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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아’ 파라오 아케나텐의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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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을 따라 만난 고대 이집트’ 上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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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문명탐사단이 아마르나 아텐 소신전 터를 둘러보고 있다. 아마르나 | 윤승민 기자


아케나텐(Akhenaten). ‘아텐에게 이로운 자.’ 기원전 14세기 중반 이집트를 지배한 파라오의 이름이다.

람세스나 투탕카멘, 클레오파트라처럼 한국에서 잘 알려진 파라오는 아니다. 가장 큰 피라미드를 세운 파라오인 쿠푸마저도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다. 한국인들이 한반도에서 군림한 모든 왕의 이름을 다 아는 것도 아니며, 이름을 안다고 그 업적을 모두 기억하는 것 또한 아니다. 수천년을 거쳐 간 고대 이집트 파라오 여럿 중 한 명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케나텐이 재위했던 기간의 흔적을 보면, 그는 쉽게 잊히지 않는 존재로 남는다. 수천년의 고대 이집트사 내내 계속된 다신교 문화에 균열을 일으켰고, 이전·이후 세대와는 전혀 다른 예술 양식이 보이는 유물을 남겼기 때문이다.

아케나텐은 누구이며, 그가 남긴 것들은 무엇일까. 이티원이 주최·주관하고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가 후원하는 ‘이집트 문명 탐사단’의 2026년 1차 기행은 나일강을 따라 그 해답을 찾는 여정이었다.

‘아케나텐을 찾아서’ 간 아마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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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손꼽히는 이집트 고고학자인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이 기획한 이집트 문명 탐사는 2020년 시작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됐다가 2023년 재개된 탐사는 더 많은 피라미드와 신전 등 고대 이집트의 황금기 유적을 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집트 북부의 수도 카이로와 그 광역권의 쿠푸 대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구 이집트 박물관, 문명박물관부터 남부의 아부심벨 대신전, 이름난 파라오가 여럿 묻힌 룩소르의 ‘왕들의 계곡’ 등 이집트를 대표하는 여러 유물과 유적을 만나왔다.

올해 1·2차 탐사를 포함해 10번째를 맞는 탐사는 매번 동선에 조금씩 변화를 줬다. 지난 2~13일 진행된 2026년 1차 탐사는 전과 달리 나일강 연안 육로 종단을 택했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영토 대부분이 사막인 이집트는 나일강 연안에 도시를 만들고 생활해왔다.

그간 북부의 카이로에서 중부의 룩소르나 남부의 아스완을 국내선 비행기로 오가는 일정이 전체 탐사 여정의 큰 축을 이뤘지만, 이번에는 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 비행편으로 이동한 뒤 여정의 최남단 아부심벨부터는 육로로 북상해 카이로로 돌아왔다. 아케나텐이 새 도읍지를 세웠던 아마르나에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1차 탐사의 주제는 ‘잊혀진 파라오, 아케나텐을 찾아서’였다. 탐사단이 아마르나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아마르나는 이집트를 찾는 세계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도 잘 들르지 않는 곳이다.

인류 최초의 유일신교


아케나텐은 기원전 1350년경 즉위한 파라오이다. 원래는 전임자이자 아버지였던 아멘호테프 3세의 뒤를 이어 아멘호테프 4세로 불렸다. 그러나 그는 고대 이집트에서 공고하던 다신교 체제를 부정하고 유일신 체제를 선포한다. 수도도 당시의 테베(현 룩소르)에서 ‘아케트-아텐’(Akhet-aten·아텐의 지평선), 지금의 아마르나로 옮긴다. 아케나텐의 재임 기간은 그래서 ‘아마르나 시대’로도 불린다. 천도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신교 체제에서 영향력이 컸던, 각 신을 모시는 신관의 힘에서 벗어나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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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아부심벨 대신전 벽의 부조. 고대 이집트의 전형적인 표현 양식으로 여러 신과 파라오를 표현하고 있다. 아부심벨 | 윤승민 기자


