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슬레이브(Audioslave) 등 왕성한 음악활동…평생 우울증·불안장애 시달려
2017년, 사운드가든 재결합 이후 월드 투어 공연 마친 뒤 호텔방서 숨진 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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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트라공 : 가자.
블라디미르 : 갈 수 없어.
에스트라공 : 왜?
블라디미르 : 고도를 기다려야 하니까.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中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떠날 수 있지만 떠나지 못한다. 두 인물은 시시콜콜한 농담을 나누며, 신발을 벗거나 모자를 고쳐쓰는 등 의미없는 행동을 반복한다. 시간은 흐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고도’(Godot)를 기다리는 이들은 그가 누구인지, 어째서 그를 기다리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아일랜드 태생의 프랑스인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 속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나누는 농담과 우스꽝스러운 행동의 반복은 희극적 장치인 동시에 무의미라는 심연에 빠지지 않기 위한 인간의 최소 버팀목이자 유일한 저항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세계에서, 아무도 오지 않는 공허한 시간을 버티는 두 사람. 기다림은 희망의 표현이 아닌, 무너지지 않기 위해 붙들고 있는 이들의 ‘최후의 형식’이 된다.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신인가, 구원인가, 혹은 그저 흘러가는 시간의 연속인가. 베케트의 세계 속 기다림은 목적이 아니라 조건이 되고, 삶은 도착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 아닌 도착이 유예된 채 유지되는 상태로 굳어진다. 고도의 정체는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오지 않는 고도’를 또 다시 기다린다.
“In your house, I long to be
Room by room, patiently
I‘ll wait for you there
Like a stone”
(당신의 공간 속에서, 방과 방을 오가며
인내를 견디며,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움직이지 않는 돌덩이처럼)
- 오디오슬레이브, ‘라이크 어 스톤’(Like a Stone) 中 -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의 목소리는 언제나 강력하면서도 위태로웠다. 메탈과 하드록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던 폭발적인 성량, 그러나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어딘가 균열이 생기는 듯한 질감이 배어 있었고, 단단하게 쥐어짜는 힘과 동시에 곧 부서질 것 같은 나약함이 공존했다. [게티이미지/Photo by Gie Knaeps] |
기다림
미국의 록 밴드 오디오슬레이브(Audioslave)의 대표곡 중 하나인 ‘라이크 어 스톤’(Like a Stone) 속 화자는 현실이 아닌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의 집’을 암시하는 듯한 공간에 머물러 있다. 그는 그곳에서 돌처럼 앉아 어떤 존재를 ‘인내 속에서’ 기다린다.
노래 속 ‘돌’은 비단 정적인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돌은 움직이지 않으며, 스스로 방향을 바꾸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베케트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길 위에 붙박여져 떠나지 못하는 것처럼, 노래 속 화자 역시 기다림이라는 상태 자체로 고정된 존재다.
여기서 기다림은 화자가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에 가깝다. 베케트의 세계 속 인물들은, 흐르지만 진전되지 않는 시간, 공허만이 반복되는 시간을 경험한다. 즉 ‘고도를 기다리며’ 속 시간은 지속이 의미를 생산하지 못한 채 공회전하는 상태에 가까운데, ‘라이크 어 스톤’ 속 화자 역시 ‘당신이 올 때까지’라는 단 하나의 전제 아래 현재를 정지시켜 둔 자다. 이는 삶의 연장이 아닌 삶 자체와 혹은 이후를 전제한 대기 상태, 말하자면 종말론적 시간 감각에 가깝다.
대부분의 가사에서 ‘집’이 귀환의 장소로 묘사되는 반면 ‘라이크 어 스톤’ 속 집은 흡사 ‘마지막 정착지’ 혹은 ‘사후의 공간’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교도’(pagan), ‘포도주’(wine), ‘천국’(heaven) 등의 가사 속 단어로 보아 곡은 신앙적인 성격을 띄고 있지만, 노래의 화자는 자신이 기다리는 존재의 정체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화자는 기다림이라는 행위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며, 그 기다림은 붕괴를 유예하는 형식이 되고, 완전히 끝나버리지 않기 위해 인간이 붙드는 마지막 시간의 감각이 된다. 화자는 움직일 수 있지만 움직이지 않은 채, 돌처럼 앉아 시간이 닿지 않는 어딘가를 향해 정지해 있을 뿐이다.
