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마이클은 음악가로 살고 싶었고, 시인으로 죽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의 그는 언제나 팝스타의 그림자와 함께해야 했다. 실패해서가 아니라, 너무 크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캡처] |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현대의 대중음악인은 예술가인가, 혹은 그저 이름난 광대에 불과한가. 이들의 대중적 영향력은 어떤 문화 장르보다 강력하며,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경우 막대한 부와 명예를 거머쥐지만, 클래식 음악가나 미술가, 문학 작가와 같은 이른바 ‘고급 문화인’만큼의 대우를 받지는 못한다. 예술을 만들지만, 이들의 작품은 항상 유통 가능해야 하고 소비가 활성화돼야 하며 트렌드에 반응하고 캐릭터화돼야 한다. ‘고급 문화’는 시장 논리로부터 비교적 독립된 포지션에 서 있으며 난이도와 진입 장벽이 높지만, 대중음악은 빠르게 소비되고 널리 퍼지며, 쉽게 접근 가능하고 또 가장 빠르게 폐기된다. 영향력은 압도적이지만 권위는 부여되지 않는다. 즉, 현대 대중음악인은 강력한 문화 생산자인 동시에 가장 천하게 취급되는 예술 노동자라는 모순적 위치에 서 있다. 자본과 예술 사이에서 태어난, 막강한 영향력을 선사하는 현대적 지식인. 그러나 누구도 이들을 지식인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규정되어야 마땅한가. 조건부 예술가? 브랜드화된 인격체? 조금 더 깊게 들어가보자.
“I was every little hungry schoolgirl‘s pride and joy
And I guess it was enough for me
Brand new clothes and a big fat place
But today, the way I play the game is not the same, no way”
(한때 난 굶주린 여학생들의 기쁨이자 자랑이었지
아마 당시 난 그걸로 만족했던 것 같아
비싼 옷을 샀고, 크고 근사한 집도 얻었어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런 사람이 아니야, 더 이상은, 결코 아니라고)
- 조지 마이클 ‘1990년의 자유’(Freedom! ‘90) 中 -
최고의 인기를 누린 남성 듀오 웸!(Wham!) 활동 시절의 조지 마이클은 대중이 팝스타에게 바라는 거의 모든 것을 갖춘, 대중문화의 피상적 정체성이 낳은 완벽한 산물이었다. 밝고 경쾌한 팝 사운드,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캐치한 멜로디, 무엇보다도 ‘잘생긴 남자’라는 시각적 조건. 하지만 문제는 이 이미지가 기획사의 일시적 전략을 넘어 대중에게 보여지는 그의 정체성 전체를 덮어버렸다는 점에 있다. 대중은 조지 마이클을 음악가로 듣기보다 소비 가능한 캐릭터로 먼저 받아들였고, 이는 대중들에게 오랫동안, 깊게 각인됐다. [게티이미지/Photo by Pete Still] |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밥 딜런과 ‘그냥 인기 많은(?) 아무개 씨’…경계와 차이는
고급예술이 성립하는 핵심 조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장 논리로부터의 독립성이고, 다른 하나는 난이도와 진입 장벽이다. 클래식 음악은 대중적 성공과 무관하게 제도권 안에서 평가되고 보존되며, 문학과 미술 역시 즉각적인 소비와 분리된 시간성을 전제로 한다. 작품은 시장에서 빠르게 회수되지 않아도 존속할 수 있으며, 이해되지 않아도 가치가 유예된다.
반면 대중음악은 처음부터 시장과 분리될 수 없는 구조 안에서 생산된다. 음반은 상품으로 유통되고, 곡은 스트리밍 지표와 차트 성적을 통해 실시간으로 평가된다. 작품은 발표되는 순간부터 소비 가능성과 확장성을 요구받고, 트렌드와의 호응 여부에 따라 생명력이 결정된다. 이 구조 안에서 음악가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산업 종사자가 되고, 창작은 자율적 행위라기보다 조건부 계약에 가깝게 작동한다.
다만 이 산업 안에도 예외가 발생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대중음악인, 밥 딜런(Bob Dylan)이다. 딜런의 노벨상 수상은 대중음악이 ‘수준 높은’ 예술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음을 제도권이 공식적으로 승인한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왜, 밥 딜런은 ‘예술가’로 호명되고 다수의 대중음악인은 여전히 ‘연예인’의 범주에 머무르는가.
