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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빠진 <왕과 사는 남자> 관전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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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가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엄흥도의 짧은 인연이 왜 영원한 미담으로 남았는지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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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지난 4일 개봉한 장항준 감독의 신작 <왕과 사는 남자>는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사육신의 단종 복위 기도 여파로 상왕에서 폐위돼 강원도 영월로 유배 간 조선 6대 임금 단종과 단종 사후 시신을 수습한 호장 엄흥도의 인연을 영화화했다.

흥행 가도

군사독재의 여파가 이어졌던 20세기엔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수양대군을 미화하는 사극이 범람했다. 그 정점은 <단종실록>을 그대로 드라마화했던 1998년 작 KBS 대하드라마 <왕과 비>였다. <단종실록>에 대해선 “계유정난 주도 세력의 입김이 그대로 반영돼 기록을 곧이곧 대로 믿을 수 없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왕과 비>의 수양대군은 조카와의 애틋한 정과 김종서·황보인 등 고명대신의 전횡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다가 거사를 일으키는 햄릿형 인물이다. <왕과 비> 극본을 집필했던 정하연 작가는 지난 2011년에도 JTBC에서 <왕과 비> 리메이크 드라마로 통하는 <인수대비> 극본을 맡아 거듭해서 수양대군 미화 논란에 휘말렸다.

수양대군을 미화한 작품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지난 2007년 12월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 국역본을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하면서 사라졌다. 이후 수양대군과 한명회 등 계유정난 주도자들의 이미지는 악역으로 굳어졌다.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관상>에선 배우 이정재가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에서 소외돼 정치 깡패나 다름없어진 일부 무인을 모아 명분 없는 쿠데타를 일으켰던 수양대군을 연기했다. 이후 수양대군의 이미지는 악당으로 확실히 굳어졌다.

실제로 수양대군은 한밤중에 김종서를 찾아가 서찰을 보여줬고, 이를 읽으려던 김종서에게 철퇴를 휘두르도록 지시하는 등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왕과 사는 남자>엔 수양대군이 등장하지 않는다. 장 감독은 “작중에선 한명회가 수양대군의 기능까지 다 하고 있다고 본다”며 “수양대군은 전면에 나선 적이 없고, 정치적 입지·이미지 때문에 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MBC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500년> 내 계유정난을 다룬 1984년 작 시리즈 <설중매>에선 배우 고(故) 정진이 한명회를 맡았다. <왕과 비>에선 배우 최종원이 한명회를 맡았다. 2011년 작 SBS 시대극 <뿌리 깊은 나무>에선 배우 조희봉이 한명회를 맡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미남 이미지와 거리가 있단 것이다. 특히 정진이 구현했던 한명회 이미지는 대중적 이미지로 굳어졌다.

영원한 미담 된 단종·엄흥도의 4개월 인연
기록 반영한 역대 가장 잘생긴 한명회 눈길


하지만 <실록>엔 “한명회의 외모가 뛰어나다”는 기록이 있다. <실록>에 수록된 한명회의 공신 책봉 교지엔 “한명회의 바탕은 괴위하다”고 기록돼있다. “괴위하다”라는 말은 “체격·용모·자질이 크고 우람하며, 위엄이 있어 당당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관상>에선 배우 김의성이 한명회를 맡아 새로운 한명회 이미지 구현을 시도했다. <왕과 사는 남자>에선 배우 유지태가 한명회를 맡아 ‘역대 가장 잘생긴 한명회’를 연기했다. 유지태는 작중 거사를 성공리에 주도한 승리감과 권력에 미쳐 억울하게 모든 것을 빼앗긴 후 귀양 간 단종을 악귀처럼 조롱하는 한명회를 힘 있게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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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엄흥도 역할을 맡은 배우 유해진 ⓒ쇼박스


특이한 것은 조정 대신들이 한명회를 부르는 호칭이 ‘대감’이란 것이다. 작중 한명회는 정3품 당상관인 도승지를 맡았다. 종2품·정3품 당상관을 부르는 존칭은 영감이고, 대감은 정2품 이상 고위 관료를 부르는 존칭이다.

