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씨는 자신을 수선 조형을 하는 사람으로 소개한다. 그는 “수선은 고치고, 갈고닦고, 탐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박씨가 지난 4일 서울 금호동 작업실에서 수선 조형을 할 헌옷을 살펴보고 있다. |
패션업계 종사할 땐 늘 충동구매
트렌드는 시장이 만들어낸 주기
과잉 생산·폐기 ‘악순환’ 이어져
수선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
세상 단 하나뿐인 옷을 만들어내
개인의 고요한 실천, 친환경으로
박정원 명함은 종이가 아니라 헌옷 조각으로 만든 것이다. e메일 주소 등을 새긴 스탬프로 찍었다. 헌옷으로 새로운 형태의 옷도 만든다. 수선은 “대체 불가능한 옷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수선 범위는 더 넓다. 가방, 신발, 모자에 천과 모래, 물감을 뒤섞은 ‘직물 액자’도 만든다. 직업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수선 조형을 한다”고 답한다. 수선 조형에 관한 단상을 <직물을 잇고 조각을 수선합니다>(포르체)에 담았다.
수선에 관한 실용 팁을 넣었다. 도서 분류도 ‘취미/실용/스포츠’ 하위 항목인 ‘자수/바느질’이다. ‘인문학/에세이’로 분류해도 좋을 법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박정원은 수선이란 말의 근원을 따지며 그 의미를 확장한다.
박씨의 ‘수선 조형’은 경계가 없다. 헌옷으로 상상하는 것들을 다 만든다. 헌옷과 헌장갑을 활용한 장식등. |
지난 4일 서울 금호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수선의 정의를 두고 “실과 직물로 헌옷을 좀 더 낫게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한자어 수선(修繕)을 곱씹어보며 내린 정의다. 기울 선(繕)에서 ‘실(絲)로 기워 더 좋게(善) 하는 행위’를 확인했다. 닦을 수(修)는 갈고닦고, 탐구하며, 고치는 일을 가리킨다. “아귀를 맞춰 작동하게 하는 수리(修理)랑 다르죠. 수선엔 정해진 보편의 이치나 형태가 없어요. 실을 써 더 낫게 하면 그만입니다.” 그는 수선을 “비정형을, 무작위를 받아들이며 스스로 표현하는 일”로 본다.
박정원의 수선은 수선집에서 흔히 하는 작업에다 형태를 바꾸는 리폼, 자신을 표현하는 창작예술 행위를 포괄한다. 그는 이 일로 먹고산다. 헌옷으로 만든 갖가지 것들을 온·오프라인에서 판다. 작업실에서 ‘헌옷으로 콜라주 하는 워크숍’도 진행한다. 가끔 수선 특강도 나간다.
수선 일을 한 뒤로 ‘새 옷’을 산 적이 없다. 한때는 패스트패션에 빠졌다. IT업체에서 일할 때, 패션 제품을 만들어 팔 때다. “누가 예쁜 옷 입으면 물어봐서 사고, 또 친구 따라 옷집에 갔다가 사고 그랬죠. 자주 입은 건 몇 벌 안 돼요.” 충동 구매한 옷들은 지금은 ‘수선 조형’의 좋은 재료다.
박정원은 패스트패션을 강한 어조로 비판한다. “업체들은 필요하지 않아도 만들어 광고하고, 소비자들은 필요하지 않아도 사서는 또 버리죠. 과잉 생산, 과잉 폐기라는 악순환에 빠져든 거죠.” 책엔 “패스트패션은 빠르게 만들어 빠르게 팔기 위해 기업이 만들어낸 시스템 전반이었다” “트렌드는 패션 시장이 만들어낸 이상형의 교체 주기일 뿐이다”라고 적었다.
