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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미국 vs 약한 달러' 트럼프 시대 달러 패권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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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훌륭하다고 본다. 지금 달러는 아주 잘 돌아가고 있다."

아이오와 유세장으로 향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약달러 발언은 달러 인덱스를 장중 1% 이상 떨어뜨리며 2022년 이후 최저치로 몰았다.

이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완화 기대와 관세 불확실성으로 달러화가 약세 압력을 받던 상황에 "약달러에 개의치 않는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신호가 추가 매도 버튼을 눌렀다는 데 월가 트레이더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사실 외환 시장 참가자들은 이런 장면에 익숙하다. 1기 집권 때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강한 달러는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약한(더 약한) 달러로 훨씬 더 많은 돈을 번다"고 공공연히 말해 왔다. 당시에도 그는 "강달러에선 미국 관광이 죽고, 트랙터도 트럭도 아무것도 못 판다"는 식으로 수출·제조업 타격을 강조했고, "약달러는 인플레이션엔 좋지 않지만, 그게 전부"라며 가격 안정보다 무역과 성장에 분명히 우선순위를 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달러 가치를 위아래, 요요처럼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최근 약세 흐름은 문제 삼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반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약달러에 우호적인 데는 두 가지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가장 직관적인 이유는 무역 경쟁력이다.

그는 정치적 브랜드 자체를 '제조업·블루칼라·수출'에 올인한 인물이다. 관세와 보조금, 리쇼어링으로 '강한 미국 제조업'을 만들겠다고 외치면서, 동시에 강달러가 미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잠식해 왔다는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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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달러와 강한 미국을 원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AI 일러스트=황숙혜 기자]


아이오와 발언 직후 로이터 인터뷰에 응한 한 외환스트래티지스트는 "이 행정부가 약달러를 선호해 왔다는 건 시장에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며 "대통령과 재무장관의 메시지가 사실상 달러 매도에 청신호를 준 셈"이라고 말했다. 수출과 관광, 제조업 일자리라는 국내 정치의 핵심 의제를 위해 일정 수준의 달러 약세는 오히려 반가운 카드라는 뜻이다.

두 번째 이유는 빚이다. 미 의회 합동경제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총 연방정부 부채는 2026년 1월 기준 38조 4,300억 달러를 넘어섰고, 1년 새 2조 2,500억 달러가 늘어났다. 하루 평균 80억달러 이상, 초당 9만달러씩 부채가 불어나는 속도다. 향후 10년간 순이자 비용만 13조 달러에 달할 것이란 의회예산국(CBO)의 전망도 나온다.

이처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채를 생각하면 명목 성장률이 실질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적당한 환율 약세 덕에 높게 유지되는 시나리오는 정치적으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실질 기준으로 부채 부담이 서서히 깎여 나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약달러 기조가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지위와 충돌할 수 있다는 데 있다. IMF와 여러 중앙은행의 데이터를 종합하면, 달러는 여전히 글로벌 외환보유액의 55% 안팎을 차지하는 압도적 1위 통화다. 유로와 엔, 위안화가 조금씩 점유율을 나눠 갖고 있지만, 채권시장 깊이, 결제 인프라, 법치·제도 신뢰를 고려하면 당장 달러를 대체할 만한 통화는 없다는 게 대체적인 결론이다. 달러 인덱스가 10% 정도 움직이는 환율 변동만으로 패권이 곧바로 무너질 성격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싱크탱크 OMFIF는 "트럼프의 무역·재정·외교 정책이 달러 패권을 떠받치는 여러 기둥을 동시에 약화시키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들은 보고서에서 "미국의 재정 궤적은 이미 지속 가능하지 않은데도 트럼프는 추가 감세를 추진하고 있다"며 "막대한 적자와 정치적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장기적으로 달러에 대한 신뢰를 조금씩 잠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무역 상대국과의 갈등, 동맹 경시, 제재 및 금융 제재의 남용은 달러 시스템의 정치적 중립성에 의문을 던진다. 여기에 대통령이 약달러를 사실상 지지하는 듯한 메시지를 덧붙이면 미국이 스스로 달러의 안전자산 프리미엄을 깎아먹고 있다는 비판이 커질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역설은 여기서 시작된다. 트럼프는 겉으론 기축통화 지위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측근 진영과 일부 경제 참모들은 달러 패권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OMFIF와 일부 학계 연구는 이를 '크립토 머컨틸리즘(중상주의)'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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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로 향하기 전 백악관 취재진 앞에서 발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핵심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달러가 너무 강해서 수출이 어려워지는 건 원치 않지만, 전 세계 결제와 자산운용, 디지털 자산 생태계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 키우고 싶다는 것이다. 예컨대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과 국경 간 디지털 결제를 적극 육성해 신흥국과 크립토 시장까지 달러권으로 편입시키겠다는 그림이다. 환율은 조금 더 약해지더라도 달러를 쓰는 영역 자체를 넓혀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접근이다.

이런 전략은 약달러와 달러 패권을 동시에 추구하는 역설적 조합을 만들어 낸다. 한편에서는 수출과 제조업, 부채 조정을 위해 약간의 달러 약세가 필요하다는 정치 논리가 작동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금융·결제·디지털 자산에서의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해 달러의 국제적 사용을 확대하겠다는 장기 구상이 겹친다.

월가와 글로벌 중앙은행 입장에선 혼란스러운 시그널이다. 로이터는 최근 "대통령의 무심한 발언이 달러 하락을 부추기면서도, 동시에 미국 채권·달러 자산에 요구되는 위험 프리미엄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AI 도구를 이용해 환율 데이터와 과거 발언, 정책 변수를 함께 분석해 보면 트럼프 시대의 달러는 두 개의 힘이 끌어당기는 중간지점에 서 있다는 그림이 또렷해진다.

하나는 미국 내부 정치가 원하는 '조금 더 약한 달러'다. 제조업과 농업, 관광, 재정·부채 부담을 생각하면, 강달러 집착에서 벗어나려는 유혹이 클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월가와 글로벌 자본이 요구하는 '안정된 기축통화'다. 안전자산과 준비통화로서의 신뢰가 조금만 흔들려도 미국 국채 금리와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함께 튀어오른다는 점을 투자자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결국 '강한 미국 vs 약한 달러'라는 슬로건은 트럼프 시대 달러 패권의 가장 큰 딜레마를 상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강한 군사력과 제조업, 높은 성장률을 '강한 미국'의 기준으로 삼는다. 반면 월가와 중앙은행들은 법치, 재정 건전성, 동맹과 제도의 예측 가능성을 기축통화의 토대로 본다.

AI 기반의 데이터 분석은 이 두 세계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기적으로 약달러는 미국 수출과 성장, 부채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한마디에 달러화가 4년 만의 최저치까지 미끄러지는 상황은 통화의 신뢰성에 흠집을 내기에 충분하다.

shhwa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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