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으로 한국 최초 5성급 호텔 한식당 총괄 셰프가 된 이금희 조리장. 그는 현재 메이필드호텔 한식당 봉래헌과 낙원의 총괄 셰프다. 그가 호텔 안에 있는 장독대에 서 있다. 그는 씨간장을 보존하고 해마다 장과 김치를 직접 담근다. 박미향 선임기자 |
그는 첫번째 대결에서 탈락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 시즌2 ‘1대1 흑백대전’에서 ‘술 빚는 윤주모’(윤나라)가 만든 ‘밤생떡국’에 밀렸다. 그가 낸 음식은 ‘밤죽’이었다. 심사위원 안성재는 “한국적이면서 기본에 충실한 맛”이라고 했지만 결과는 ‘술 빚는 윤주모’의 승리였다. 그의 이름은 단박에 묻혔다. 다른 출연자들이 각종 예능 방송과 유튜브를 종횡무진 달리며 이름을 알릴 때 그를 찾는 데는 없었다. 탈락이 실패는 아니다. 그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했다. 자신을 ‘서바이벌 게임’엔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이금희(59) 메이필드호텔 한식당 총주방장이다.
‘흑백요리사’ 시즌1 출연 요청도 거절한 그가 시즌2에 출연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아 호텔 여성 주방장으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울 기회인데다가 후배들이 한식을 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고, 한식당이 어려움이 많았는데도 문 닫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한 호텔 측에 감사한 마음도 있었다”고 했다. 한식이 세계적으로 인기라지만 정작 한국엔 한식 대가가 적다. ‘흑백요리사’ 출연 요리사만 봐도 다수가 서양 요리나 중식을 하는 이들이다. 주목받지 못하니 하는 이가 줄고, 하는 이가 주니 생존이 위태로운 게 지금 정통 한식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30년 넘게 한식의 정수만을 지켜온 이금희 조리장의 위상은 크다.
그는 여성으로는 한국 최초 5성급 호텔 한식당 총괄 셰프가 된 이다. 2016년 메이필드호텔의 ‘봉래헌’과 ‘낙원’을 총지휘하는 총주방장이 됐다. 주방을 무림에 빗대 얘기하는 요리사가 많다. 화기와 칼 등 무시무시한 ‘연장’이 있는 데가 주방이다. 요리사는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주방은 이런 분위기에 남성 문화가 더해진 곳이다. 과거 요리사 대부분이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반대와 역경, 차별이 ‘기본값’인 환경을 뚫고 한식 대가가 됐다. 지난 16일 그를 만났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에 출연한 이금희 조리장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
―‘1대1 흑백대전’은 지역을 선택하고 그 지역 재료로 대결하는 편이었다. 거기서 밤 요리를 했다. 왜 밤을 선택한 건가?
“우연이었다. 남은 지역 중에서 서산을 고르고 싶었다. (이 조리장의 고향은 충남 서산 바닷가다.) ‘꽃게가 나오겠지’ 했다. 그런데 다른 요리사가 먼저 가져갔다. 차선책으로 내륙지방 충청도 지역을 찾다가 공주를 골랐다. 밤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막상 밤이 나오니 고민이 됐다. 밤은 부재료다. 다른 재료를 돋보이게 한다. ‘봉래헌’ 인기 메뉴인 밤죽이 떠올랐다. 여러 가지 재료를 추가한 맛 테스트를 해보고 결정했다.”
―이 조리장의 밤죽은 특별하다고 들었다.
“10여년 전에 개발했다. 그 전에 콩죽, 호박죽도 만들어봤는데, 반응은 좋았지만 한 가지만 계속할 순 없었다. 새로운 거를 만들어야 했다. 밤죽은 건더기가 없어 한식 코스에 잘 맞는 음식이다. 공주 밤이 80% 이상 들어가는 밤죽이다. 나머지는 쌀 등이다.”
―‘다른 요리를 했으면 떨어지지 않았을 텐데’란 후회는 없나?
“밤으로 정해진 다음 떡갈비도 해봤다. 밤을 갈아서 함께 치댔다. 밤을 넣어보니 (고기가) 잘 뭉쳐졌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제인 밤이 강조되지 않는 거로 보여 고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밤을 익혀 그대로 넣었어도 좋았겠다 싶다.”