고대 이집트는 수천년간 거의 같은 상징을 공유했다. 기원전 3100년에 성립된 초기 왕조부터 로마가 이집트를 병합하고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서기 4세기에 이르는 오랜 시간의 유물과 유적을 통해 드러난다. ‘태양신’ 라와 ‘죽음과 부활의 신’ 오시리스, ‘모성과 아름다움의 여신’ 이시스, ‘무질서와 잔인함의 신’ 세트, ‘슬픔과 보호의 여신’ 네프티스, 오시리스의 아들이자 ‘왕권의 신’인 호루스와 그의 아내인 ‘결혼의 여신’ 하토르… 아케나텐의 선대 파라오인 핫셉수트의 장례 신전에 가도, 후대 파라오인 람세스 2세가 남긴 유적이나 로마 정복 직전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기(기원전 4세기)의 신전에 가도 이들은 비슷한 형태와 같은 상징으로 나타난다.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 암소 머리를 한 하토르, 신화 속 그들의 이야기와 신들을 경배하는 파라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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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아마르나에 위치한 귀족 메리나의 무덤 벽의 부조. 다른 시대와는 다른 ‘아마르나 시대’의 인체 묘사가 남아 있다. 아마르나 | 윤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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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아마르나에 위치한 귀족 메리나의 무덤 벽의 부조. 다른 시대와는 다른 ‘아마르나 시대’의 인체 묘사가 남아 있다. 아마르나 | 윤승민 기자


지난 9일 아마르나의 귀족 무덤 3곳과 왕족 무덤을 방문해서 본 차이는 뚜렷했다. 천장과 가까운 벽에는 하늘에서 땅을 향해 직선의 빛을 뿜는 태양이 빠지지 않았다. 그는 바로 아케나텐이 선택한 유일신, 아텐이었다. 이집트의 신들은 서로 다른 신끼리 비슷한 특성을 공유하기도 한다. 태양신 라가 하늘 높이 뜬 정오쯤의 태양을 뜻한다면, 동틀 무렵의 태양에 해당하는 신은 케프리, 해 질 녘 태양의 신은 아툼이다. 태양신으로는 아멘과 아텐 등도 존재한다. 다만 아텐은 태양신 라의 ‘특성 중 하나’ 정도로 여겨져왔다. 이집트인들에게 영향력이나 존재감이 큰 신은 아니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아케나텐은 아텐을 유일신으로 선포하고 자신의 이름을 아멘호테프(Amenhotep·아멘이 만족한다)에서 아케나텐으로 고친다. 아텐을 위시한 아케나텐의 유일신앙은 유대교보다 빠른, 인류 최초의 유일신교로 여겨진다.

전통을 벗어나서 ‘보다 현실적인 묘사’로


아마르나의 무덤에서 아텐만큼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파라오와 그 가족들이다. 아케나텐의 아내였던 왕비 네페르티티, 그 자녀들의 모습이 귀족과 왕가 무덤 내부의 벽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다른 파라오의 시대였다면 파라오와 이집트의 여러 신이 나타났을 자리다. 유일신 아텐과 백성을 잇는 매개체가 파라오와 그 가족이었다는 뜻이다. 다신교 체제에서 작지 않은 권력을 휘둘렀던 신관의 자리를 파라오가 대신한다는 것이다.

더욱 눈에 띄는 건 이전보다 현실적으로 묘사된 인물들이다. 벽에 그려진 인물들은 땅바닥에 바짝 엎드리거나 허리를 구부리고, 때로 황급히 걷는다. 다른 박물관에 있는 아마르나 시대의 유물에서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두 손을 번쩍 든 사람들도 보인다. 사람의 옆모습을 평면에 판화처럼 찍은 듯한 모습은 현대에 볼 수 있는 다른 유적·유물이나 미술품과 비교하면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수천년의 고대 이집트에서는 보이지 않던 인물상이 아마르나 시대에서만은 보여 생경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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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기자 이집트 대박물관(GEM)에서 전시 중인 아마르나 시대의 석조 블록. 기자 | 윤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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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기자 이집트 대박물관(GEM)에서 전시 중인 아마르나 시대의 석조 블록. 기자 | 윤승민 기자