현실을 깨닫고는 이 일을 계속할지 고민했다. 어느 날 고객 주문으로 원단을 구해 스마트폰 액세서리를 만들어 판 적이 있다. 재봉틀로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웃의 찢어진 옷을 기워주고 돈을 조금 받아 밥 한 끼를 해 먹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래된 재봉틀도 하나 샀다. 곁의 물건을 하나하나 고쳤다. “판매할 의지라기보다 만들 의지”로 헌옷 쇼핑몰을 창업했다. 비싸게 팔려고 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든 세상 단 하나뿐인 헌옷 에코백을 수천원대에 판다.
원단을 구하러 간 동대문 시장에서 또 다른 현실을 깨달았다. 버클만 만드는 사람은 그 일 하나로만 먹고살았다. 동대문 봉제 생태계에 빠져들었다. 조선시대 훈련도감 군사들이 나라에서 받은 포목을 팔다 보니 동대문 주변에 포목 시장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됐다. 호기심으로 미싱의 역사, 천의 역사, 패션의 역사에 갖가지 섬유 소재의 특성도 공부했다. 책은 이런 공부가 쌓인 결과다.
부제는 ‘저소비자 생활자를 위한 나만의 옷 수선’. 박정원은 ‘저소비’나 ‘친환경’이란 말을 내세우는 걸 주저했다. “나부터 폴리에스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죠. 헌 옷과 대안 소재를 주로 사용하지만 결국 만들어 판매하면서 소비를 부추기는 건 아닌지 자책도 해요. (탄소 발자국 남기는) 여행도 자주 가고요.”
박정원은 친환경 원단도 석유, 전기, 물을 써야 하는 점 등을 지적한다. “환경을 위한 수선서비스는 소비로 이어지는 마케팅이 되기도 하죠.” 수선도 “소비를 줄이기보다 폐기를 미루는 행위에 가깝다”고 본다.
박정원은 다른 의미에서 환경을 역설한다. “개인들의 지구적인 고요한 실천”이 결과적으로 “지구를 위하는 길과 맞닿”으리라고 본다. “워크숍 멤버들은 환경을 위해 헌 옷을 찾아낸 게 아니라, 워크숍 실습을 위해 헌 옷을 찾아내고 나서야 안 입는 옷이 많다는 걸 알아차리죠. 노동의 고귀함을 알려고 수선을 시작하는 것도 아닙니다. 호기심으로 돌린 미싱 기계의 섬세함에 손이 휘둘리고 나서야 손으로 직접 만드는 옷 무게를 알아차립니다.” 책엔 “재료와 존재를 상상하고, 손으로 일구는 원초적 행위로부터 수선, 그리고 환경은 시작된다”고 적었다.
물건에 애정을 갖는 일도 중요하다.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것에서 “내 물건의 연대기는 시작”한다. 박정원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부츠를 15년을 수선하며 신고 있다. 그는 “나만의 물건 사용이란, 내 상황에 적합한 만듦새의 제품을 심사숙고해 선택하고, 선택한 제품을 마음껏 활용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이는 자연스레 대상을 애정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내 물건의 연대기”기 시작한다.
수선은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내 몸의 장점을 발견하여 익숙해지는 것이 내 몸이 혐오로 어지럽혀지지 않는 방법이다. 이것은 내 체형에 맞게 실로 기워 꾸미고 고치는 탐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몸은 드러나고, 나는 받아들이며, 결국 친애한다.
박정원은 수선에 빠져 산다. “온종일 작업실에서 이것저것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려 한다. “세상과 연결된 느낌”을 지니려 가입한 ‘1365자원봉사’ 활동 때 고독사한 이의 무연고 장례에 자원봉사를 하러 갔다가 이런 결심을 했다. 그는 망자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다 “죽을 때까지 나를 지탱하고, 죽어서도 나를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과 마주했다. “이 일을 하다가 죽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박정원은 죽음 등에 관한 단상도 책에 넣었다. 다른 글도 꾸준히 쓴다. 소설이다. “수년 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투고한 적도 있다. 지금도 몇 편을 쓰는 중”이라며 웃었다. 글쓰기도 갈고닦고, 탐구하며 더 낫게 만드는 수선이란 뜻에 맞는 듯했다.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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