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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은 장례식장”…기술 폭주에 멈춰 선 디자인 교육 [AI가 삼킨 청년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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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앞당긴 전공 무용론…입시 단계부터 일자리 걱정에 디자인과 진학 주저
현장 속도 못 따라가는 낡은 커리큘럼, 유튜브보다 못한 수업에 학생들 각자도생
기술 숙련 넘어 기획 중심으로 교육 본질 바꿔야…대학 차원의 제도적 지원 절실
기술의 진보는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누군가에겐 생존을 위협하는 장벽이 됐습니다. 쿠키뉴스는 AI 혁신의 파고가 거세게 몰아치는 디자인·영상·개발 현장을 찾아 청년들이 마주한 냉혹한 현실을 기록했습니다.

AI가 사회 지형을 뒤흔드는 사이 각자도생으로 내몰린 청년들. 교육 현장의 괴리, 취업 기회의 소멸, 전문성의 붕괴까지. 기술 격변의 비용을 청년에게 전가하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 근본적인 대책을 묻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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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술의 발전이 디자인 산업을 흔들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대응책이 없어 학생과 교육 현장은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지난해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K-일러스트레이션페어 서울 2025’에서 한 부스 관계자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생성형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디자인 산업의 미래를 흔들고 있다. 이미지 생성과 그래픽 편집, 콘텐츠 제작 등 디자인 분야에서의 AI 활용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축소됐고 기업들도 비용·시간을 줄이기 위해 AI 도입을 적극 늘리고 있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청년들 역시 AI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과거에는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던 디자인 영역이 AI를 통해 빠르게 대체·보완되면서, 전공 경쟁력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전공 선택과 동시에 진로에 대한 불안이 뒤따르는 이유다.

“재능 없으면 진학 마라”…미술학원에 부는 냉풍

서울 소재 대학 디자인과 성모(21)씨는 입시생 시절부터 이미 달라진 공기를 체감했다. 성씨는 “학원 친구들과 디자인과 전망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수시로 주고받았다”며 “합격의 기쁨이나 실기 실력을 논하기보다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부터 걱정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입시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의 목소리도 뚜렷했다. 서울 노원구에서 7년째 입시 미술학원 강사로 활동 중인 이모(33)씨는 “몇 년 전에는 디자인과가 미술을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전공이었다”며 “최근에는 디자인과 지원을 망설이거나 중도에 디자인과 입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AI가 디자이너를 언제든 대체할 수 있다는 공포가 현장을 잠식한 탓이다. 이씨는 이제 제자들에게 무조건적인 진학을 권하지 않는다. 그는 “학원에서도 재능이 뚜렷한 경우가 아니라면 디자인과 진학을 적극 권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털어놓았다.

폭주하는 AI 산업, 멈춰 선 대학…학생들은 ‘각자도생’ 중

취업을 준비하는 단계에 접어들수록 불안은 더 커진다. 수도권 소재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정모(24)씨는 학과의 분위기를 ‘장례식장’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학교 커리큘럼이 AI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정씨는 “이미 업계에는 AI를 활용한 디자인 사례가 넘쳐나고 있다”며 “정작 학교에서는 여전히 디자인과 관련한 기초 이론만 배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실제 정씨가 재학 중인 학과도 AI 기술을 활용하는 전공 수업은 한 과목뿐이었다. 하지만 정씨는 이 수업 역시 AI 활용과 거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해당 수업도 단순한 AI 활용법과 기본 프롬프트 작성을 배우는 정도”라며 “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 배울 내용이 유튜브의 짧은 영상보다도 빈약하다는 게 학생들의 공통된 불만”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서울권 주요 10개 대학의 최근 5년간 디자인과 커리큘럼을 분석한 결과, AI 관련 전공이 새롭게 개설된 학교는 단 4개 학교였다. 이 중에서도 한 학교만 △AI 기술과 디자인의 결합 △AI 디자인 기술의 이해 △빅데이터·딥러닝을 활용한 디자인 설계 등 5개 전공을 추가했다. 3개 이하의 과목을 개설한 곳은 1곳, 1개 이하인 곳은 2곳에 그쳤다. 지난 5년간 커리큘럼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은 학교도 6곳에 달했다.

“AI 맞춤 수업 늘리고 싶지만”…대학 차원의 제도적 지원 시급

학생들의 체감과 달리, 대학 교육 현장은 AI 변화 속도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상도 소재 한 대학에서 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인 윤모 교수는 “학생들의 불만을 알고 있고, 학교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공감한다”면서도 “AI 관련 수업을 열어야 하지만, 솔직히 학생들이 나보다 AI를 더 능숙하게 다루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교수임에도 학생들보다 AI 활용 능력이 뒤처져 답답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는 “일부 학생들은 AI를 활용해 생각지도 못한 수준의 과제물을 제출한다”며 “도리어 학생들에게 AI 활용법을 배워야 할 상황이다. 학습 속도의 격차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 수도권 대학 디자인과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김모 교수는 AI 시대에 맞게 디자인 교육을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과거에는 포토샵 같은 ‘디자인 툴’ 숙련도 향상이 교육의 목적이었지만, AI의 등장으로 상황이 달라졌다”며 “디자인과의 존재 이유와 커리큘럼을 다시 점검하고 재구성할 시기”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제 대학의 역할은 학생들에게 디자인 툴을 능숙하게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데 있지 않다. AI를 활용해 무엇을 기획할지 방향을 잡아주는 게 핵심”이라며 “교수들도 이를 수업에 어떻게 녹여낼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다만 실제 교육 현장에 안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교육 과정 개편은 개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학과는 물론 대학 차원의 논의·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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