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지명 약 한 달 만에 결국 낙마한 데는 “임명 이후를 봐야 한다”는 청와대의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각종 논란을 무릅쓰고 이 후보자의 장관 임명을 강행한다 하더라도 향후 각종 논란과 법적 리스크에 발목 잡혀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인사 검증 실패로 이재명 정부의 국정 동력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18년 만에 새로 간판을 내건 기획예산처도 출발부터 수장 공백이 장기화하며 후유증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25일 이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하며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홍익표 정무수석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후보자는 보수 정당에서 세 차례나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안타깝게도 국민주권 정부의 장관 후보자로서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청와대는 23일 진행된 이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한 국민 여론을 지켜보자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정리된 입장을 받은 후 이 후보자의 임명 여부를 논의할 계획이었지만 그 전에 이 대통령이 전격 지명 철회를 결정했다. 인사청문회에서도 후보자의 보좌진 갑질과 투기, 반포 아파트 부정 청약 등 각종 의혹 중 명확하게 해소된 부분이 없는 데다 장남의 연세대 입학을 둘러싼 ‘할아버지·아빠 찬스’ 의혹까지 새롭게 터져 나오자 더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임명을 강행할 경우 그 이후가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당분간 이 후보자에 대한 각종 의혹 규명과 수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전 부처와의 조율이 핵심인 ‘예산 컨트롤타워’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아파트 부정 청약 의혹은 이미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 사기 등 혐의로 고발돼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며 “나중에 재판까지 가게 되면 장관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느냐”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여야는 엇갈린 평가를 내놓았지만 지명 철회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는 공통된 반응이 나왔다. 민주당은 대체적으로 “대통령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반응과 함께 “통합과 탕평 인사는 계속돼야 한다”는 점을 부각했다. 박해철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대통령의 지명 철회 결정을 수용하고 앞으로 국민적 눈높이에 맞는 후보가 지명되도록 청와대와 함께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야당은 “당연한 결과”라며 대통령이 인사 검증 실패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야당 간사인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보수에서 넘어갔다고 자진 사퇴 기회도 안 주냐?”고 비꼬면서 “‘이재명 픽(PICK)’에 대한 검증 책임은 이재명에게 있다”고 썼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에게서 합당 제안을 받은 조국혁신당은 “이 대통령은 국민들의 의견에 맞는 철회를 선택했다”며 자진 사퇴를 하지 않은 이 후보자를 비판했다.
이 후보자 낙마로 새 후보자를 다시 물색해야 하는 만큼 기획예산처는 출발부터 동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강한 정책 드라이브가 요구되는 출범 초반에 수장 공백이 길어지면서 예산편성 지침, 재정전략회의 등 각종 실무적인 업무와 정책적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기획예산처는 이 후보자 지명 철회 이후 공지를 통해 “기획예산처 전 직원은 경제 대도약과 구조 개혁을 통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의 엄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민생 안정과 국정과제 실행에 차질이 없도록 본연의 업무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 번 낙마했으므로 (다음 후보자는) 도덕성 문제까지 다 (철저하게)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해야 한다”며 “최대한 빨리 찾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청와대는 통합 인사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재차 강조했다. 홍 수석은 “통합은 진영 논리를 넘는 변화와 함께 대통합의 결실로 맺어질 수 있다”며 “통합 인사를 통해 대통합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고자 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숙고와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희윤 기자 heeyoun@sedaily.com송종호 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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