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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부’ 이해찬 前총리 별세... DJ·盧·文·李 대통령과 각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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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출장 중 심정지
조선일보

이재명 대통령과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지난해 12월 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뉴스1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별세했다. 향년 74세. 이 전 총리는 베트남 출장 중이던 지난 23일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쓰러진 뒤 의식 불명 상태로 있다가 25일 오후 현지 병원에서 영면했다.

이 전 총리는 ‘1세대 운동권’ 출신으로 36세 때인 1988년 13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해 7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정부 출범에 큰 역할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대한민국은 오늘 민주주의 역사의 큰 스승을 잃었다”고 했다.

고인의 시신은 27일 항공편으로 국내로 운구된 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정부는 국가장(葬) 여부를 검토 중이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김정옥 여사와 딸 현주씨가 있다.

◇대통령 4명 뒤엔 그가… 민주당의 ‘킹메이커’

이해찬 전 총리는 지난 23일 베트남 호찌민 출장 중 호흡 곤란 증세를 보여 현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현지 의료진은 심근경색 진단을 내리고 ‘스텐트 삽입’ 시술 등 의료 조치를 했지만, 고인은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7선 의원 출신인 고인은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주요 공직을 두루 거친 여권의 대표 원로 정치인이다. 46세 때인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초대 교육부 장관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에선 국무총리를 지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2020년엔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내며 21대 총선에서 ‘180석 압승’을 이끌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멘토로 작년 10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 임명됐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유년 시절 서울로 이사했다. 서울 용산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섬유공학과에 입학했다가 자퇴한 뒤 사회학과로 재입학했다.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1년 가까이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인 1978년에는 서울대 인근에 책방 ‘광장서적’을 차렸는데, 이곳은 대표적 사회과학 서점으로 학생 운동권의 거점 역할을 했다. 출판사 ‘돌베개’도 설립했다.

그는 1980년 또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복역한 뒤 1988년 13대 총선에 나와 서울 관악을에서 당선됐다. 당시 민주정의당 김종인 후보를 단 5000여 표(4%포인트) 차이로 꺾고 국회에 입성했다. 36세로 13대 국회의원 가운데 최연소였다. 1988년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 땐 계엄군의 광주시민 살상과 관련한 사실을 예리하게 밝혀내며 ‘면도날’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서울 관악을에서 17대까지 내리 5선을 했다. 이후 지역구를 세종시로 옮겨 19·20대까지 7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불출마한 2008년 18대 총선을 제외하면 7번 출마해 7번 당선됐다.

김대중 정부의 교육부 장관 시절엔 ‘하나만 잘해도 대학을 갈 수 있다’며 특기·적성 중심 대입을 선보이고 대학 무시험 전형을 확대하겠다고 공언했다. 학생들은 정부 발표만 믿고 안이하게 수능을 대비했지만 첫 적용인 2002학년도 대입시험이 역대 최고 수준 난도를 기록하면서 대혼란이 벌어졌다. 학생들의 학력 수준은 이미 크게 저하됐고, 공교육이 무너지고 이에 대한 불신만 커졌다. 결과적으로 대치동 사교육 시장만 급속히 키워줬다. 이때 부정적 의미를 담은 이른바 ‘이해찬 세대’란 용어가 생겼다.

고인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국무총리에 발탁됐다. ‘책임 총리’ ‘실세 총리’ 등으로 불렸다. 이때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 설계를 주도하기도 했다.

2016년 총선 땐 민주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다. 당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친노, 친문이란 이유로 고인과 정청래 현 민주당 대표를 공천에서 배제했다. 고인은 불복해 무소속으로 세종에 출마했고 당선 후 복당했다. 고인은 직설적이고 완고한 성격으로 여러 차례 설화에 휩싸였다. 총리 시절엔 야당 의원들과 거센 설전을 벌여 ‘버럭 해찬’으로 불리기도 했다.

고인은 선거 전문가로 통했다. 고인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출신 대통령 4명과 모두 깊은 인연을 맺으며 ‘킹 메이커’로 불렸다. ‘민주당 20년 집권론’을 주장했는데, 야당에선 “민주당의 상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기지사 시절 고인과 더욱 가까워졌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2022년 대선은 물론 이후 정치적 고난을 겪을 때에도 고인에게 많이 의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 당선 후엔 부부 동반으로 식사도 하며 조언을 많이 구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2022년 고인의 회고록 출판 기념회에 참석해 “제가 가장 존경하는 어른”이라고 했다.

고인이 그간 민주당 내에서 친문, 친명계를 아우르는 역할을 해와 고인의 부재가 향후 여권의 권력 지형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전 총리는 큰 어른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그의 별세는 당내 세력 간 중재자의 부재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은 이날 고인의 별세 소식에 일제히 추념의 뜻을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고인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청와대 정무특별보좌관을 맡고 있는 민주당 6선 조정식 의원을 현지에 급파했다. 이해찬계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태년·이재정·김현·이해식·최민희 의원 등도 현지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고인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고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산증인이자 거목”이라며 “민주당은 그 뜻을 이어받아 민주주의를 더욱 단단히 지키겠다”고 했다. 정청래 대표는 고인의 빈소가 마련되는 대로 현장을 지키며 조문객을 직접 맞기로 했다. 국민의힘은 “재야에서 시작해 국정의 책임을 맡기까지의 (고인의) 길은 우리 정치사의 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권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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