곡의 후반부로 갈수록 보컬은 점점 절박해지지만 절박함은 내면에 갇힌 채 터져나오는 고독 속 진동의 결이다. 기다림은 외부를 향한 행위가 아닌 내부에서 증폭되는 시간의 압력으로 변하고 이 지점에서 ‘라이크 어 스톤’은 구원을 확신할 수 없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무력하고 오래된 자세, ‘기다림’을 노래하는 곡이 된다.
“And on my deathbed I will pray
To the gods and the angels
Like a pagan to anyone
Who will take me to heaven
(내가 죽어 누운 자리에서
나는 신과 천사들에게 기도할거야
그게 진짜이든 가짜이든 날 천국으로 데려다준다면
이교도라도 되어 기도하겠어)
- 오디오슬레이브, ‘라이크 어 스톤’ 中 -
크리스 코넬의 커리어는 오래 지속된 정체와 흔들림에 가까웠다. 시애틀 그런지 신(Scene)의 중심이었던 사운드가든(Soundgarden) 시절, 그는 격렬한 사운드 안에서 고립과 불안을 노래했고, 템플 오브 더 독(Temple of the Dog)에서는 상실을 애도했으며, 오디오슬레이브에서는 분노 대신 공허에 가까운 정서를 전면에 내세웠다. [게티이미지/Photo by Jason Marritt] |
크리스 코넬
곡을 부른 목소리의 주인,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의 목소리는 언제나 강력하면서도 위태로웠다. 메탈과 하드록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던 폭발적인 성량, 그러나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어딘가 균열이 생기는 듯한 질감이 배어 있었고, 단단하게 쥐어짜는 힘과 동시에 곧 부서질 것 같은 나약함이 공존했다. 그가 노래할 때 감상자는 무너질 듯 버티는 그의 상태 자체를 듣게 된다. 이것이 크리스 코넬 보컬의 핵심이었다.
그의 커리어 역시 오래 지속된 정체와 흔들림에 가까웠다. 시애틀 그런지 신(Scene)의 중심이었던 사운드가든(Soundgarden) 시절, 그는 격렬한 사운드 안에서 고립과 불안을 노래했고, 템플 오브 더 독(Temple of the Dog)에서는 상실을 애도했으며, 오디오슬레이브에서는 분노 대신 공허에 가까운 정서를 전면에 내세웠다. 밴드의 이름과 형태는 매번 바뀌었지만, 그의 노래 안에는 언제나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 남아 있는 감각이 있었다.
이같은 특징은 코넬의 가사에서도 자주 드러났는데, 인간이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 채 머무는 상태,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끝내 붙잡지 못하는 순간이 그의 노래에는 반복해서 등장했다. ‘블랙 홀 선’(Black Hole Sun), ‘어둠 속에 떨어진 나날들’(Fell on Black Days), 그리고 ‘라이크 어 스톤’까지, 그의 음악에는 언제나 구원을 말하지 못한 채 구원의 가능성 주변을 맴도는 시선이 있다.
이 점에서 크리스 코넬의 삶과 노래는 분리되지 않는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오랫동안 우울과 중독 문제를 겪어왔음을 고백한 바 있고, 여러 차례 재활과 회복을 반복했다. 무대 위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쏟아내던 인물은 무대 밖에서는 깊은 고립과 싸우고 있었으며, 그의 삶은 앞으로 나아가는 서사가 아니라, 다시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는 원처럼 이어졌다. 그렇게 코넬의 삶 역시 벗어나고자 했으나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 속에 머물렀다.
