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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망 사각지대 ‘최후의 보루’ …발 빠른 변화 속 늘 자리 지켰다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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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 부스’ 생존기
휴대폰 보급 늘며 56만→2만대로 감소
취약층 통신복지·재난 대비 유지 보수
전기차 충전 등 시대 맞춰 역할 다변화
KT, 140년 통신역사 체험 공간 개관도
지난 21일 오전 8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은 출근길 일분일초를 다투는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에서 쏟아져 나온 이들은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빌딩 숲 사이로 바삐 발을 옮겼다.

여의도의 아침을 여는 직장인들에게서 눈을 돌리면 치열한 속도전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선 회색빛 철제 공중전화 부스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이 100%에 가까운 시대에 대다수 시민이 공중전화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무심하게 스칠 때도 이 낡은 부스는 자리를 지켰다. 가까이서 들여다본 부스 내부는 반전이었다. 본체에 걸린 수화기는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듯 정갈하게 닦여 있었고 바닥에도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무관심 속에 방치된 유물인 줄 알았던 공중전화는 누군가의 정성 어린 관리 아래 도시의 숨은 신경망으로서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계일보

출근길 일분일초를 다투는 직장인들의 발길이 이어진 지난 21일 오전 8시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에 공중전화 부스가 눈에 띈다.


◆최소한의 통신 복지… 멀티 플랫폼 진화

이 회색빛 부스가 도심 요지에서 생존한 배경에는 전기통신사업법이 규정하는 ‘보편적 역무’ 제도가 있다. 공중전화를 모든 이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적정한 요금으로 제공받아야 하는 기본적인 통신 역무로 규정한다.

공중전화는 재난으로 통신망이 끊길 때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하며, 휴대전화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이나 군인 등 통신 취약계층의 기본권도 보장해야 한다. 과거보다 수는 크게 줄었지만 사회가 합의한 최소한의 통신 복지 실현인 셈이다.

본체에 설치된 10원·50원·100원 동전 투입구 옆으로 티머니 카드 리더기가 눈에 띈다. 마그네틱 전화카드를 넣던 방식에서 한 걸음 나아가 현대인이 일상에서 쓰는 교통카드를 올려놓기만 하면 결제와 통화가 가능하도록 인터페이스를 개선했다. 과거 형태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나름의 생존 전략이다.

공중전화는 도시의 유휴 공간을 활용한 멀티 플랫폼으로도 진화했다. 전기차와 전동 킥보드 충전소로 변신해 친환경 모빌리티 거점 역할을 수행하고, 자동심장충격기(AED)를 비치한 응급 안전 센터로 활용된다. 일부 지자체는 부스에 공기청정기와 미세먼지 측정기를 설치해 시민들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스마트 안심 쉼터로 개조했다. 공중전화만의 연결 기능을 활용한 서비스 확장이다.

과거 56만대에 이르던 전국의 공중전화는 2만여대로 규모가 줄어 지난해 KT링커스를 흡수 합병한 KT서비스 남부가 유지·보수와 스마트 부스 전환 사업을 담당한다.

◆광화문에서 140여년 역사가 살아났다

공중전화는 최근 광화문에서 새로운 형태의 숨결을 얻었다. KT는 22일 광화문 사옥 웨스트에 대한민국 정보통신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체험형 전시 공간 ‘KT 온마루’를 개관했다.

모든 것을 뜻하는 ‘온’과 가장 높은 중심을 의미하는 ‘마루’가 합쳐진 이름처럼 이곳은 1885년 한성전보총국부터 이어진 대한민국의 140여년 통신 역사를 집대성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화기 ‘덕률풍’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초기 전화기들을 만날 수 있고, 한쪽에서는 삐삐와 PC통신 등 이제는 사라진 추억의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다. 전화카드를 만들거나 인공지능(AI) 기반의 전보를 보내는 체험은 과거의 자산에 현대적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길거리 공중전화 부스가 물리적인 연결의 보루라면 ‘온마루’는 공중전화의 역사적 가치를 기록하고 미래 비전으로 잇는 정신적인 거점이다.

거리에서 만난 직장인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공중전화에 반가움을 드러냈다. 스마트폰 전원이 꺼져도 쓸 수 있어 든든할 것 같다는 30대 직장인의 안도감이나 동전 몇 개로 집안 소식을 묻던 시절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아 반갑다던 50대 직장인 회고는 결은 다르지만 공중전화의 과거와 미래 가치를 관통한다. 그렇게 오늘도 누군가의 절박함 혹은 누군가의 그리움을 전달할 준비를 마친 채 공중전화는 길 위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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