고증에 따르자면 한명회를 부르는 호칭은 영감이어야 하지만, 한명회는 계유정난 핵심 설계자로서 정난공신 1등에 책봉됐다. 직급은 영감일지 몰라도, 실제 위상은 ‘상감 다음’인 대감이었다.

장 감독은 의도적으로 고증을 비틀어 한명회에게 대감 호칭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단종에 대한 안타까움·동정심은 약 570여년 세월이 흐른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단종은 세종의 적장손으로 태어나 원손·세손·세자를 거치는 등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조선왕조에서 압도적인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다.

단종을 후견할 왕대비·대왕대비가 없어 황보인·김종서가 황표정사로 정국을 주도하는 등 폭정을 일으킬 환경도 조성되지 않았다. 즉위 후 약 2년여가 지나 15세가 되면 자연스럽게 친정할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은 오랫동안 비난받았다.

현대에 이르러 수양대군이 즉위 후 공신의 전횡을 거의 견제하지 않은 사실까지 알려져 비난하는 강도가 더 강해졌다. 수양대군이 공신을 견제하지 않아 형성된 거대 족벌 권력 집단 훈구파의 존재는 고려 권문세족을 몰아내려던 조선 창업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었다.

예정된 비극 향해 달리는 희·비극 교차
15세기 강원 배경에 현대 서울말 아쉬워


이어 수양대군은 아버지 세종과 형 문종이 구축한 정책기관 집현전을 폐지했다. 또 노비종모법을 일천즉천제로 변경해 천인을 증가시켜 병역·납세를 담당할 양인 숫자를 줄이는 등 정책 판단에도 문제가 있단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실존 인물 엄흥도는 영월로 유배 간 지 4개월여 만에 살해당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후 일가족과 함께 잠적했다. <왕과 사는 남자>에선 엄흥도(유해진 분)를 영월 관내 광천골 촌장이자 단종의 보수주인으로 각색한다. 보수주인은 유배 온 죄인을 감시하면서 숙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을 말한다.

<왕과 사는 남자>에선 모든 것을 잃고 마음을 크게 다친 단종(박지훈 분)과 한양에서 큰 권세를 휘두르다가 일시적으로 귀양 온 대감을 맞이하면 마을 형편이 필 것으로 기대했다가 단종을 맞이한 엄흥도의 엇박자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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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엇박자가 이어지면서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는 과정은 장 감독의 장기인 적절한 코미디로 각색돼 훈훈하게 묘사된다. 특히 박지훈은 배역 몰입을 위해 체중을 15kg이나 줄이면서 삶의 의욕을 잃은 단종을 훌륭하게 연기해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관객 모두는 결말을 알고 있다. 장 감독은 전반부에선 코미디 묘사에 집중한 뒤 이를 후반부 비극의 강도를 강화하는 촉매제 역할로 사용한다. 후반부에선 단종에게 시시각각 다가오는 운명과 형 수양대군에 맞서 조카 단종을 복위시키려던 금성대군(이준혁 분)의 거병 준비를 교차시키는 데 큰 비중을 둬 관객의 안타까움을 자극한다.

물론 아쉬움도 남는다. 공간적 배경이 강원도 영월인데도, 등장인물 대부분은 현대 서울말을 구사한다. 최소한 강원도 방언의 흔적은 느낄 수 있게끔 대사 처리를 연출했다면, 단종과 광천골 주민의 초반부 이질감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장 감독 특유의 코미디 연출이 뚝뚝 끊기는 흐름으로 구성돼 이따금 몰입을 방해한다.

‘뚝뚝’ 몰입 방해

하지만 과도한 감성 자극을 자제하면서 예정된 비극을 향해 나아가는 연출은 장 감독의 재능이 여전하단 사실을 보여준다. <왕과 사는 남자>는 약 138만 관객을 동원한 2017년 작 <기억의 밤> 이후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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