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향년 73세. 사진은 2019년 8월 16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낸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서울 시민청에서 열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10주기 추모 사진전 개막식에서 축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
25일 별세한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과거 박정희 유신체제에 맞선 민주화 투사이자 7선 국회의원,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민주개혁 진영의 대표적 정치인이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정부’에서 그는 언제나 전략·조정을 책임지며 정치 중심에 섰고, 4대에 걸친 대통령들과 ‘킹메이커’ ‘정치적 동지’ ‘정치적 후견인’ 등 깊은 관계를 맺으며 정치사에 큰 흔적을 남겼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이 수석부의장은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해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1974년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과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두번의 옥고를 치렀고, 1982년 성탄절 특사로 석방된 뒤에도 재야에서 활동을 이어가며 학생운동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이 수석부의장은 민주평통 아태지역 운영위원회 참석차 베트남 호찌민 출장 중이던 지난 23일 쓰러져 현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지 이틀만인 이날 오후 2시48분께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2025년 11월 열린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취임식에 참석한 이해찬 수석부의장 모습. 연합뉴스 |
재야의 활동가는 이후 약 40년의 시간을 제도권 내 민주개혁 정치 세력의 역사 한가운데 서 있었다. 이 수석부의장은 13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낙선한 뒤 평화민주당에 입당해 1988년 13대 총선에서 김종인(민정당), 김수한(통일민주당) 등 당시 거물급 정치인들을 꺾고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서 당선된 뒤 17대 총선까지 내리 5선을 했다. 19·20대 총선에서는 지역구를 세종시로 옮겨 두차례 더 당선되는 등 모두 7선 의원을 지냈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지난해 12월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식에서 손잡고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김대중 정부에선 46살의 나이로 초대 교육부 장관을 지냈으며, 2004년엔 52살 나이로 참여정부 두번째 국무총리가 됐다. 초대 교육부 장관 시절엔 야간 자율학습과 고교평준화, 학력고사 폐지 등 고강도 교육 개혁을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당시 학생들의 학력이 저하됐다는 비판이 나오며 ‘이해찬 세대’라는 용어도 생겼다. 노 전 대통령과 맞담배를 피울 정도로 가까운 측근이었던 그는 참여정부 시절 ‘실세 총리’로 불리며 국정 전반을 총괄하다가, 2006년 ‘3·1절 골프’가 도마에 오르며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2020년 민주당의 당대표를 맡을 때도 문 대통령과 깊은 신뢰 관계를 바탕에 둔 ‘실세 당대표’로 통했다.
2004년 6월 30일 국무총리에 임명된 고 이해찬 민주평통 부의장이 청와대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 수석부의장은 당시 민주당 대표직을 자신의 ‘마지막 소임’으로 여러차례 강조한 바 있다. 그 말대로 2020년 21대 총선을 압승으로 이끌며 민주당을 1987년 이후 가장 의석수가 많은 정당으로 거듭나게 했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는 당시 당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 김부겸 전 총리와 함께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며 총선 승리에 기여했다.
다만 ‘버럭해찬’이나 ‘호통 총리’란 별명이 붙을 만큼 거침없는 발언으로 때때로 정치권을 뒤흔들기도 했다. 2004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는 퇴보한다. 차떼기당 맞지 않느냐”며 야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인 게 대표적이다. 그는 당대표 시절인 2018년 “개혁정책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20년이 아니라 더 오랜 기간 (집권해서) 가야 한다”며 ‘민주당 20년 집권론’을 밝힌 바 있는데, 윤석열 정부 초기인 2022년 10월 이를 다시 꺼내들며 “5년 금방 간다”고 말해 ‘거대 여당의 오만’이라는 공격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8년 9월19일 이해찬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
이 수석부의장은 특히 당대표 시절, 당내 비주류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결정적 국면마다 보호막이자 조력자 역할을 자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2018년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통령이 검사 사칭, 친형 강제입원 의혹 등으로 기소돼 당 안팎에서 징계 요구에 직면하자, 당시 당대표였던 이 수석부의장은 “징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정치적 생존 길을 열어준 게 대표적이다. 2021년 20대 대선 민주당 경선 때도 이재명 후보 공개 지지를 선언하며 힘을 실었고, 이후 이른바 ‘이해찬계’ 의원들이 대거 이 대통령을 돕게 됐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고인과 이 대통령의) 가치와 철학이 일치했고, 서로 대화가 잘 통했다”며 “대통령의 진가를 비주류 시절부터 알아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후 지난해 10월 이 수석부의장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 임명했고 그것이 이 수석부의장의 마지막 임무였다.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활동시절 고 이해찬 민주평통 부의장. 사진은 1988년 3월 31일 제13대 총선에 출마한 관악구 이해찬 후보의 유세. 한겨레 자료사진 |
고한솔 고경주 신형철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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