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 사이 고지혈증(이상지질혈증) 환자가 40% 가까이 폭증하며 고혈압이나 당뇨보다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50대 직장인 박 모 씨의 하소연입니다. 평소 회식 자리가 잦고 배가 좀 나온 편이긴 했지만, 스스로 건강하다고 믿었던 그에게 ‘이상지질혈증(고지혈증)’ 진단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박 씨처럼 “나는 괜찮겠지”라고 방심하다가 혈관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는 분들이 주변에 정말 많아졌습니다. 증상이 없어 더 무섭다는 ‘침묵의 살인자’, 혈관 속 기름때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고혈압·당뇨 제쳤다…무섭게 급증하는 ‘기름진 피’
혈관 건강의 지표가 심상치 않다. 대한민국 성인들의 혈액이 빠르게 탁해지고 있다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울린다.
3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최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3년 기준 고지혈증(이상지질혈증)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은 304만명이 넘었다.
놀라운 것은 증가 속도다. 5년 전보다 무려 38.4%나 늘었다. 같은 기간 국민병으로 불리는 고혈압 증가율 14.6%, 당뇨병 19.2%와 비교하면, 고지혈증 환자의 증가세는 그야말로 가파른 우상향이다.
서구화된 식습관과 운동 부족이 일상화되면서 핏속에 기름이 끼는 속도가 혈압이 오르는 속도를 추월한 셈이다.
◆‘죽음의 3중주’ 앓는 환자만 230만명…혈관이 버티질 못해
더 큰 문제는 이 질환들이 따로 오지 않고 패키지로 온다는 점이다. 전문의들은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을 묶어 ‘3대 만성질환’이라 부르며, 이들이 동시에 나타날 때 혈관이 입는 데미지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이 세 가지 병을 동시에 앓고 치료 중인 환자 수만 232만 6000명에 달한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의 팩트시트를 보면 상황의 심각성이 더욱 명확해진다. 당뇨병 환자의 87.1%와 고혈압 환자의 72.1%가 LDL 콜레스테롤 관리 기준에 따라 이상지질혈증을 동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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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당뇨병 환자 10명 중 9명은 피까지 끈적끈적하다는 뜻이다. 고혈압으로 혈관 벽이 손상된 상태에서, 당뇨병으로 염증이 촉진되고, 여기에 기름때(이상지질혈증)까지 끼면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이 예고 없이 찾아오는 이유다.
◆“여성이라 안심? 천만에”…갱년기 넘으면 남성보다 위험
“젊었을 땐 남편보다 제가 훨씬 건강했죠. 고기 많이 먹는 것도 남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폐경 지나고 나니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더군요.”
60대 여성 환자의 말처럼, 이상지질혈증에는 명확한 성별 역전 구간이 존재한다. 40대까지는 남성의 유병률이 높지만, 여성은 폐경기를 기점으로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급증한다.
핏속에 쌓인 기름때는 별다른 전조증상 없이 혈관을 막아 심뇌혈관 질환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연합뉴스 |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혈관을 청소해주는 HDL 콜레스테롤 수치를 올리고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어 혈관을 보호하는데, 폐경 후에는 이 호르몬이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도 60대 여성의 고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은 50% 내외로 치솟아 남성을 뚜렷하게 앞지른다. 중년 여성에게 혈관 건강 관리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증상 없는 시한폭탄, ‘수치’ 싸움이 관건
의학적으로는 고지혈증보다 이상지질혈증이 더 정확한 용어다. 단순히 핏속에 나쁜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이 높은 상태뿐만 아니라, 좋은 HDL 콜레스테롤이 감소한 상태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상지질혈증은 죽상 경화를 거쳐 심혈관질환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 병의 가장 무서운 점은 무증상이다. 혈관 노화의 원인인 LDL 콜레스테롤이 쌓여도 우리 몸은 별다른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건강검진의 혈액검사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결국 믿을 건 수치뿐이다. 포화지방 섭취를 줄이고 운동으로 열량을 써야 한다. 술은 중성지방 수치를 올리고, 흡연은 나쁜 콜레스테롤을 증가시킨다.
“아프지 않으니 괜찮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고지혈증이 흔하다고 방심하지 말고 치료를 서둘러야 한다. 지금 당신의 혈관 속에서는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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