이 차이는 비단 음악적 완성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라디오헤드(Radiohead) 등의 이름들 역시 대중음악의 카테고리에 속해있지만 이들을 연예인으로 분류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들은 음악 산업 안에서 움직였지만 사회적으로는 ‘음악가’ 혹은 ‘예술사적 인물’로 인식된다. 반면 비욘세(Beyonce)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는 동시대 대중음악인 중 최고의 성공과 성취를 이뤘음에도 여전히 ‘팝스타’라는 프레임 안에서 호명된다. 그리고 이 구분은 실력의 문제가 아닌, 정체성의 문제에 가깝다.
결정적인 기준은 ‘예술의 자율성’이다. 밥 딜런, 레드 제플린, 라디오헤드는 커리어의 결정적 순간마다 시장의 요구가 아닌 작품의 방향을 먼저 선택해왔다. 밥 딜런은 포크 음악의 아이콘이던 시절 대중의 기대를 배반(?)하고 일렉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랐고, 레드 제플린은 개별곡의 히트보단 앨범 단위의 완성도와 구조에 집중했다. 라디오헤드는 ‘오케이 컴퓨터’(OK Computer) 이후 더욱 실험적이고 난해한 방향으로 나아갔고, 에릭 클랩튼은 블루스의 상업성이 떨어지는 시기에도 블루스에 자신의 음악 인생을 걸었다. 이들은 시장을 활용했지만, 시장에 복무하지 않았다.
반면 비욘세나 테일러 스위프트는 다른 방식으로 커리어를 설계하고 운용해왔다. 이들은 트렌드를 읽고, 플랫폼을 설계하며, 대중의 감정선을 계산하고, 시대의 담론을 음악과 퍼포먼스 안에 흡수한다. 그 결과 이들의 음악은 단일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에라’(Era) 혹은 서사로 확장된다. 이는 우열의 문제가 아닌 직업 정체성의 차이다.
‘음악가’와 ‘팝스타’의 차이는 음악을 대하는 사회의 감각에서도 드러난다. 밥 딜런이 늙고 사라진다 한들 그가 쌓은 음악은 영속적으로 살아 있을 것처럼 느껴지며 레드 제플린은 이미 ‘록 장르 음악의 신화’ 영역에 속해 있다. 반면 비욘세와 테일러 스위프트는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시대성과 강하게 동기화되어 있으며, 그만큼 현재형으로 소비된다. 전자가 예술사의 문맥에서 기억된다면, 후자는 대중문화사의 좌표로 기록된다.
문제는 사회가 이 차이를 이해하기보다, 어떤 것은 예술로 승인하고 다른 하나는 연예로 환원해버린다는 데 있다. 이 구조 속에서 대중음악인은 예술가이자 연예인, 창작자이자 산업 종사자라는 이중의 정체성을 동시에 요구받는다. 그리고 이 요구가 가장 가혹하게 작동한 지점에서, 어떤 음악가의 삶에는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균열까지 발생한다.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은 바로 이 모순 속에서 일생을 고뇌하고 괴로워한 ‘음악가’다.
“I think it‘s time I stopped the show
There’s something deep inside of me
There‘s someone I forgot to be”
(이제 ‘쇼’를 멈춰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다른 것이 있어
내 안에는 내가 잊고 살았던 내가 있어)
- 조지 마이클, ‘1990년의 자유’ 中 -
조지 마이클의 비극은 재능의 부족이 아닌, 재능이 너무 일찍 소비되었다는 데서 시작됐다. 그는 음악적으로 성장하기 이전에 먼저 ‘섹시하고 매력적인 남성 팝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고, 작곡가로 평가받기 전에 수려한 외모로 대중에게 인식됐다. 그의 커리어 초반을 규정한 것은 음악의 방향이 아닌 이미지의 고정이었다. [게티이미지/Photo by Michael Putland] |
너무 일찍 팝스타가 된 예술가…조지 마이클이 ‘음악가’가 아닌 ‘아이콘’이 된 이유는
조지 마이클의 비극은 재능의 부족이 아닌, 재능이 너무 일찍 소비되었다는 데서 시작됐다. 그는 음악적으로 성장하기 이전에 먼저 ‘섹시하고 매력적인 남성 팝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고, 작곡가로 평가받기 전에 수려한 외모로 대중에게 인식됐다. 그의 커리어 초반을 규정한 것은 음악의 방향이 아닌 이미지의 고정이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린 남성 듀오 웸!(Wham!) 활동 시절의 조지 마이클은 대중이 팝스타에게 바라는 거의 모든 것을 갖춘, 대중문화의 피상적 정체성이 낳은 완벽한 산물이었다. 밝고 경쾌한 팝 사운드,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캐치한 멜로디, 무엇보다도 ‘잘생긴 남자’라는 시각적 조건. 하지만 문제는 이 이미지가 기획사의 일시적 전략을 넘어 대중에게 보여지는 그의 정체성 전체를 덮어버렸다는 점에 있다. 대중은 조지 마이클을 음악가로 듣기보다 소비 가능한 캐릭터로 먼저 받아들였고, 이는 대중들에게 오랫동안, 깊게 각인됐다.
