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서태지와 아이돌의 첫 방송 출연 영상./사진=뉴시스(MBC 예능프로그램 '특종!TV연예' 화면캡처) |
'문화 대통령'.
1996년 1월 31일 오전 11시, 서울 명륜동 성균관 유림회관 기자회견장. 검은 정장을 입은 세 청년이 굳은 표정으로 단상에 올랐다.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유례없는 파장을 일으킨 남성 아이돌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 공식 기자회견이었다. 1992년 3월 23일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활동을 시작한지 1410일이 되는 날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리더 서태지는 "지난 4년간의 가요계 활동을 마감하고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며 "새로운 음반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작업은 살이 에이고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데뷔 4년, 4장의 앨범만으로 국내 최정상의 위치에 오른 서태지와 아이들이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면서 당시 지상파 3사 9시 뉴스의 첫 소식으로 다뤄질 만큼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들의 해체가 단순한 인기 그룹의 해산을 넘어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는 이유는 1990년대 초반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기 전인 1990년대 초까지 한국 음악 시장은 트로트와 발라드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 음악 산업의 주도권은 음반 제작사가 아닌 방송사에 있었다. 방송사 PD의 권력과 정부의 엄격한 심의 규제 아래 활동해야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5년 발표한 노래 '컴백 홈' 자료사진. |
특히 한국이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당시 10대와 20대 소비층은 구매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감성을 대변할 콘텐츠는 부재했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난 알아요'로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기존 가요계의 문법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음악적 다방면에서 혁신을 시도했다. 랩과 댄스 음악을 한국어 가사와 접목해 '랩은 한국어에 맞지 않는다'는 편견을 깼으며 국악과 헤비메탈을 결합한 '하여가', 갱스터 랩을 도입한 '컴백홈' 등 앨범마다 파격적인 장르 실험을 감행했다. 이들은 당초 남녀 관계나 사랑 위주의 가사에서 탈피해 사회적 메시지를 음악에 담았다.
이 중에서도 3집 수록곡 '교실 이데아'는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 현실을 비판하며 10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고, 4집 '컴백홈'은 가출 청소년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사회적 현상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 사전 심의 제도로 인해 가사가 삭제될 위기에 처한 '시대유감'을 가사 없이 연주곡으로만 수록하기도 했다. 이는 1996년 음반 사전 심의 완화 등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음반 작업과정에서도 이들은 자율성을 확립하며 변화를 시도했다. 모든 곡을 직접 작사·작곡·프로듀싱하는 것은 물론 스타일링과 안무까지 팀이 주도했다. 활동기와 휴식기를 명확히 구분해 창작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을 도입했는데, 이는 방송사의 스케줄에 종속돼 있던 당시 연예계 관행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상표를 떼지 않은 의상이나 스노우보드 패션 등은 청소년 문화의 상징이 되었고, 3집 발매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은 단순한 가수를 넘어 '문화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서태지와 BTS(방탄소년단)의 합동 공연/사진제공=뉴시스 |
이 같은 상황에서 서태지 아이들의 은퇴는 충격이었다. 1996년 1월 중순부터 잠적설이 나돌기 시작했고, 1월 22일 은퇴 의사를 간접적으로 내비친 뒤 31일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활동 종료를 선언했다.
당시 사회적 파장은 엄청났다. 팬들은 서태지의 자택과 소속사 앞에서 해체 반대 시위를 벌였고 일부 극성 팬들 사이에서는 자살 클럽 결성설까지 나돌며 '집단 히스테리' 증상을 보인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였다. 갑작스러운 은퇴 배경을 둘러싸고 조직폭력배 개입설이나, 정부 외압설 등 루머가 돌기도 했다. 기자회견 직후 멤버들은 헬기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해 미국으로 떠나며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해체 이후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갔다.
서태지는 1998년 솔로로 복귀해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며 뮤지션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서태지는 2017년 데뷔 30주년을 맞아 아이돌 BTS(방탄소년단)와 콘서트를 가진 뒤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양현석은 제작자로 변신해 YG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고 지누션, 원타임, 빅뱅 등을 비롯해 최근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블랙핑크 등 체계적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이주노도 연예 기획사를 설립해 제작자로 변신했다.
이후 한국 가요계는 방송사 중심의 구조에서 기획사 중심의 '아이돌 시스템'으로 급속히 재편됐다. SM엔터테인먼트, JYP 등 대형 기획사들이 주도하는 트레이닝 시스템과 팬덤 문화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닦아놓은 10대 중심의 시장 기반 위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1세대 아이돌인 H.O.T와 젝스키스, 핑클, S.E.S., GOD 등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는 한국 대중음악이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나아가 거대 '산업'이자 '문화'의 단계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분기점이었다. 이들은 음악적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고 아티스트의 권리를 신장시켰으며, K-팝이 현재와 같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데 필요한 음악적·시스템적 토양을 마련했다.
현재 세계를 휩쓸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K-팝 아이돌 그룹들이 사회적 메시지를 노래하고 힙합과 댄스를 결합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도 서태지와 아이들이 남긴 유산과 무관하지 않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무대에서 내려왔지만, 그들이 촉발한 변화는 여전히 한국 대중음악 DNA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선언 인터뷰 모습 /사진=머니투데이 DB |
이재윤 기자 mt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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