지난해 11월 정식 개관한 카이로 인근 기자의 이집트 대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GEM)은 아케나텐 때의 석조 블록을 전시하며 이 시기의 남다른 표현 양식을 이렇게 설명한다. “신과 왕에 대한 전통적인 묘사가 궁궐과 왕족, 아텐의 아래에서 펼쳐지는 삶에 대한 현실적인 표현으로 바뀐다.”

눈을 사로잡는 아케나텐과 네페르티티


아마르나에 닿기 전, 탐사의 출발지인 카이로부터 아부심벨 신전, 아스완, 룩소르 등 주요 도시의 여러 무덤과 신전에서 보이는 여러 신과 파라오의 모습은 일률적이다. 이들은 대체로 모두 허리와 목을 꼿꼿이 세우고 있다. 파라오가 누구인지는 그들의 생김새가 아니라 ‘카르투시’라는 틀 안에 고대 문자로 적은 이름으로 알 수 있는 정도다. 고왕국 시대(기원전 27~22세기)와 신왕국 시대(기원전 16~11세기), 로마 제국의 영향권에 있었던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와 그 이후에도 표현 양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로마의 황제를 파라오로 묘사했을 만큼, 과거의 방식을 따르려는 고대 이집트의 원심력은 강력했다. 당시 무덤을 만드는 장인을 평가하는 척도는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전통에 부합하게’ 표현하느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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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룩소르 박물관에 전시된 아케나텐의 흉상. 룩소르 | 윤승민 기자


룩소르 박물관에서 본 아케나텐 석상의 모습은 그래서 더 깊이 각인됐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파라오의 상징과도 같은 두건인 메네스를 두르고 가짜 턱수염을 붙인 것 등 전통적인 표현 양식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파라오에 비해 유독 길쭉했던 얼굴은, 그리 크지 않은 룩소르 박물관의 다른 파라오 조각과만 비교해봐도 눈에 띄었다. 한동안 신전·무덤 벽의 등장인물이 어떤 신인지, 어떤 파라오인지만 골몰하다 보니 이집트에서 ‘다른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미처 상상하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이집트 박물관에 전시된 아케나텐 석상은 하반신까지 표현하고 있는데, 두툼한 배와 허벅지가 인상적이다. 그저 아케나텐의 생김새가 다른 파라오와 달랐기 때문에 표현이 바뀌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곽 소장은 “파라오가 남성과 여성성을 모두 표현했어야 하므로 이렇게 묘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신관이 하던 ‘신과의 조우’를 아케나텐이 ‘파라오와 가족’만 할 수 있는 것으로 한정했으니, 파라오의 조각에 수많은 남신과 여신의 특징을 담은 게 아니겠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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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 전시된 아케나텐 석상. 카이로 | 윤승민 기자


영국 런던 영국박물관의 로제타석,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덴데라 황도대와 함께 ‘이집트의 3대 반출 유물’로 꼽히는 독일 베를린 노이에스 박물관의 네페르티티 흉상도 아마르나 시대의 작품이다. 아케나텐의 재위 기간 왕비 네페르티티를 나타낸 이 흉상은 3000여년 전의 작품인데도 화려한 색감과 사실적인 묘사가 눈에 띈다. 왼쪽 눈의 눈동자가 찍히지 않은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신비감을 자아낸다.