조지 마이클은 특히 솔로 데뷔 앨범 ‘신념’(Faith)의 완벽한 상업적 성공으로 시대의 섹스 심볼로까지 전환된다. 앨범의 성공은 그의 이미지가 음악을 압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고, 그를 상징했던 가죽 재킷, 노출된 몸, 도발적인 제스처는 음악의 일부라기보다 음악을 대신하는, 일종의 기호처럼 작동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작곡 능력과 보컬 테크닉, 장르 감각은 평가 대상이기보다 배경으로 밀려났다. 조지 마이클은 하나의 상품이었고, 산업이 요구하는 정체성을 충실히 수행하는 아이콘이었다. 음악은 그의 내면을 드러내는 언어라기보다 이미지 소비를 정당화하는 콘텐츠로 기능했다. 조지 마이클의 얼굴은 곧 브랜드였고, 그 브랜드는 시장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관리됐다.
그러나 이 구조는 필연적으로 균열을 낳을 수 밖에 없었는데, 아이콘으로서의 조지 마이클 이면에서, 그는 곡을 쓰는 작곡가이자 사운드를 조율하는 프로듀서였고, 소울과 알앤비(R&B) 전통을 깊게 이해하고 있는 음악가였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스스로 설계했고, 곡의 방향과 사운드에 강한 통제력을 행사했다. 그럼에도 사회는 그를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닌, ‘보여지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이 과정에서 조지 마이클이 겪었던 딜레마는, 그가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충분히 드러냈음에도 이전에 그의 이미지가 너무 ‘완벽한 팝스타’의 형태로 소비됐다는 데 있었다. 그는 음악가로 성장할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채 아이콘으로 고정됐고 그 고정된 정체성은 이후 조지 마이클의 모든 시도를 왜곡된 시선 속에 가뒀다.
이때부터, 조지 마이클의 커리어는 하나의 또렷한 목적성을 가지게 된다.
‘어떻게 해야 음악가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Cause God’s stopped keeping score
I guess somewhere along the way
He must have let us all out to play
Turned His back and all God‘s children
Crept out the back door”
(신은 더 이상 인간을 상대로 점수를 매기지 않아
아마도 그는 때가 되면 우리를 포기해버릴지도 몰라
그는 등을 돌렸고, 그의 모든 자손들은
살금살금 그를 떠나 빠져나가버렸거든)
- 조지 마이클, ‘시대를 위한 기도’(Praying for Time) 中 -
조지 마이클은 스스로 연기해온 캐릭터를 멈추고 자기 자신이 택한 정체성으로 우뚝 서겠다는 선택을 그의 음악적 방향의 전제로 하며, 이같은 선언은 그의 솔로 앨범 중 하나인 ‘편견 없이 듣는 음악, 첫 번째’(Listen Without Prejudice Vol.1)와 직결된다. 조지 마이클은 제목 그대로 자신의 음악이 이미지나 외모, 만들어진 서사 없이 오직 ‘듣는 행위’로 평가받기를 원했다. [게티이미지/Photo by Michael Putland] |
“더 이상 ‘쇼’는 그만”…음악가를 꿈꿨던 팝스타의 ‘정체성 선언문’
‘1990년의 자유’는 조지 마이클의 대표곡이기 이전에 그의 커리어 전체를 관통하는 일종의 선언문에 가깝다. 이 곡에서 그는 사랑이나 욕망 따위의 그림자를 지우고 자신에게 씌워진 정체성과 그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노래한다.
특히 곡의 뮤직비디오는 그 선언을 가장 노골적으로 시각화하는데, 영상이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조지 마이클의 얼굴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를 상징하던 가죽 재킷과 주크박스가 불태워진다. 얼굴은 삭제되고, 아이콘은 해체된다. 이는 은둔이나 도피를 암시하는 것이 아닌, ‘보여지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스스로 거부하는 행위의 상징에 가까운 것으로, 조지 마이클은 곡을 통해 더 이상 이미지로 소비되는 인물이 아닌 음악으로 존재하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다.