이금희 조리장이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에서 선보인 밤죽. 박미향 선임기자 |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에 출연한 이금희 조리장. 넷플릭스 제공 |
―‘흑백요리사’ 시즌2 촬영 얘기를 더 해보자.
“모르는 이가 많아서 편했다. 흑수저들 평가받는 걸 보면서 긴장되고 마음이 쫄깃해졌다. ‘저거 타고 있는데, 그거 봐야 하는데’ ‘실수하면 안 되는데’ 그런 생각이 들면서 조급해졌다. 엄마 같은 마음이었다. 흑수저 요리사들은 열심히 하고 모든 걸 쏟아붓고 있었다. 다 잘했다. 다 잘되었으면 했다. 내가 요리할 때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백수저 요리사들이 다 그랬다. 역동적이지 않으니깐 재미는 없다.(웃음) 지난해 5월쯤 촬영을 시작했는데, 일주일에 두번 촬영하고 2주 쉬는 식이었다. 오후에 시작해 동틀 때까지 촬영하기도 했다. 휴대폰도 반납하고 대기실엔 모니터도 없어 답답했지만 같은 대기실을 쓰는 김희은 셰프와 스쾃을 하며 친해졌다.(웃음)”
―흑수저 요리사 중에 눈에 띄는 이가 있던가?
“‘중식마녀’(이문정)가 열심히 하더라. 나중에 다른 자리에서 만났는데 사람이 요리하는 거와 같더라. ‘술 빚는 윤주모’(윤나라)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잘되길 바랐다. 남자 요리사보다 여자 요리사를 더 유심히 보게 되더라.(웃음) 여성 요리사의 길이 쉽지만은 않은데, ‘저 친구들도 힘들게 하겠구나’란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더 쓰였다.”
―출연한 보람이 있었나?
“어디서 그런 분들과 경연해보겠나. 다 모인 것만도 엄청난 일이다. 후배님들도 대단하신 분이 많았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열심히 하시는 후덕죽 셰프님께 감동했다. 주방 직원 중에 ‘흑백요리사’ 같은 데 나가겠다는 이가 생겼다. 닉네임까지 정했더라. 한식 하는 친구인데, 5년차 요리사다. 씩씩한 친구인데, 더 열심히 하고 있다. 출연 목적이 달성된 거다. 경험은 안 해보는 것보다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의 요리 인생의 첫 단추는 대학 졸업 후 취업한 롯데호텔에서 끼웠다. 1980년대 말이다. 그는 양식당에 배속됐다. 하지만 곧 호텔 한식당 ‘무궁화’ 근무를 요청했다. 양식당이 더 근사하고 멋있어 보이던 시절이었다. 한식 요리사는 전문가로 인정받지 못하던 때이기도 했다.
이금희 조리장이 만든 구절판. 봉래헌 메뉴 중 하나다. 박미향 선임기자 |
―왜 한식당에서 일하겠다고 한 건가?
“양식을 하면 내가 멋진 요리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달랐다. 여자는 샐러드 코너만 담당하게 했다. 불을 다루는 데는 보내지 않았다. ‘이거는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벽이 너무 높았다. 한식은 여자들이 할 게 많았다. 반찬부터 시작해서 한정식 코스, 분야별로 할 게 보였다. 주방장, 팀장 다 쫓아다니며 바꿔달라고 했다.”
―한식당에선 원하는 걸 얻었나?
“거기도 어렵긴 비슷했다. 반찬 담는 것부터 시작했다. 3년간 담았다. 손이 문드러지도록 했다. 요리사는 남자 반, 여자 반이었다. 요정에서 일하셨던 분, 반가 음식을 하신 분 등 다양한 분들이 모여 있었다. 저보다 나이가 아주 많은 어머니뻘 되시는 분들이었다. 팔도 한식을 다 잘하시는 진짜 고수들이었다. 음식 맛이 너무 좋아서 그분들이 만든 깍두기는 양식당 요리사들이 몰래 퍼갈 정도였다. 종종 다투는 거친 분위기도 벌어졌다. 눈치껏 배워야 했다. 2년 일하고 결혼하면 그만두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2~3년이 흘렀는데, 어느 순간 그분들이 마음을 활짝 열어주셨다. 어머니처럼 자세히 비법까지 다 가르쳐줬다. 혼내지만 따스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분들 앞치마, 뒤꽁무니를 붙잡고 따라다니며 배웠다. 그분들이 나를 키웠다.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정이 담뿍 들었다.”
