 기술로 제시했다. 수백~수천 세대의 대규모 주택을 짓는 빌더들에게 누수, 작동 불량 등 빌트인(붙박이) 가전 관리의 편의성을 대폭 높여준 AI 기술이다.
KBIS 행사에는 삼성전자도 부스를 마련하고 고급 B2B 주방 가전 브랜드인 ‘비스포크’와 초고급인 ‘데이코’의 신제품들을 뽐냈다. 무엇보다 와인 셀러, 와인 디스펜서 등 열, 빛, 습도, 진동을 최적으로 유지해주는 데이코 전용 와인 숙성고 가전들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번 KBIS에서는 2016년 GE 가전 사업 부문을 인수한 하이얼과 중국 최대 가전 기업인 메이디 등 중국계 기업도 몇몇 참가해 관심을 끌었다. 일부 중국 기업은 LG전자 등 한국 기업 제품과 유사한 디자인의 상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 기업을 적극적으로 견제하는 월풀은 이날 행사장에서 동양계 방문객에 대해서만 관람과 사진 촬영을 막기도 했다.
KBIS는 미국주방욕실협회(NKBA)가 주관하는 전시회로 올해 62회째를 맞았다. 이날부터 19일까지 3일간 가전·가구·인테리어 등 약 700개의 브랜드, 수만 명의 B2B 관람객이 전시관을 채웠다.
“올 연말까지 美 B2B 주방가전 ‘빅3’ 달성할 것”
이날 행사장 특파원 간담회에서 만난 LG전자의 백승태 HS사업본부장 부사장과 곽도영 북미 대표 부사장은 올 연말까지 미국 주방 가전 B2B 시장 점유율 3위권에 진입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들에 따르면 관세와 자재비·인건비 상승에도 LG전자의 미국 주방가전 B2B 실적은 2024년 60%, 지난해 40% 성장했다. 류재철 LG전자 대표가 2024년 2월 H&A사업본부장으로 KBIS 행사장을 찾았을 당시 “3년 안에 업계 3위 안에 들겠다”고 공언했던 목표가 어느덧 성큼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곽 부사장은 “연말까지는 ‘빅3’ 안에 들자는 비전을 2년 전에 선포한 만큼 올해 목표를 달성하는 게 내 임무”라며 “빌더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공급사가 되고 가격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내 B2B 빌트인 가전 시장 규모는 연간 70억 달러(약 10조 원)로 전체 가전의 약 20%를 차지한다. 미국에서는 조리 시설과 후드·냉장고·실외기 등 4대 빌트인 가전이 구비돼야만 주택 준공 검사를 받을 수 있다. 해당 시장에서 GE가 30%, 월풀이 15% 점유율로 1·2위를 달리고 있다. LG전자는 일렉트로룩스와 보쉬·삼성전자 등과 10% 미만 점유율로 3위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1·2위를 제외하면 점유율에 큰 차이가 없기에 3위 안에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한 도전은 아니다.
곽 부사장은 주방 가전뿐 아니라 최근 북미의 AI 데이터센터 투자 붐을 타고 LG전자의 냉각 시스템 제품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데이터센터도 B2B 사업에서 중요한 영역이어서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데이터센터의 새로운 냉각 방식에 대해 LG의 신기술이 적합한지를 검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수천만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들을 이미 수주했고 지금은 수억 달러 수준의 거래를 논의하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LG전자 경영진은 가전의 경우 최근 휴대폰과 개인용 컴퓨터(PC) 등에 타격을 입힌 메모리반도체 공급난에 대해서는 비교적 부담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백 부사장은 “생활가전에서는 메모리반도체 비중이 아주 낮다”며 “반도체 가격 상승이 제품가 인상으로 연결되는 부분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두 사람은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을 지속적으로 흔드는 상황이나 각종 지정학적 위험은 올해 경영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곽 부사장은 “미국의 대형 제조사들도 멕시코에 이미 생산 시설을 구축해 놓았기에 장벽이 생길 경우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데가 몇 곳 없다”며 “중국 관련 규제나 원산지 규정 변경 등 일부 변화는 분명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미국 부품사와 협업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 부사장도 “지난해 사업적 변수가 많아 어려웠는데 올해에도 유가 상승과 관세, 국가 간 갈등 등이 존재한다”고 짚었다.
美갑부 저택에도 초프리미엄 가전 비치...전자제품만 4억 원
취재진이 18일 찾은 국제건축전시회 ‘IBS’의 공식 견본주택은 여러 고급 주택 가운데서도 군계일학의 자태를 뽐냈다. 최고급 인테리어와 가전, AI 홈 솔루션을 집약한 ‘더 뉴 아메리칸 홈’은 단순히 ‘멋지다’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차원이 다른 미래 주택이었다. 더 뉴 아메리칸 홈은 미국 전역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 몰려든 빌더와 인테리어 전문가, 주방 디자이너들로 이미 바글거렸다. 더 뉴 아메리칸 홈은 전미주택협회가 1400㎡ 규모로 지은 2층 주택이다. 주택의 가치는 1500만 달러(약 220억 원)에 이른다.
