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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나랏일' 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 영면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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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서 영결식 엄수…세종시 은하수공원에 안장
李대통령, 침통한 표정으로 김혜경 여사와 헌화
조사·추도사·추모 영상 도중 여러 차례 눈물
마지막 운구 행렬까지 말없이 배웅
김민석 "저의 롤모델…한반도 평화 숙제 저희가 반드시 이뤄내겠다"
정청래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 당내 최고의 전략가"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아라."

이런 가르침을 남기고 떠난 고(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사회장 영결식이 3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엄수됐다. 고인은 영결식 뒤 서초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세종시 은하수공원에 안장돼 영면에 들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는 영결식에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두 사람은 조사와 추도사가 이어지는 동안 여러 차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고, 헌화 뒤 영정사진을 한동안 올려다보며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별세 직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족을 위로하고, 고인의 민주주의 발전 기여를 기리기 위해 최고 등급의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그 훈장은 영결식에서 영정과 함께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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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은 이날 오전 6시30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으로 시작됐다. 운구 행렬은 민주평통 사무실과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들러 노제를 지낸 뒤 국회로 향했다. 주말임에도 국회에는 유족과 정치권 인사, 시민사회 인사들이 모여 고인을 배웅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조사에서 "빚졌습니다"라는 말로 입을 뗐다. "민주주의도, 대한민국도 고인에게 빚졌다"며 네 번의 민주정부 탄생 과정마다 고인이 앞장서 "화살을 막아냈다"고 했다. "여쭤볼 게 아직 많고 판단할 게 너무 많은데 이제 누구에게 여쭤봐야 하느냐"는 대목에선 목이 잠겼다. 김 총리는 고인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베트남 공무 출장 중 쓰러진 사실을 거론하며 마지막 소명을 불태우다 멈춰 선 고인의 생애를 추모했다.

조사 도중 이 대통령은 고개를 숙인 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고, 김 여사도 입술을 꼭 다문 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김 총리는 "빈소를 찾으신 이 대통령과 김 여사께서 그리도 눈물을 흘리셨다. 괜히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하시게 해 멀리 베트남에서 공무 중에 돌아가신 데 대한 자책이었다"며 "역대 최고의 공직자이자 저의 롤 모델이신 이해찬 선배님, 이제 일을 멈추시고 직접 설계하신 세종에서 편히 쉬시라. 한반도 평화에 남기신 숙제는 저희가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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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식 국회의장은 "이해찬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 그 자체"라고 했다. "선공후사"를 실천한 삶을 돌아보며 "공직자의 소명 의식과 책임감이 무엇인지 깊이 깨달았다"고 말했다. '관념이 아니라 현장'에 있었던 정치였다고도 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추도사에서 12·3 비상계엄 내란을 겪고도 민주주의가 회복력을 보여준 배경으로 고인의 헌신을 들었다. 그는 "이 전 총리님의 일생은 모든 발걸음이 전부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었다"며 고인을 '탁월한 지도자'·'민주당의 정신적 지주'·'당내 최고의 전략가'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해찬은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이끄는 거인이셨다"는 대목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고, "엄하시지만 따뜻했던 분"이라며 울먹였다.

이날 영결식에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한명숙 전 국무총리도 추도사에 나서 고인을 기렸다.

'민주주의 거목'·'사무사' 이해찬…민주평통 부위원장으로 마지막 公務

장례위원회 상임 집행위원장을 맡은 조정식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은 약력 보고에서 "고인의 일생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체제의 완성과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에 바쳐진 삶이었다"며 "진실한 마음, 성실한 자세, 절실한 심정으로 책임을 다한 '민주주의 거목'이라고 했다.

고인의 이력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궤를 같이한다. 20대엔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유신 체제 아래였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석방된 뒤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이 차린 '종각번역실'에서 번역을 하며 출판 일을 배우다가 1978년 결혼을 앞두고 신림사거리에 광장서적을 차렸고, 1979년에 돌베개 출판사를 창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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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도 연루돼 중형을 선고받았다. 1987년 6월 항쟁 국면에선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황실장을 맡았고, 같은 해 평화민주당에 입당하며 제도권 정치로 들어왔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 쟁쟁한 후보들을 꺾고 국회에 입성한 뒤, '노동위 3총사'로 불리며 현장의 언어를 정치의 언어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무렵 작가 유시민이 보좌관으로 합류해 함께했다.

역대 대통령들과의 인연은 깊다.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교육부 장관을 맡아 '이해찬 세대'라는 말까지 낳았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책임 총리'로 국정 한복판에 섰다. '맞담배' 일화가 남을 만큼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계가 각별한 총리였고, 행정수도 이전 구상을 함께 밀어붙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해찬의 인연은 '동지'라는 말로 정리된다. 문 전 대통령은 별세 소식 직후 "오랜 동지로서, 국정의 든든한 동반자로 함께했던 시간을 소중히 기억하겠다"는 추모 글을 남겼고, 김정숙 여사와 함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빈소를 찾아 헌화하며 유족을 위로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나온 '민주당 20년 집권론'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부터 반복된 문제의식이었다. 그는 2018년 11월 당원 토론회에서 "복지가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20년이 아니라 더 오랜 기간 (집권해서) 가야 한다"며, 독일·영국·스웨덴의 사회통합정책처럼 "20년씩 뿌리내린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10년을 해봤자 (성과를) 무너뜨리는 데는 3~4년밖에 안 걸린다"며, 정권을 다시 빼앗겨선 안 된다는 주장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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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과의 인연도 짙게 남아 있다. 고인은 더불어민주당의 전략과 조정을 책임지며 여러 민주 정부를 관통한 '정치적 후견인'으로 거론돼 왔고, 이 대통령에겐 공개적으로 '멘토'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공무는 이재명 정부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자격으로 떠난 베트남 출장길이었다.

거침없는 화법 탓에 '버럭 해찬' '호통 총리'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그 직설은 결단과 책임정치의 다른 얼굴로 평가되곤 했다. 정치권에선 '친노 좌장' '전략가' '킹메이커'라는 호칭이 따라붙었고, 문재인 정부 시절 여당 대표로 총선을 지휘하며 '민주 정부'의 산증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 고인에게 붙은 별명은 많았지만, 그는 특히 '사무사(思無邪)'를 아꼈다고 한다.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뜻의 이 말은, 사적 욕망보다 공적 과제를 앞세우려 했던 고인의 삶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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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이 끝난 뒤 운구차는 서울추모공원으로 향했다. 화장 절차를 마친 뒤에는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자택에 잠시 들른 뒤, 오후 3시30분 은하수공원에서 안장식이 거행됐다. 국립묘지 대신 부모가 잠든 곳 가까이에 '평장'으로 묻히기를 원했던 고인의 뜻을 따랐다고 한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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