여성으로 한국 최초 5성급 호텔 한식당 총괄 셰프가 된 이금희 조리장. 박미향 선임기자 |
그는 지금도 80살이 넘은 그 시절 스승들을 찾아뵙는다. “임신한 후 일하는데 그분들이 잘 보살펴주셨다”며 “그분들 덕분에 (거친 주방에서)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찬모 아줌마’로 불린 그들이다. “찬모라고 하면 낮게 보는 이가 있는데, 저는 ‘나도 찬모 출신이야’라고 해요. 그분들께 배웠으니까요. 한식사에서 그분들은 정말 중요한 분들입니다. 우러러봐야 할 분들이죠. 선배 여성 셰프들인 거죠. 나를 키워주고 계속 일하게 해준 분들입니다. 제가 이제 이어가야죠.”
주방에 항상 있었을 듯한 그의 이력에도 공백은 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호텔을 그만뒀다. 남편도 롯데호텔 요리사였다. 둘 중 하나는 회사를 그만둬야 할 상황이었다. 4살과 6살, 아이가 둘이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하고 살림도 해보고 싶어서 ‘잘됐다’ 하고 희망에 벅찬 사표를 던졌다”고 했다. 하지만 “요리가 천직임을 깨닫고” 2002년 메이필드호텔에 들어갔다.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새로 연 한식당 ‘봉래헌’을 키우는 일이었다. 이 조리장이 ‘봉래헌’을 키우고 요리사의 길을 걷는 데 남편 이두희씨는 든든한 우군이자 버팀목이 돼줬다. 그보다 4살 많은 남편 두희씨는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롯데호텔 노조 사무국장과 잠실지부장을 지낸 이다. 둘의 결혼 이야기는 드라마 ‘파스타’다. 호텔 내 다른 업장에서 일했던 두희씨는 첫눈에 반한 이 조리장이 있는 한식당 근무를 자원했다. 하지만 이 조리장은 그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희씨는 이 조리장이 채소 다듬기를 마치지 못했으면 자신이 다듬은 채소를 말없이 갖다놓았다. “그렇게 해도 그 마음을 몰랐어요.” 그렇게 두희씨가 이 조리장 곁을 뱅뱅 돌기를 3년. “한번은 큰 케이크를 들고 가는데, ‘제가 들어드릴까요?’ 하는데 너무 믿음직스러워 보여 마음이 열렸어요.” 그들은 1년 연애하고 결혼했다.
이금희 조리장이 만든 ‘봉래헌 세찬’ 메뉴 중 하나인 3가지 나물. 박미향 선임기자 |
이금희 조리장이 만든 ‘봉래헌 다과반’(율란·매작과·금귤정과). 박미향 선임기자 |
―‘봉래헌’이 지금은 ‘2025 서울미식 100선’에 오르고 정통 한식을 내는 고급 식당으로 자리매김했지만 2000년대엔 어려웠다.
“지금이라면 도망갔다.(웃음) 무식하고 용감해서 달려들었다. 일해야 된다는 절실함도 있었다. 매년 실적 발표하는데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단청을 보고 ‘여기가 절이냐’ 하는 이도 있었다. 공부하면서 매달렸다. 10년이 지난 2012년부터 나아졌다. 입소문이 났다. 아이들이나 어르신이 먹기 편한 음식이 나오고 한옥 분위기도 좋다는 얘기가 퍼졌다.”
―한식의 참맛을 경험해보려는 외국인 미식가들이 찾는 곳이 됐는데, 비결이 궁금하다.