더 뉴 아메리칸 홈에서 특히 시선을 끈 부분은 거실과 이어진 1층의 탁트인 주방이다. LG전자 초고급 빌트인 주방가전 브랜드 SKS의 20여 개 제품이 건축 공간 전체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주택의 품격을 한껏 끌어올렸다. 초대형 컬럼 냉장고와 와인 셀러는 마치 가구처럼 집안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이들은 모두 미국의 파티 문화에 최적화된 용량과 다자인을 지녔다.
아일랜드 식탁과 조리대 하부에 서랍형으로 설치된 컨버터블(변온) 냉장고와 빌트인 식기세척기 등은 외관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주방의 기능을 떠받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가전을 넘어 건축의 일부라는 인상을 강하게 줬다. 공간과 디자인의 조화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SKS만의 철학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집주인 제이슨 아이켄홀츠 박사는 “가족들과 거주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 즐기기 위한 집”이라며 “LG전자는 모든 것들을 우리와 함께 디자인했다”고 소개했다.
집안에는 초고급 주방가전 브랜드 SKS뿐 아니라 LG전자의 AI 가전과 올레드 TV, 공조(HVAC) 시스템 등 80여 개의 고가 가전도 곳곳에 비치됐다. 가전제품의 총 가격만 4억 원에 육박했다. 더 뉴 아메리칸 홈의 상당수 방문객들은 AI가 세탁물의 무게∙습도∙옷감 종류 등을 분석해 세탁∙건조 강도를 조절하는 복합형 세탁∙건조기 워시타워, AI가 내부 카메라로 식재료를 분석해 맞춤형 조리법을 제안하는 오븐, 가스레인지·인덕션·수비드 기능을 모두 갖춘 ‘프로레인지’ 등을 둘러보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AI 기술 기반의 독보적 화질과 음질을 자랑하는 ‘LG 올레드 에보’와 고급 액정표시장치(LCD) TV인 ‘QNED TV’ 등도 구석구석에 설치돼 공간의 격조를 높였다.
공조 시스템으로는 시스템에어컨 ‘멀티브이 에스’가 눈길을 끌었다. 공기 열원 히트펌프를 활용해 화석연료 없이 전기로 냉난방을 제어하는 제품이다. LG전자가 독자 개발한 고효율 인버터 컴프레서(공기압축기)가 탑재됐다. 기존 히터 방식보다 에너지를 최대 70%까지 절감할 수 있는 인버터 히트펌프 온수기도 적용됐다.
내년 빨래 개는 로봇 ‘클로이드’ 출격...피지컬 AI 기대에 올 주가 44% 급등
LG전자는 이에 앞서 지난달 초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6’에서 가사 노동을 대신하는 휴머노이드를 선보여 세상을 놀라게 한 바 있다. LG전자는 CES 2026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달 5일 AI 홈로봇 ‘LG 클로이드(CLOiD)’를 행사 무대에 올리며 관람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당시 클로이드는 행사 진행자의 목소리 높낮이를 분석해 “물이 필요할 것 같다”며 직접 물을 건넸다. 클로이드는 또 세탁이 끝난 수건을 접거나 옷가지를 하나씩 세탁기 안에 넣기도 했다.
류 대표는 같은 달 7일 CES 현장 기자간담회에서 “가사 해방을 위한 ‘제로 레이버 홈(Zero Labor Home)’의 마지막 퍼즐은 로봇”이라며 “내년부터는 실험실을 벗어나 공장과 사업장 등 현장을 누비는 클로이드를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류 대표는 이어 “속도보다는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가 최우선” 이라며 “대규모 학습을 통해 사람과 유사한 속도로 동작하도록 고도화 작업을 거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LG전자는 또 로봇의 관절 역할을 하는 핵심 구동장치 액추에이터 사업에도 진출했다. LG전자는 자체 액추에이터 브랜드 ‘악시움(AXIUM)’을 선보이며 완성형 로봇을 넘어 부품 생태계까지 장악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백 부사장은 같은 자리에서 “액추에이터 시장 규모는 연 7%씩 성장해 2030년에는 230억 달러(약 32조 5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며 “LG전자는 이미 글로벌 5개국에서 연간 4100만 대의 모터를 생산하는 제조 역량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현재 LG전자는 주식시장에서도 ‘피지컬 AI(AI와 물리적 세계를 결합한 기술)’ 기업으로 집중 관심을 받고 있다. 23일에는 피지컬 AI 경쟁력 확대로 가전과 전장 사업이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와 지난 12일 내린 자사주 소각 결정에 힘입어 주가가 7.28%나 치솟았다. 장중 한때에는 12% 안팎까지 솟구쳐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다. 지난해 말 9만 1900원이었던 LG전자의 주가는 23일 13만 2600원으로 올 들엇서만 44.29%나 상승한 상태다. 앞으로 미국 주방 가전과 AI 데이터센터 냉각 시스템 B2B 사업이 얼마나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LG전자의 추가 상승 여부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올랜도=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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