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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원짜리 옷, 사자마자 단추 ‘뚝’···이런 게 ‘명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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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한 땀 한 땀’ 장인정신의 종말…이런 게 왜 명품?
소소(小騷)월드: 소소하게 소란스러웠던 세계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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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미우미우 데님 조끼의 금색 단추(빨간색 원)가 포장을 풀자마자 후두둑 떨어지는 모습. 위즈덤 케이 SNS 갈무리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 명품의 사전적 정의다. 비싼 만큼 내구성이 좋고, 그래서 오래 쓸 것이라는 기대가 따라온다. 그러나 이제 명품에 따라붙던 통념이 희미해지는 시대가 왔다. 수백만원대 옷의 단추는 사자마자 떨어지고, 천만원이 넘는 가방의 버튼은 열자마자 고장이 난다. 과연 해외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사전적 뜻 ‘명품’이라 부를 수 있을까.

명품 품질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 인플루언서 위즈덤 케이는 지난해 이탈리아 명품 미우미우에서 1만8000달러(약 2650만원)어치 옷을 구매해 후기 영상을 찍다가 말을 잇지 못했다. 데님 조끼의 금색 단추가 포장을 풀자마자 후두둑 떨어진 것. 조끼 제품은 국내 편집숍에서 3~400만원대에 팔리는 고가품이었다. 설상가상 함께 구매한 스웨터의 지퍼는 처음부터 고장 나 있었다. 사흘 뒤 옷을 교환했지만 다시 받은 조끼 단추도 바로 떨어져 버렸고, ‘언박싱’ 영상은 저품질 인증 영상이 돼 버렸다.

이런 경험담은 SNS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중국계 미국인 패션 크리에이터 그레이스 장은 7000달러(약 1030만원)짜리 샤넬 플랩백의 잠금 버튼이 고장 나고, 가죽 가장자리 코팅이 벗겨졌다는 후기 영상을 SNS에 공유했다. 레딧 등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새로 산 고가 브랜드 제품의 하자를 토로하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아예 해외 온라인 검색창에는 ‘샤넬 고장’과 관련해 가죽 박리, 잠금장치 불량, 마감 불량 같은 키워드가 따라붙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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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매장. 위키피디아


결함 논란은 명품이 오랫동안 내세워온 핵심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명품이 비싼 이유는 ‘장인정신’ 서사에 있다. 에르메스나 루이비통의 경우 가죽을 일일이 선별하고 숙성 과정을 거친 뒤 장인 한 명이 18~40시간에 걸려 재단, 바느질, 잠금장치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샤넬도 과거엔 트위드 직조, 자수·깃털 장식, 가죽 체인 조립 등 공정을 각 분야 공방이 나눠 맡았다. 장인의 노동을 임금으로 환산하면 고가의 가격을 수긍할 만했다. 유럽 숙련 가죽 장인의 시간당 인건비를 40~80유로(약 6만~12만원)로만 잡아도, 제작에 25시간이 걸리는 가방 한 개의 순수 노동비는 1000~2000유로(약 150만~300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고급 가죽 원자재, 소량 생산에 따른 공정 비용, 품질 검사와 애프터서비스 비용이 더해지는 구조다.

어쩌다 내로라하는 장인들이 만든 럭셔리 브랜드 제품 품질이 패스트 패션보다 못한 상태로 전락했을까. 전문가들은 그 배경을 명품 산업의 기업화와 주주 자본주의에서 찾는다. 고가 브랜드는 상장과 인수·합병을 거치며 분기마다 실적을 증명해야 하는 대기업이 됐고, 장인 중심의 느린 생산 방식은 더 이상 투자자 기대를 감당할 수 없다. 럭셔리 산업을 취재해 온 저널리스트 다나 토머스는 저서 <디럭스: 명품은 어떻게 빛을 잃었는가>에서 “이탈리아 공장에서 명품 가방과 일반 패션 브랜드 가방이 같은 생산라인에서 찍어내듯 만들어지고 있었다”면서 “제작 방식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로고와 가격표가 바뀌는 순간 ‘명품’이 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CNN도 “요즘 명품 브랜드 다수가 ‘이탈리아산’ 같은 전통 생산지 표기를 유지하면서도, 실제 부품 제작과 조립은 저임금 국가의 하청 공장으로 분산하고 있다”고 짚었다. 원가 절감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공정부터 시작됐다. 안감을 생략하거나, 밑단을 접어 박음질을 생략하고, 천연 가죽 대신 폴리에스터·아크릴 혼방 소재를 쓰는 식이다. 명품 품질 전문가 태너 레더스타인은 CNN에 “최근 명품 제품은 과거보다 제작 방식이 단순하고, 마감도 덜 장인적이며, 대량 생산에 맞춰 설계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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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홈페이지 갈무리


품질 논란에도 럭셔리 브랜드 제품 가격은 천정부지 치솟고 있다. 올 초 샤넬은 대표 모델 ‘클래식 맥시’ 핸드백 가격을 2033만원으로 올렸다. 1년 전 가격(1892만원)에서 약 7.4% 인상이다. 에르메스의 인기 가방 ‘피코탄’ 가격도 지난해 517만원에서 올 초 545만원으로 약 5.4% 상승했다. 롤렉스·IWC·위블로·태그호이어 같은 시계 브랜드들도 5~8%대 가격 상향 조정에 나섰다.

가격 인상은 일회성도 아니다. 팬데믹 이후 샤넬은 가방·의류·주얼리 전반에서 여러 차례 가격을 올리며 이른바 ‘초고가 전략’을 구사해 왔다. 결과는 역설적이다. 영국 브랜드파이낸스의 ‘2025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가치’ 보고서에서 샤넬의 브랜드 가치는 전년 대비 45% 급증한 379억달러로 집계돼 패션 부문 1위를 차지했다. 1위를 지켜오던 루이비통은 329억달러로 밀려났다. 가격을 가장 공격적으로 올린 브랜드가 도리어 ‘더 잘 나간’ 셈이다.

이 현상은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19세기 말 제시한 ‘과시적 소비’ 개념과 맞아떨어진다. 베블런은 일부 상품이 가격이 오를수록 오히려 더 잘 팔리는 이유를, 그 물건이 실용성보다 ‘지위를 드러내는 신호’로 소비되기 때문이라고 봤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도 상류층의 소비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계층과 타 계층을 구분 짓는 상징적 행위라고 분석했다. 결국 지금의 고가 브랜드 산업은 ‘오래 쓰는 물건’을 파는 산업이라기보다, ‘돈이 많아 보이는 상징’을 유통하는 산업에 가까워졌다. 이쯤 되면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럭셔리’의 사전적 의미는 호화로움, 사치품이다. 장인 정신을 잃은 럭셔리 브랜드는 명품이 아닌, 사치품으로 불러야 맞는 것이 아닐까.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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