“Until the day was gone
And I sat in regret
Of all the things I‘ve done
For all that I’ve blessed
And all that I‘ve wronged”
(날이 저물 때까지 후회 속에 앉아 있었어
내가 저지른 모든 일들
내가 축복했던 모든 것들
내가 잘못했던 모든 순간을 떠올리며)
- 오디오슬레이브, ‘라이크 어 스톤’ 中 -
2017년 5월, 크리스 코넬은 디트로이트 공연 이후 호텔 방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팬들에게는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기억되지만, 그의 생애와 음악을 깊게 들여다보면 그의 죽음은 돌연한 결말이라기보다 오랫동안 누적돼온 ‘내적 시간’이 외부 사건으로 표면화된 순간에 가까웠다. [게티이미지/Photo by Peter Wafzig] |
인내를 견디며, 돌처럼 앉아, 고도를 기다리며
2017년 5월, 크리스 코넬은 디트로이트 공연 이후 호텔 방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팬들에게는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기억되지만, 그의 생애와 음악을 깊게 들여다보면 그의 죽음은 돌연한 결말이라기보다 오랫동안 누적돼온 ‘내적 시간’이 외부 사건으로 표면화된 순간에 가까웠다. 그가 남긴 노래들이 반복하던 단어들, 예컨대 어둠, 무게, 고립, 기도, 용서, 후회 등은 코넬 사후에 미디어를 통해 ‘복선’처럼 읽혔다.
그러나 이 같은 해석은 언제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크리스 코넬의 노래가 그의 죽음을 예언했다고 말할 수 없으며, 그의 죽음이 노래의 의미를 완성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의 음악 속에서 반복되던 정서와 질문들이 삶의 마지막 지점에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라이크 어 스톤’의 화자는 “당신이 올 때까지”를 말하며 시간을 붙들고 있었고, 어떤 형태로든 도착을 가정한 채 현재를 버텼다. 하지만 그 도착은 끝내 확정되지 않는다. 기다림은 희망이라기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유지되는 상태에 가깝다. 이때 기다림은 신앙도, 낙관도, 확신도 아닌, 그저 존재를 지속시키는 마지막 형식이 된다. [게티이미지/Photo by Rob Verhorst] |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 위에서 기다림은 끝내 보상받지 못하고, 도착은 유예되며, 질문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 구조는 잔혹할 만큼 건조하지만, 인간의 조건을 정확히 닮아 있다. 크리스 코넬의 삶 역시 결정적인 도착점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 그는 성공을 경험했고, 찬사를 받았으며, 무대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였지만 그 내면의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고 기다림은 계속됐다.
‘라이크 어 스톤’의 화자는 “당신이 올 때까지”를 말하며 시간을 붙들고 있었고, 어떤 형태로든 도착을 가정한 채 현재를 버텼다. 하지만 그 도착은 끝내 확정되지 않는다. 기다림은 희망이라기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유지되는 상태에 가깝다. 이때 기다림은 신앙도, 낙관도, 확신도 아닌, 그저 존재를 지속시키는 마지막 형식이 된다.
그렇기에 코넬의 죽음은 개인적 비극을 넘어 우리가 쉽게 지나쳐왔던 질문을 다시 꺼내 보이게 한다.
인간은 왜, 끝내 도착을 보장받지 못하면서도 시간을 붙들고 현재를 견디는가. 구원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기다림을 멈추지 못하는가. 기다림은 희망의 다른 이름인가, 아니면 붕괴를 늦추기 위한 ‘마지막 방어’인가.
에스트라공, 블라디미르, ‘라이크 어 스톤’의 화자, 그리고 크리스 코넬이라는 인간은 서로 다른 텍스트와 현실에 속해 있지만 결국 같은 구조 안에 놓여 있다. 떠날 수 있지만 떠나지 못하고, 끝낼 수 있지만 끝내지 못하며, 오지 않을지도 모를 무언가를 기다리며 시간을 붙든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들을 보며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고도로 설정한 채, 도착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