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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지 않은 멋·실용 ‘설득력’[박민지 디자이너의 옷 잘 입는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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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남자 워크 재킷
경향신문

다음에 입을 것을 고민해야 할 시기
활동하기 편리한 ‘일하는 사람 위한 옷’
코튼 소재 전통적…울 섞여도 좋아

패션 브랜드 매장은 봄옷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백화점에 들러 보면 매장 대부분은 이미 신상품으로 채워져 있고, 겨울옷은 구석진 행거로 밀려나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기온이 영하를 오가는 날씨에 봄옷을 준비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남성의 의복 소비는 계절의 변화보다는 생활의 필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뻐 보여서, 새로워서, 분위기가 좋아서 사는 경우는 많지 않다. 물론 유행에 누구보다 민감한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남성 소비자들은 입기 어려운 옷, 쓰임이 불분명한 옷은 좀처럼 사지 않는다. 그래서 남성들의 옷장은 늘 비슷해 보이기 쉽다. 하지만 잘 고른 옷 한 벌은 그 계절을 넘어 오랫동안 만족스러운 소비가 될 수 있다.

이 기준으로 보면 1월 말은 옷을 사기에 다소 애매한 시기다. 날씨는 여전히 춥고, 체감 온도는 겨울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고 겨울 옷차림을 그대로 유지하기엔 마음이 슬슬 무거워진다. 두꺼운 패딩은 과하고, 롱코트는 점점 부담스러워진다.

신중한 소비자라면 이 시기에는 ‘무엇을 살까’보다 ‘이다음엔 무엇을 입게 될까’를 먼저 떠올린다. 구매보다 판단이 앞서는 시점이다.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변화가 눈에 띈다. 봄 하면 떠오르는 단골 아이템, 봄 재킷이다. 반듯한 재킷 하나 구매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요즘은 재킷이 예전만큼 옷차림의 중심은 아니다. 출근과 외출, 업무와 이동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일상 속에서 재킷은 점점 ‘특정한 목적을 위한 옷’이 되어가고 있다.

그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는 건 워크 재킷과 봄버 재킷이다. 뿌리는 모두 군복과 작업복에서 출발한 옷들이다. 움직임이 많고 외부 환경에 노출된 상황을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재킷보다 활동하기 편리하다. 봄버 재킷은 짧은 길이가 경쾌하고 캐주얼하다. 하지만 그 점 때문에 선택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출근 복장이나 환경에 따라서는 허리를 덮는 길이의 워크 재킷이 더 안정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워크 재킷은 이름 그대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옷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산업화가 본격화하던 시기 유럽과 미국에서는 노동 환경에 맞는 옷이 절실했다. 공장 노동자, 철도 노동자, 광부, 정비공처럼 온종일 몸을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에게 기존 재킷은 지나치게 불편했고, 셔츠 한 장으로는 외부 환경을 견디기 어려웠다. 이때 등장한 워크 재킷은 명확한 기준으로 설계되었다. 멋이 아니라 효율을, 장식이 아니라 내구성과 기능을 우선한 것이다. 허리를 덮는 길이, 넉넉한 실루엣, 크고 실용적인 포켓, 형태를 유지하는 칼라(Collar)는 모두 생활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워크 재킷의 소재는 전통적으로 코튼이다. 물론 현재의 워크 재킷이 코튼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코튼 트윌 소재의 안정적이고 탄탄한 질감도 좋고, 캔버스 소재의 두껍고 거친 느낌도 있다.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에는 울 혼방 소재가 제격이고, 광택 없는 나일론 혼방 소재는 가볍고 관리가 쉬운 장점이 있다. 단, 워크 재킷의 소재는 고급스러움을 과시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가죽처럼 메시지가 강하거나 지나치게 하이엔드적인 질감은 오히려 매력이 떨어진다. 코튼으로만 국한되지는 않지만 어떤 소재든 워크웨어의 태도를 잃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워크 재킷이 아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워크 재킷은 처음부터 ‘잘 차려입은 옷’과는 거리가 있었다. 대신 과한 멋을 부리지는 않지만 허술해 보이지 않는 옷으로 자리 잡았다. 약간은 거칠고 완벽하게 정돈된 인상은 아니지만, 그 안에 묘한 균형감이 있다. 지나치게 꾸민 옷보다 생활에 맞는 옷이 설득력을 갖는 시대다. 또한 남자 아우터의 핵심은 멋이 아니라 지속성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옷을 권하는 일이 아니라, 옷장을 다시 바라보는 기준을 정리해주는 일이다. 코트를 언제까지 입을지, 패딩을 내려놓은 뒤 무엇으로 하루를 버틸지, 그리고 재킷 없이도 일상을 감당할 수 있는 외피가 준비되어 있는지에 대한 질문 말이다. 너무 포멀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캐주얼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아우터가 바로 워크 재킷이다.

워크 재킷은 특정 세대를 위한 옷이 된 적이 없다. 오히려 20대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옷을 좀 입는다’는 평가를 받아온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재킷을 자유롭게 입어왔다. 유행을 좇아서가 아니라, 이 옷이 가진 성격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봄을 준비할 시간, 지금부터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워크 재킷을 찾아보자.

▶박민지

경향신문
파리에서 공부하고 대기업 패션 브랜드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20여년간 일했다. 패션 작가와 유튜버 ‘르쁠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세 번째 저서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 50인>을 펴냈다.


박민지 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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