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지금 봐줄 전문의가 없습니다.”
최근 응급의학과 전문의 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파격적인 처우에도 불구하고 야간 당직 의사를 구하지 못한 병원들이 속출하며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
환자를 태운 구급차는 또다시 빗길을 뚫고 다른 병원을 찾아 떠난다. 환자가 길 위에서 생사를 오가는 사이, 병원은 ‘사람 구하기’ 전쟁을 치르고 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돈을 싸들고 기다려도 올 사람이 없어서다. 이것이 2026년 대한민국 응급의료의 민낯이다.
◆“월 5일 근무에 세후 2400만원”…파격 조건에도 지원자 ‘0’
직장인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한 달에 딱 5번만 출근하고 손에 쥐는 돈이 2400만원(세후). 연봉으로 환산하면 수억원에 달하고, 일당으로 치면 480만원 꼴이다. 부산의 한 종합병원이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모시기 위해 내건 조건이다. 하지만 이 파격적인 공고는 수개월째 ‘주인 없음’ 상태다.
병원 관계자는 “연봉을 계속 올려도 문의조차 뚝 끊긴 지 오래”라며 “돈으로 해결될 단계를 이미 넘어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의료 현장의 인력난은 ‘가뭄’을 넘어 ‘소멸’ 단계로 진입했다.
28일 대한응급의학회에 따르면 2026년도 응급의학과 전공의(레지던트) 지원자는 160명 정원에 고작 106명뿐이었다. 지원율 66%. 2022년과 2023년에 600명 선을 유지하던 지원자 수가 지난해 325명으로 반토막 나더니, 올해는 그마저도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더 충격적인 건 전문의가 된 후 병원에 남는 ‘전임의’ 지원 현황이다. 전국 57개 수련병원을 긴급 전수 조사한 결과, 84%에 달하는 48개 병원이 신규 전임의 지원자를 단 한 명도 받지 못했다. 사실상 응급실의 허리가 끊어진 셈이다.
◆2년 새 2배 폭증한 ‘응급실 뺑뺑이’…지방은 이미 ‘셧다운’
의사가 사라진 자리는 환자들의 절규로 채워지고 있다. 소방청과 보건복지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응급실이 환자를 받지 못해 구급차가 떠도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수용 곤란 고지)’ 건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2023년 5만8520건이던 수용 곤란 건수는 2024년 11만33건으로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폭증했다. 2025년에는 8월 기준으로 이미 8만건을 넘어서며 연말 기준 12만건을 훌쩍 넘긴 것으로 추산된다.
전국 응급실 상황판에 인력 부족을 알리는 ‘진료 제한’ 메시지가 1년 새 4만건을 넘어서면서, 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수용 가능한 병원을 찾아 떠도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연합뉴스 |
전국 응급실 상황판에 뜬 ‘진료 제한’ 메시지 중 4만건 이상이 장비나 병상이 아닌, 순수하게 ‘사람이 없어서’ 띄운 경고였다.
지방 의료계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부산 지역에서만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아예 없는 종합병원이 4곳이나 된다. 밤에 아프면 갈 곳이 없다는 공포가 현실이 된 것이다.
◆“돈보다 ‘안전’이 먼저”…사법 리스크 해결 없인 백약이 무효
현장의 전문의들은 “단순히 월급을 더 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응급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곧바로 소송과 법적 책임으로 이어지는 현실이 의사들을 응급실 밖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응급의학회 측은 “산부인과나 소아청소년과처럼 전임의 수련 보조수당을 확대하는 유인책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중증 응급진료에 대한 과감한 의료사고 면책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병원끼리 경쟁하는 구조가 아닌, 권역과 지역을 넘어 질환과 기능을 중심으로 뭉치는 ‘한국형 통합 응급의료체계’로의 판을 다시 짜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늘 밤도 전국의 응급실 전화기는 쉴 새 없이 울린다. 하지만 그 전화를 받아줄 의사는, 오늘도 없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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