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대한 관세율을 25%로 되돌리겠다고 공언하면서 대미 투자 압박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미국을 오가는 한국 고위직들이 현지 분위기를 제대로 알리는 게 맞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관세 협상 때부터 미국을 방문한 한국 관료들이 하나같이 희망 섞인 발언만 내놓고 있는데, 현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사, 국회의 정보통신망 개정안과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온플법)’ 입법 추진 등을 두고 미국에서 연일 강한 비판을 쏟고 있는데도 관료들은 “내가 설명하니 다들 이해했다”는 식의 무책임한 발언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 사이 현대차, 기아 등 애먼 관세 관련주들만 주식시장에서 요동치는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재협상 여지를 남긴 만큼 이제는 우리 정부가 미국의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사실을 알리면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하루 만에 “韓관세, 한국과 해결책 마련할 것”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 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아이오와주로 떠나기 전 취재진에게 한국 관세 인상 관련 질문을 받고 “한국과 함께 해결책을 마련할 것(We‘ll work something out with South Korea)”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세 인상 시점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에 대한 관세를 갑자기 현 15%에서 25%로 되돌리겠다고 말한 지 하루 만에 협상의 여지를 남긴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리고 “한국 국회가 우리의 역사적인 무역 협정을 입법으로 제정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나는 한국의 자동차·목재·의약품과 모든 상호 관세를 기존 15%에서 25%로 인상하기로 한다”고 알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와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7월 30일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되는 훌륭한 합의에 도달했고 같은 해 10월 29일 내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조건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그런데 한국 국회는 이를 아직 승인하지 않았고 미국과의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예고하지 않은 관세 인상 방침을 두고는 여러 해석이 나왔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위해 대미 투자 속도를 내라는 메시지, 미국 연방대법원 상호관세 판결 전 협상을 완료하겠다는 의지, 쿠팡 등 자국 기업에 대한 디지털 장벽 규제를 견제하겠다는 심리, 한국과 캐나다 간 경제 협력에 대한 불만 표시 등 각종 추정이 속출했다.
우리 정부도 그 속내를 제대로 알지 못해 하루종일 우왕좌왕했다. 정부는 방위 산업 협력 강화 논의를 위해 캐나다에 머물던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미국에 급파하기로 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을 만나 한국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백악관 관계자는 27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관련 입장을 묻는 연합뉴스의 질의에 “한국이 더 낮은 관세를 확보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와 합의에 도달했다는 게 단순한 현실”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인하했지만. 한국은 그 대가로 자기들이 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는 데 있어 아무런 진전도 이루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29일 경북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과 11월 13일 발표한 무역협정이 마치 ‘한국이 원해서 미국이 받아준’ 수혜 조치였다는 식의 발언이었다. 관세 인상 시점에 대해서는 백악관도 입을 닫았다.
WSJ “밴스, 쿠팡 불이익 경고하고 합의 파기와 관세 인상 암시”... 김 총리는 딴소리만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반응이 최근 미국을 오간 한국 고위직들이 소개한 분위기와는 180도 다르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 입장을 전하는 우리 정부의 설명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 소식통을 인용해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23일 김민석 국무총리와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만났을 때 “한국 정부가 쿠팡 등 미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warn)”고 보도했다. WSJ은 “밴스 부통령이 미국은 한국 정부가 쿠팡 같은 기술 기업에 대한 처우를 의미 있게 완화하길 원한다고 김 총리에게 말했다”며 “밴스 부통령이 김 총리에게 직접적 위협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미국 기술 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제재는 한미 무역 합의에 더 큰 어려움을 초래하고 잠재적으로 합의 파기, 관세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암시했다”고 전했다.
