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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요양보험 도입에도 늘어난 여성노인 돌봄 공백,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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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경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소설 <딸에 대하여>(김혜진, 민음사)에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중년여성 화자가 등장한다. 그녀가 일하는 요양원에는 독거노인 '젠'이 있다. '젠'을 돌보는 일, 정해진 시간 동안 식사를 챙기고, 약을 확인하고, 필요한 위생을 관리하는 일이 화자의 일이다. 그러나 화자의 근무시간이 끝나고 '젠'의 병실을 나서는 순간, '젠'은 다시 혼자가 된다. 화자는 자신이 제공한 돌봄이 '젠'의 삶을 지탱하기에는 얼마나 제한적인지, 그리고 그 한계가 개인의 성실함이나 책임감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는다. 이 장면은 돌봄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부재하는' 상태로 작동하는 한국 사회의 노인돌봄 현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특히 여성노인의 삶에서 돌봄은 더욱 불안정한 형태로 나타난다. 평균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약 6년 더 오래 살고,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낼 가능성도 높아 노년기의 상당 부분을 홀로 보내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소득 감소, 건강 악화, 돌봄 필요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럼에도 노인정책은 여전히 '평균적인 노인'을 전제로 설계되고, 그 평균 속에서 여성노인의 삶은 쉽게 가려진다.

한국의 대표적 종단자료를 통해 이런 문제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연구가 있다 (☞논문 바로가기 : 한국 노인의 공식 및 비공식 돌봄의 성별 동향). 이 연구는 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 초기인 2010년과 제도가 성숙 단계에 접어든 2018년을 비교해, 일상생활동작(ADL) 또는 도구적 일상생활동작(IADL)에 제한이 있는 65세 이상 노인의 공식 돌봄과 비공식 돌봄 이용 양상을 분석했다.

전체적으로는 공식 돌봄을 포함한 돌봄 이용이 증가했다. 공식 돌봄과 비공식 돌봄(가족 돌봄)을 함께 이용하는 비율은 2010년 7%에서 2018년 15%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성별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남성 노인의 경우, 돌봄을 전혀 받지 못하는 비율이 2010년 28%에서 2018년 25%로 소폭 감소했다. 반면 여성노인에서는 이 비율이 25%에서 32%로 오히려 증가했다. 제도가 확대되고 자리 잡는 동안에도 여성노인 중 상당수는 여전히 돌봄의 사각지대에 머물렀다.

회귀분석 결과는 노인인구 내 격차를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여성노인은 2010년과 비교해 2018년에 돌봄을 전혀 받지 못할 위험이 2.1배 높았고, 동시에 공식·비공식 돌봄을 모두 이용할 가능성도 2.5배 높았다. 여성노인은 '충분한 돌봄'과 '완전한 공백'이라는 두 극단에 동시에 더 많이 노출된 것이다.

연구는 또 여성노인의 돌봄 이용이 소득, 배우자 유무, 독거 여부, 제도에 대한 신뢰 등 사회적 조건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소득이 높을수록, 그리고 배우자가 있는 경우 돌봄 공백 집단에 속할 가능성이 낮았던 반면, 독거 여성은 돌봄 공백 집단에 속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돌봄 제도는 확대되었지만, 그 혜택은 결코 동일하게 분배되지 않았다.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될까. 메로디오 연구팀은 여성노인이 '노인'이면서 동시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중의 어려움에 직면한다고 설명한다. 성별화된 연령 차별과 빈곤, 가족 규범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여성노인의 위험은 증폭되지만, 정책은 이를 분절적으로 다룬다. 그 결과 여성노인의 돌봄 공백은 개인의 문제로 남고, 구조는 보이지 않게 된다. (☞논문 바로가기 : 성별에 따른 연령차별과 그와 관련된 교차적 불평등이 노년 여성의 건강과 복지에 미치는 영향).

돌봄은 결코 성별과 무관하지 않다. 성별을 지우는 순간, 돌봄의 불평등은 여성노인의 삶 속에서 반복된다. 여성노인을 정책의 주변부에 머무르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평균의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성노인이 누구와 살고 있는지, 어떤 소득 조건에 놓여 있는지, 돌봄을 요청할 수 있는 관계망을 실제로 갖고 있는지 개별적 조건과 취약성을 전제로 한 돌봄 설계가 필요하다. 누구는 겹겹의 돌봄을 받고, 누구는 아무도 오지 않는 상태가 반복되는 이유는 개인의 선택이나 태도 때문이 아니다. 각자의 삶을 둘러싼 소득, 관계, 거주 형태, 그리고 제도 접근의 조건을 함께 보지 않는 한, 돌봄의 공백은 앞으로도 개인의 책임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소설 속 '젠'처럼 오늘도 혼자 남겨질 여성노인들의 돌봄 불평등을 메우기 위해서는 '가장 취약한 이들'을 중심에 두는 돌봄의 확대가 정책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서지정보
Cha, S. E., Kim, K., & Lee, S. (2025). Gendered Trends in Formal and Informal Care Utilization Among Older Adults in South Korea. Journal of Aging & Social Policy, 37(5), 724–739. https://doi.org/10.1080/08959420.2024.2349495
Merodio, G., de Zárate, A. M. O., Zhu, F., & Morentin-Encina, J. (2024). The impact of gendered ageism and related intersectional inequalities on the health and well-being of older women. Research on Ageing and Social Policy, 12(2), 146-165.

프레시안

▲병원에서 한 어르신이 재활운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보경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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