가사 역시 방향을 같이 한다. “더 이상 쇼는 그만해야 할 것 같아”(I think it‘s time I stopped the show)라는 구절의 ‘쇼’는 대중이 기대하는 자신의 역할 전체를 가리킨다. 그는 스스로 연기해온 캐릭터를 멈추고 자기 자신이 택한 정체성으로 우뚝 서겠다는 선택을 그의 음악적 방향의 전제로 하며, 이같은 선언은 곡이 담긴 앨범 타이틀 ‘편견 없이 듣는 음악, 첫 번째’(Listen Without Prejudice Vol.1)와도 직결된다. 조지 마이클은 제목 그대로 자신의 음악이 이미지나 외모, 만들어진 서사 없이 오직 ‘듣는 행위’로 평가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는 팝 음악 산업의 문법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선택이었다. 조지 마이클은 아티스트로 존재하길 원했지만, 시장은 여전히 조지 마이클이 아이콘으로 남길 원했다. 조지 마이클은 뮤직 비디오 출연 거부와 동시에 방송 활동 역시 의도적으로 최소화했지만 시장은 여전히 ‘조지 마이클이라는 얼굴’을 중심으로 작동하며 음악보다 인물을 요구했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 그의 소속사인 소니뮤직과의 법적 분쟁으로까지 이어졌고, 음악의 자율성을 지키려는 그의 시도는 좌절됐다. 시장과 조지 마이클은 끝내 같은 방향을 향하지 못했다.
결국 ‘1990년의 자유’는 그에게 완전한 해방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아이콘을 불태웠지만 아이콘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고, 더 이상 스스로를 연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나 대중은 여전히 그가 연기하던 모습을 기억했다. 음악은 분명 예전보다 깊어졌고 그의 내면은 더 정직하게 드러났지만 세상은 그 변화를 따라오고 수용하기를 거부했다.
이 지점에서 조지 마이클은 팝스타로서의 성공을 거부한 음악가가 아닌, 예술가로 존재하기를 선택했음에도 팝스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로 남는다. 이 불완전한 상태, 그 미완의 자유가 그의 커리어를 관통하는 씁쓸한 잔향이다.
1992년 퀸(Queen)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추모 콘서트에서 그가 부른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 영상은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전설적인 라이브로 남아 있다. 기술적으로도 훌륭하고, 곡이 요구하는 감정의 깊이와 무게를 감당해내는 목소리. 그날 무대에서 조지 마이클은 팝스타도 아이콘도 아닌 한 명의 보컬리스트이자 음악가로 서 있었다. [게티이미지/Photo by Mirrorpix] |
그럼에도 조지 마이클이 끝내 ‘음악가’였다는 사실은, 무대 위에서 가장 선명하게 증명된다. 1992년 퀸(Queen)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추모 콘서트에서 그가 부른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 영상은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전설적인 라이브로 남아 있다. 기술적으로도 훌륭하고, 곡이 요구하는 감정의 깊이와 무게를 감당해내는 목소리. 그날 무대에서 조지 마이클은 팝스타도 아이콘도 아닌 한 명의 보컬리스트이자 음악가로 서 있었다.
이외에도 ‘시대를 위한 기도’에서 그는 연애나 사랑싸움이 아닌 세계의 균열을 노래했고, 그의 후기 앨범 ‘늙어간다는 것’(Older)에 이르러서는 고독과 상실, 나이듦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조지 마이클은 더 이상 시대의 욕망을 연출하지 않았다. 음악은 깊어지고, 이미지는 흐려졌다.
그러나 음악가로서의 성숙이 삶의 평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말년의 조지 마이클은 오랜 우울증과 약물 문제, 반복되는 고립 속에서 점점 쇠약해져 갔고, 2014년 그의 마지막 앨범이자 라이브 앨범인 ‘심포니카’(Symphonica)를 발매한 지 2년 뒤인 12월25일, 크리스마스, 조지 마이클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Last Christmas, I gave you my heart”
(지난 크리스마스 날, 난 너에게 내 마음 전부를 주었어)
- 웸!, ‘라스트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 中 -
조지 마이클의 삶과 음악은 개인의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대중음악인이 어떤 조건 아래에서 존재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끝내 허락하지 않는지를 묻는다. [게티이미지/Photo by Kevin Winter] |
조지 마이클은 음악가로 살고 싶었고, 시인으로 죽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의 그는 언제나 팝스타의 그림자와 함께해야 했다. 실패해서가 아니라, 너무 크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삶과 음악은 개인의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대중음악인이 어떤 조건 아래에서 존재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끝내 허락하지 않는지를 묻는다.
현대의 대중음악인은 어떻게 규정되어야 마땅한가.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