이는 김 총리가 23일 워싱턴DC 주미대사관에서 가진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소개한 회담 내용과는 온도차가 매우 큰 보도였다. 김 총리는 당시 “쿠팡 사태와 관련해 국민 상당수의 정보가 유출된 상황에서 해결을 지연시킨 문제, 최근 이 대통령과 총리를 향한 근거 없는 비난이 있었던 점을 설명했다”며 “밴스 부통령도 뭔가 법적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면서 이해를 표시했다”고 알렸다. 김 총리는 특히 “내가 마치 쿠팡을 향해 차별적인 강력 수사를 지시한 것처럼 인용한 부분 자체가 완전히 사실무근”이라며 “당시 발언록 전문을 공개했고 이를 반증한 보도자료를 영문으로 번역해 전달했다”고 강조했다. 쿠팡의 지분을 보유한 미국 투자사 그린옥스와 알티미터가 22일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보복 관세 등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이 대통령을 ‘친중’ 성향으로 몰고 자신의 ‘마피아 소탕’ 발언을 문제 삼은 부분에 대한 억울함을 주로 부각했다는 설명이었다.
총리실은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협정 파기를 예고한 27일에도 밴스 부통령이 관세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팔짝 뛰었다. WSJ 보도가 맞다면 밴스 부통령은 회담 자리에서 합의 파기와 관세 인상 가능성을 암시했는데, 김 총리가 이를 눈치를 못 챘거나 알아듣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김 총리는 “밴스 부통령이 한국에서 쿠팡이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되는지 궁금해했다”며 밴스 부통령이 쿠팡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는 설명도 하지 않았다. 김 총리는 오히려 “이재명 정부 들어 한미 양국의 정상 간 (관계가) 특정 기업이 로비로 흔들 수 있는 정도의 단계를 넘어섰고 훨씬 단단해졌다”며 “이번 회담으로 양국은 특정 기업이 존재하지 않는 차별을 호소해 진실을 왜곡할 정도로 허약한 기반 위에 있지 않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김 총리는 밴스 부통령과 만나기 전인 22일 방미 당일부터 연방하원 의원들을 잇따라 만난 바 있다. 그런데도 미국 연방하원 법사위원회의 공화당 측은 27일 X(옛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관세 인상 관련 트루스소셜 메시지를 공유하고 “이것은 쿠팡과 같은 미국 기업들을 부당하게 겨냥할 때 발생하는 일”이라고 적었다. 김 총리가 방미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 공화당 내에 존재하는 위기 신호를 느꼈을 법한데도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듣기 좋아할 말만 내놓은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의 국무총리가 단독으로 미국을 찾은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었다.
여한구 “미국이 이해했다”더니...美의회는 곧장 “적대 행위”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실제 분위기를 제대로 전하지 않은 것은 김 총리뿐이 아니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도 이달 11~15일 워싱턴DC를 찾아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 등 당국자와 연방 의원들, 미국 기업·협회 관계자들을 다양하게 만났다면서 실제 동향과 조금 다른 말을 했다. 그는 “디지털 규제 등이 불확실한 부분에서 위험 요인은 분명히 있다”면서도 “우리나라가 이를 추진하는 배경을 잘 설명했고, 미국 측도 이해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미국 하원 법사위 소속 대럴 아이사 공화당 의원은 여 본부장을 만난 직후인 12일 X에 글을 올리고 “미국 기술기업들에 대한 부당한 표적화와 쿠팡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불공정한 대우는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적대 행위에는 후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화당의 스콧 피츠제럴드 하원의원도 같은 날 X에서 “정치적 동기에 따른 마녀사냥에 기반해 쿠팡의 미국인 임원들을 기소하라고 요구한 한국 정부의 조치에 경악한다”고 질타했다. 공식 석상에서는 어디에서도 여 본부장이 말한 ‘미국이 이해하는 성과’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공화당의 하원 세입위원회 무역소위원회 에이드리언 스미스 위원장도 13일 무역소위 청문회에서 “한국은 미국 기업들을 명백하게 겨냥하는 입법 노력을 계속 추구하고 있다”며 “쿠팡에 대한 차별적인 규제 조치가 그 사례”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의 캐롤 밀러 하원의원은 “디지털 분야에서 자유로운 교역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한국에서 가장 뚜렷하다”며 “최근 두 명의 미국 경영인을 상대로 정치적 마녀사냥을 시작했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의 수전 델베네 하원의원도 “내 지역구인 워싱턴주에 있는 쿠팡 같은 기업을 통해 한국 규제 당국이 이미 무역 합의의 약속을 위반하고 있다고 듣고 있다”고 꼬집었다. 쿠팡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기술 사무소를 두고 있다.
