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주문. 원고의 주위적 청구를 기각한다. 피고가 2024년 2월 2일 원고에게 한 2024년 3월 1일자 전보 처분을 취소한다. 소송 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재판장 고은설)가 이같이 선고하자 재판정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재판장이 정숙을 명하자 곧장 잠잠해졌고, 이내 피고인과 그를 지지해 온 시민들이 흐느꼈다.
이날 전보 처분 취소 판결을 받은 원고는 지혜복 전 교사, 지난 2023년 자신이 근무하는 A 학교에서 성폭력이 발생하고 있음을 공론화한 뒤 학교로부터 전보 처분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곧바로 학교를 떠나면 성폭력 사안이 제대로 해결될 수 없을뿐더러 공익제보자에 대한 전보 처분은 부당하다며 학교에 그대로 남게 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서울시교육청이 지 전 교사를 공익제보자로 인정하고 보호했다면 행정소송까지 가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교육청은 지 전 교사를 공익신고자보호법상 공익신고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더해 지 전 교사가 전보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며 2024년 9월 그를 해임하기까지 했다.
지 전 교사는 A 학교는 물론 서울시교육청의 판단 또한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는 A 학교 성폭력 사안 해결과 복직을 요구하며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와 천막 농성 등을 해 왔다. 지난해 2월에는 연대자 20여 명과 함께 서울시교육청 내부에서 농성을 벌이다 현행범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지혜복 교사와 연대자들. ⓒ전병철(비주류사진관) |
이후에도 싸움을 이어간 지 전 교사는 2024년 1월 1인 시위 740일 만에 복직으로의 첫걸음을 뗄 수 있었다. 지 전 교사가 서울시교육청 중부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상대로 제기한 전보 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이 지 전 교사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원고가 2023년 6월 27일 서울특별시 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 한 신고가 공익신고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이 사건 신고로 인해서 원고가 공익신고자에 해당하고, 그에 따라서 원고에 대해서 내려진 전보 처분이 불이익한 처분인지 여부"라고 판단했다.
이어 "이 사건 신고가 공익신고에 해당하고, 따라서 원고가 공익신고자에 해당하며, 원고에 대해서 내려진 이 사건 처분이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반하는 불이익한 처분라며 "법리적으로 무효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취소할 사유는 충분하다고 판단된다"고 판결했다.
선고를 들은 지 전 교사는 자신을 공익신고자로 인정한 첫 판결에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는 지 전 교사를 지지하러 온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감격스러운 마음을 나누려 서로 포옹하느라 재판정을 나오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지헤복 전 교사와 시민들이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보 처분 취소 소송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프레시안(박상혁) |
지 전 교사와 시민들은 법원을 빠져나와서도 감격이 가시지 않아 눈가가 빨갛고 목멘 목소리를 냈다. 단순히 지 전 교사가 복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서가 아니다. 학교에서 성폭력 등 말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은 학생 편에 선 교사가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 이를 계기로 학생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는 데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지 전 교사에 연대해 온 유지원 학생사회주의자연대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간 A 학교 투쟁을 해 오며 가장 마음 아팠던 순간은 성폭력 피해당사자 학생들이 '차라리 말하지 말 걸 그랬어요', '그냥 가만히 있을 걸 그랬어요'라며 양육자에게 토로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때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행정심판에서 이겼습니다. 부당전보를 취소하겠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오늘 결과를 피해 학생들이 반드시 전해 듣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오늘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지혜복 선생님께 성폭력을 말해서 다행이었고, 고등학교를 가고, 다음 날을 살아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오면 좋겠습니다."
▲지혜복 전 교사가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보 처분 취소 소송 승소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프레시안(박상혁) |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 전 교사는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해임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지 전 교사가 전보 처분 취소 소송에서 공익신고자로 인정받은 만큼, 해임 처분 또한 취소 판결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선고 후 서울행정법원 앞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 전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A 학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문제 제기 하다가 저처럼 고통받고 학교를 나가야만 하는 교사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교사들이 온전히 보호받길 원합니다. 그분들에게도 오늘 이 판결로 학교에 가는 길에 용기가 되고 힘이 되길 바랍니다.
제가 학교로 돌아가는 것은 더 큰 성평등한 사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 한 걸음 떼는 일을 시작으로 끝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건설하는 길에 조금씩 더 나아갈 것입니다. 저도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오늘의 승리를 동지들에게 돌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 Copyrights ©PRESSia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