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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에서 시설로···갈 곳 없는 보육원 청년들의 ‘회전문 유랑’[어느 자해 청소년의 기록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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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양(당시 17세)은 2018년 7월 전북 익산의 B보육원에서 퇴소했다. 친부가 직접 A양을 키우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A양이 돌아간 집은 ‘거처’라고 부르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알코올 의존증 등 정신과적 문제를 겪고 있던 친부는 쓰레기를 가득 쌓아둔 채 살고 있었다. 친부는 어느 날 A양을 알아보지 못한 채 위협했다. 결국 집을 나온 A양은 그 뒤로 다른 시설과 쉼터, 지인의 집을 전전했다. 때로는 노숙을 해야 했다. 퇴소 후 6개월간 A양이 머문 시설만 4곳이었다.

B보육원은 최근 A양을 포함한 보육원 출신 청년들의 고발로 학대 혐의 수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학대가 일어난 시설을 벗어났다고 끝이 아니었다. 학대의 흔적을 안은 채로 청년들은 또 다른 시설과 쉼터를 전전해야 했다.

‘폭탄 돌리기’가 된 보호, 아이들은 떠돌았다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B보육원 출신 청년들은 시설을 떠난 뒤에도 안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유랑했다. 이 보육원에서 자란 C씨(25)는 성인이 된 뒤 자립해 조부모의 집으로 돌아갔지만 10년 넘게 떨어져 지낸 탓에 적응하지 못했다. 부친의 방임 속에서 C씨는 인지저하증을 겪는 할머니를 홀로 돌봐야 했다. C씨는 2년간 지인의 집 등을 전전하며 떠돌다 보호 종료 아동에게 주거 지원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는 보육원 교사에게 “집을 구해달라”,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동복지법 시행규칙(제16조의2)은 지방자치단체가 보호 종료로 가정에 복귀한 아동을 주기적으로 만나 필요한 관리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2025 아동보호서비스 업무 매뉴얼’ 역시 보호자의 성품이나 행실이 불량해 아동을 귀가시키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아동을 가정으로 보내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A양은 알코올 의존증을 겪던 친부의 집으로 가야했고, C씨는 도움을 요청했지만 2년간 방치됐다. 시설과 지자체가 법이 정한 사후 관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아동을 보호할 책임은 ‘폭탄 돌리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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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의 흔적, 아이들은 혼자 남겨졌다


시설에서의 생활은 상처가 돼 원생들을 고립시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북 익산시청과 B보육원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B보육원 소속 아동·청소년들은 가정에서 이미 학대를 겪은 경우가 많았다. 이들의 임상심리검사 결과지를 보면 이 보육원에서 자란 D양(당시 18세), E양(당시 18세) 등은 “스스로에 대한 부적절감”, “외로움과 실존적 공허”, “삶이 잘못되었다는 감각”, “무기력과 소외감” 등을 겪고 있었다. 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설에서 지내야 한다는 사실”(D양), “취약한 양육 환경과 시설 구조상 불안정한 상황”(E양)에서 비롯된 감정인 것으로 분석됐다.

학대가 반복되는 환경은 이들이 사회와 건강한 관계를 맺기 어렵도록 만들었다. B보육원 출신 청년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부 보육원 교사들은 원생들끼리 서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따돌림에 가담하도록 종용했다. 이 보육원에서 자란 F씨는 학대 피해자인 동시에 다른 시설에서 괴롭힘 가해자가 돼 소년원에 넘겨졌고, 이 전력으로 다른 보호시설에서 받아주지 않아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이동해야 했다. F씨는 보호 종료 후 자립한 후에도 자해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설에서의 학대와 통제 경험이 시설을 떠난 뒤에도 청년 스스로 고립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통제’가 아닌 ‘믿어주는 한 사람’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통제가 아닌 ‘관계 중심의 돌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B보육원에 대해 실시한 민관합동조사 결과에서 외부 전문가들은 “징벌 중심 지도 방식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보육원 교사들을 대상으로 아동의 인권과 긍정적인 양육을 위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B보육원 아동들에 대한 임상심리 결과에서도 “주변 인물의 지속적인 관심과 이해”, “무조건 긍정적인 존중을 경험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명시됐다.

다만 수십 명이 공동생활을 하는 시설 구조에서는 이러한 관계 형성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2016년 개정된 아동복지법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2019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역시 한국 정부에 시설 보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가정위탁, 친족 돌봄, 후견 위탁 등 일관된 주양육자와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보호 체계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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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의 보호 체계는 여전히 시설 중심에 머물러 있다. 2024년 말 기준 보호대상아동 1583명 가운데 30%(474명)는 여전히 가정이 아닌 양육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김선숙 한국교통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시설 아동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통제가 아니라 관계”라며 “여러 명을 관리하는 구조가 아니라, 아이가 믿을 수 있는 한 사람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미화 의원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시설에서의 삶을 당연시하는 체계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며 “시설을 떠난 아동들이 또 다른 시설과 병원을 전전하는 복지시스템의 실패와 아동 탈시설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시리즈 끝>

우혜림 기자 sa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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