여 본부장 방문 뒤 일어난 일은 미국의 쿠팡 사태 이해와 수습이 아니라 USTR에 대한 투자사들의 보복 청원이었다. 투자사들이 친중과 마피아 같은 자극적인 프레임을 들고 나오자 결국 김 총리까지 민주화 이후 첫 단독 방미를 감행해야 했다.
지난해 한미 협상 때도 돌아가며 쉬지 않고 김칫국...김정관 급파 뒤 발언도 신뢰 의문
이 같은 일은 지난해 한미 무역 협상 과정에서도 쉬지 않고 이어졌다.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해 8월 26일 “합의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협의가 잘됐다”는 말을 내놓아 두고두고 입방아에 올랐다. 같은 해 10월 15일에는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한국과 앞으로 열흘 안에 무역협상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을 내놓자,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16일 곧바로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해 “미국이 많은 양보를 할 것 같지 않느냐”면서 국민적 기대를 높였다. 그러더니 김 실장은 그날 베선트 장관과 앙숙 관계로 알려진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을 만난 뒤 “2시간 동안 충분히 얘기했다”는 말만 남긴 채 한국으로 돌아갔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10월 15일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하면서 외환 안전 장치와 관련해 “미국 측이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 같다”고 자신했다. 그러다가 16일에는 갑자기 “3500억 달러 투자를 어떻게 할지 그 계획에 따라 외환 안정성을 점검해야 한다”며 “실무 장관은 이해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부분에는 진짜 불확실성이 있다”고 물러섰다.
김 실장은 10월 19일 귀국길에서도 “방미 후 경주 APEC 정상회의 계기로 관세 협상 타결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재차 주장하더니 같은 달 22일 미국을 또 찾았다. 결국 한미 무역 협상은 그달 29일 한미 정상회담 직전까지 아무것도 타결하지 못할 ‘노딜’ 위기까지 갔다가 겨우 구두 합의로 끝났다.
김 실장은 29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 “팩트시트(설명 자료)는 1~3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또 다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흘렸다. 이후 온갖 소문 속에 11월 초를 넘기자 이번에는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11월 6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원만한 협의가 돼 있다”며 “이번 주를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같은 날인 6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우리가 미국 국무부에서 받은 전갈 내용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것”이라며 “곧 발표될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 놓고 정부는 바로 다음 날인 7일 팩트시트가 그 주에 나올 가능성이 없다고 인정했다. 실제 팩트시트가 발표된 시점은 한국 시간으로 일주일 뒤인 11월 14일이었다.
이는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하향식 결정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채, 대통령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은 인사들이 미국의 장관급이나 주변부 사람들 말을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인 결과였다. 정부 성과 홍보, 비판 방어, 지지율 사수에 지나치게 집착한 산물이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도 알력 관계에 있는 부처가 반대할 가능성, 대통령이 실무진 의견을 단번에 뒤집을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외교가에서는 김 장관과 러트닉 장관의 회동 뒤 한미 무역 합의가 새 국면을 맞을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경합주를 상대로, 한국에는 별 수익이 되지 않는, 다소 무리한 대미 투자를 요구할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주장이 맞든 틀리든, 정부 인사들이 국민들에게 양국 분위기를 최대한 솔직하게 털어놓고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라는 뜻이다. 김 장관이 또 다시 “분위기가 괜찮았고 미국이 우리 입장을 이해했다”는 주장만 할 경우, 설령 그게 맞는 말이라 하더라도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다. 한미 관계에 대한 정부 설명이 신뢰를 잃으면 타격을 입는 것은 외환·증시 등 금융시장뿐이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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