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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잖은 윤석열, 내가 내란 전문”…만년에 더 노련했던 ‘민주화 거목’ 이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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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유튜브 ‘이티브이 세종’ 갈무리


젊은 시절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며 학생 운동에 투신했던 고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일흔 살 넘어 맞닥뜨린 12·3 내란에 또다시 거리로 나가 투지를 불태웠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일으킨 12·3 내란은 이 수석부의장 생애 세 번째 내란 사건이었다. 1952년생인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1년 일으킨 5·16 군사쿠데타, 전두환 신군부가 일으킨 12·12 군사반란과 5·17 내란을 모두 겪었다.



이 수석부의장은 서울대 사회학과 1학년생이었던 1972년 박 전 대통령의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전국적으로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인 충남 청양으로 내려갔지만 “나라가 이 모양인데 학생들이 데모도 하지 않느냐”는 부친의 질책을 듣고 바로 서울로 상경해 학생운동 동아리에 가입했다고 한다.



그는 1974년 유신정권에 반대하다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투옥돼 1년을 복역하고 출소했다. 전두환 정부 때인 1980년엔 김대중 전 대통령 등 민주화 인사들이 ‘내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신군부의 조작 사건에 휘말려 2년6개월간 복역하다 1982년 특별사면 됐다.



2024년 12월3일 현직 대통령에 의한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이 선포됐으나 그는 담담했다. 44년 만에 목도한 내란은 빈틈투성이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나와 “집사람이 계엄이 선포됐다고 잠을 깨웠다. 미친놈들 하고 그냥 또 잤다”, “시시하다”고 내란 당일 상황을 돌이켰다.



“시시한 계엄”이었지만, 엄연한 “내란”이었다. 윤 전 대통령이 극도로 위험한 인물이라는 생각도 확고했다. 계엄 이전부터 강력한 대여 투쟁을 주문했던 그는 계엄 직후 거리로 나가 “하루라도 빨리 끌어내야 한다”, “저렇게 무도한 놈은 정치하면서 처음 봤다”, “싸가지 없고 예의도 없다”며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그는 2024년 12월8일 세종시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저는 박정희 독재하고도 싸웠고, 전두환 독재하고도 싸웠는데 이 같잖지도 않은 놈하고 싸우려니까 재미가 없다. 정말 같잖지도 않다”며 포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내란은 제가 전문가다. 박정희 때도 내란 음모로 잡혀갔고, 전두환 때도 내란 음모로 잡혀갔는데, (윤석열이) 엉성하게 해서 사람들 기분 나쁘게 하고, 놀라게 했다”며 “토요일엔 반드시 (윤석열을) 탄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말대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토요일인 같은 달 14일 국회를 통과했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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