다만 이 흉상은 1912년 독일이 아마르나에서 발견한 뒤 반출했고 여전히 독일에 남아 있다. 독일이 발굴 유물의 존재를 알린 뒤 이집트가 소장을 원하는 유물 절반을 정하면 그 나머지 절반을 가져가야 했지만, 독일은 흉상의 존재를 숨겨 자국으로 반출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최근까지도 꾸준히 네페르티티 흉상 반환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최신 시설인 GEM이 공식 개장한 이후로는 ‘이집트가 유물을 보존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유럽 쪽의 주장도 힘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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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노이에스 박물관에 전시된 네페르티티 흉상. 위키피디아


유적이 없어도 기억은 오래 남는다


다만 눈에 띄는 아마르나 시대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았다. 무덤을 찾은 뒤에 아텐 대신전을 비롯한 다른 아마르나의 유적은, 다른 도시의 신전만큼 큰 외벽이나 다양한 조각을 남겨두지 못했다. 귀족의 무덤 중에는 부조가 있어야 할 자리에 밑그림만 남은, 미완성의 흔적도 있었다.

아케나텐의 즉위 기간이 20년이 채 되지 않았던 데다, 그의 사망 후 고대 이집트는 빠른 속도로 과거로 회귀한다. 수도는 다시 테베로 돌아가고, 문을 닫았던 여러 신전이 다시 문을 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대 파라오들은 ‘아케나텐 지우기’, 일종의 ‘기록말살형’을 집행한다. 아마르나의 무덤에서 봤던 그 안에서의 아케나텐과 가족들의 얼굴은 지워져 있었다. 아비도스에 있는 후대 파라오 세티 1세 신전의 벽에는 그 이전 파라오 76명의 이름이 적힌 ‘아비도스 왕명록’이 존재하는데, 그곳에서도 아케나텐의 이름은 빠져 있다. 이집트 박물관에 전시 중인 한 목재 금박 관에는 얼굴과 이름이 파여 있는데 이것은 후대의 발굴과 연구를 거쳐 아케나텐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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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아마르나에 위치한 귀족 아흐메스의 무덤 벽에는 미처 완성되지 못한 채 윤곽선만 그려진 부조의 흔적(오른쪽)이 남아 있다. 아마르나 | 윤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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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 전시된 목재 금박 관. 아케나텐의 것으로 추정된다. 카이로 | 윤승민 기자


다른 이유도 있다. 아마르나에 꾸며진 ‘신도시’ 격의 수도 아케트-아텐은 빠른 속도로 지어졌다. 대체로 쓰인 재료는 진흙 벽돌이었다. 피라미드가 수천년의 세월을 지나오면서도 형태를 남길 수 있던 이유 중에는 이집트의 건조한 사막기후, 그리고 석회암 등 돌이 주재료라는 점이 있다. 진흙 벽돌은 돌보다는 쉽게 만들어지는만큼 자연의 강한 압력으로 생성되었을 돌보다는 오래 보존되기 어렵다. 곽 소장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돌의 질이 좋지 않아 무덤 등에서 부조를 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도 설명했다.

하지만 오랜 고대 이집트사의 이단아였던 아케나텐과 그가 연 ‘아마르나 시대’의 흔적은 거대함으로 압도하는 여러 피라미드만큼이나 깊게 각인됐다. 그가 왜 변화를 시도했는지는 그가 남긴 유물을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지만, 변화가 멈추지 않았다면 이집트는 어떤 역사를 남겼을지 상상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아케나텐의 아들은 재위 기간 큰 업적을 남기지 못했음에도 20세기부터 대중에 가장 잘 알려진 파라오가 됐다는 점이다. 업적이 크지 않았으니 고대에서부터 성행하던 무덤 도굴을 피했고, 그 덕에 화려한 유물을 오래 간직하다가 현대인들에게 선을 보이게 됐다. 그 파라오의 이름은 원래 투탕카텐(Tutankhaten·아텐의 살아 있는 형상)이었고, 후에 유일신 아텐의 이름을 아멘으로 바꿔 ‘투탕카멘’이 된다. (下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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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아마르나의 귀족 무덤 앞에서 바라 본 아마르나 전경. 아마르나 | 윤승민 기자


아마르나·카이로·룩소르(이집트) |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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