“기본과 원칙이 중요하다. 한식의 본질은 정성과 기다림이다. 장은 기다림의 음식이다. 장과 김치를 직접 담근다. 호텔 뒷마당에 장독대가 있다. 씨간장도 있다. 정성스럽게 보존한다. 채소나 과일도 충남 예산에 있는 직영 농장에서 가져온다. 좋은 우리 재료로 정통 한식 조리 기술을 활용해 음식을 만드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서울 특급 호텔 중 한식당을 직영하는 데는 극히 적다. 롯데호텔 서울의 ‘무궁화’, 서울신라호텔의 ‘라연’, 메이필드호텔의 ‘봉래헌’ 정도가 다다.
―한식이 세계적으로 인기고, 서양 조리 기술을 접목한 ‘모던 한식’ ‘컨템퍼러리 한식’ 등 새로운 장르도 생겨났다.
“‘모던 한식’은 우리와는 좀 다르다. 한식 식재료를 썼지만 맛이나 기술 등은 다르다. ‘정말 이게 한식인가’라고 질문하면 그건 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식의 기본, 우리 전통 방식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간장, 된장 등 장을 (내가) 직접 담그는 이유다. 씨간장도 쓰면 음식 맛이 달라진다. 국 끓일 때 1년짜리 청장(맑은 장)을 쓴다. 갈비 재울 때 장 한방울만 들어가도 맛이 달라진다. 용도에 따라 다른 장을 쓴다. 한식 인기엔 양식 요리사들의 공이 크다. 외국에서 (양식) 공부한 후 한식 배우러 돌아오는 요리사도 많다.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그런 친구들이 하는 한식이 있고, (내가 하는) 이런 한식도 있다. (외국에) 가지고 나갈 수 없는 한식이다. 다 같이 공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게 맞다.”
―한식의 인기를 이어가려면 필요한 것은?
“진정한 한식 학교가 없다. 요즘 ‘학교’란 이름 달고 돈벌이하려는 데가 많다. 사심 없이 만들어진 한식 교육의 장이 있으면 좋겠다. 정부가 제대로 키웠으면 한다. 보여주기식 말고, 정권 바뀌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연속성 있게 이어지는 (한식 교육) 정책이 나왔으면 한다.”
지금도 그는 고조리서를 연구자들과 함께 읽으며 한식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장 등 먹거리 모임이 꾸려진다는 소식이 들리면 달려간다. 한편, 숨어 있는 한식 고수들이 많다고도 했다. “대단하신 분들이죠. 그들께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한식에서 중요한 건 ‘손맛’이라고 한다. 그 손맛은 많이 먹어보고, 많이 요리해보고, 많이 맛 테스트를 해봐야 생긴다고 했다.
설음식으로 이금희 조리장이 마련한 ‘봉래헌 세찬’ 메뉴 중 하나인 밤갈비찜. 박미향 선임기자 |
이금희 조리장이 만든 봉래헌 음식. 박미향 선임기자 |
―이제 육십갑자 한바퀴 돌아 제자리로 온다는 환갑을 앞뒀다. 인생을 돌아보면 정녕 중요한 게 무엇이라 생각하나?
“변덕스럽지 않아야 한다. 진중함이 필요하다. 꾸준함이 역경을 이겨낸다. 자꾸 바꾸기만 하면 남는 게 없다. 뭔가를 배워야 할 시점에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꾸준하게 꾸준함을 가져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무 데서나 버티란 게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맡겨도 되겠다는 판단이 든 데에선 꾸준함을 유지하라는 소리다. 뭘 하나 정하면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도 좋다. 고비를 넘기면 다음 장이 온다.”
그는 최근 설음식 ‘봉래헌 세찬’(2월6일까지 판매)을 준비했다. ‘약선송이 밤갈비찜’, ‘해산물 숙회’, ‘봉래헌 다과반’(율란, 약과, 매작과, 금귤정과), 3색 나물(도라지, 고사리, 취나물), 참조기찜, 해물잡채 등이다. “보통 고기산적을 많이 하는데, 새우산적으로 바꿔봤다”고 했다. 3색 나물 중 매우 얇게 썰어 양념한 도라지나물은 그의 손맛 결정체다. 그 맛엔 따스한 한식 대가의 차분하고 조용한 풍모가 담겼다.
글·사진 박미향 선임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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