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방에 더 많은 것들을 채울수록 나를 위한 공간은 좁아진다. 그림 모유진 |
나는 종종 사람들이 저마다 마음의 방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한다. 어떤 이들은 감정과 기억이 차곡차곡 정리된 방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손님을 맞이할 방까지 마련해두기도 한다. 그런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내 마음도 자연스럽게 쉼을 얻는다. 반대로 온갖 물건과 걱정으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는 방을 가진 이를 만나면, 내 마음도 덩달아 분주해진다. 때로는 함께 그 마음속을 정리해주거나 오래 묵은 감정 쓰레기를 함께 버려주기도 한다. 누군가의 고민을 듣고 마음을 치워주다 보면 대리만족이 들기도 하고, 괜히 뿌듯해진다. 한결 편안해진 마음 공간에서 쉼을 얻을 그 사람이 기대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기쁜 일이라고 해도 너무 자주 다른 이들의 방을 찾아가다 보면 내 마음을 지킬 시간이 사라진다. 내 방 앞에 찾아온 우편물을 뜯어 정리하며, 생활의 흔적들을 치우고 정리하는 시간이 먼저 필요하다.
최근 음원 녹음을 위해 미국에 다녀왔다. 감사하게도 2주의 일정 중 절반은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에 사는 친구의 부모님 집에서 머물렀다. 따뜻하게 환대해주시는 걸음을 따라 다다른 곳은 머무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손님방이었다. 포근하고 깨끗한 이불과 화분,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있는 사랑스러운 방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한국에 돌아가기 싫을 정도로 행복했다. 단지 나를 위해 준비된 공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집에는 각자의 마음을 돌보는 리듬이 있었다. 친구의 부모님은 매일 아침 자신만의 공간에서 묵상과 기도를 하고, 마당에서 자란 오렌지를 따 주스를 만들며 하루를 시작했다. 과일과 요구르트를 먹으며 나눈 대화는 거창하지 않았지만, 서두름이 없었고, 쏟아내는 말들도 없었다. 그들의 집은 꼭 그들의 마음 같았다. 정돈되어 있었고, 누군가가 머무를 수 있는 여백이 있었다. 애써서 환대하는 것이 아닌, 함께 있어도 괜찮다는 안정감이 먼저 있었다.
나는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일에는 늘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내 리듬이 깨지거나, 혹은 지키기 위해 설명해야 할 것이 많아질까 봐 겁이 났다. 그런데 그 집에서 지내는 동안 오히려 혼자 살 때보다 더 건강하게 지냈다. 스마트폰을 붙들고 흘려보내는 시간이 거의 사라졌고,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는 시간이 늘어났다. 종종 사람들은 공부하려고 책상 앞에 앉아, 눈에 보이는 주변 것들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보낸다는 경험담에 공감한다. 집중하기 위해 쌓여 있는 것들을 걷어내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정된 공간과 사람들 속에 머무르자, 내 외로움과 걱정들이 비워졌고, 마음에 집중할 힘이 생겼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수습하느라 늘 바빴었다는 것을.
성장할 수 있는 용기 l 조벽·최성애 지음, 해냄(2022) |
미국으로 가는 가방 속에 나는 ‘성장할 수 있는 용기’(해냄, 2022) 책 한권을 넣어 갔다. 마음은 남에게 나누어 주고 베풀어도 계속 남아 있고, 오히려 퍼줄수록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저자의 에필로그가 마음에 쏙 담겼기 때문이다. 저자는 몸을 건강히 하는 ‘웰빙’, 마음을 환기하는 ‘힐링’, 자신의 가치관과 방향성을 챙기는 ‘빌리빙’을 넘어 ‘기빙’(giving)까지 도달해야 진정한 행복을 만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기브(Give)는 주고받는 것, 즉 관계를 염두에 둔 개념이다. 즉, 몸과 마음, 정신, 관계가 건강해야 행복한 삶이 가능해진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검증된 통계 및 사실들을 전달하면서도 가볍게 풀어내는 저자의 유머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행복을 찾기 위해 하는 선택 중 ‘가짜 행복’과 ‘감정에 덧칠’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선, 세로토닌의 95%가 장에서 분비되기 때문에 폭식을 통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실제로 잠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연인과의 데이트에서 대부분 맛집을 가며 행복감을 느끼는데, 그 감정이 데이트 상대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착각해 결혼한다면 후회할 수 있다는 농담도 함께 건넨다. 또한 스트레스 관리하는 기술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는 “젊었을 때 익혔더라면 지금처럼 제 머리가 많이 빠지지 않았을 거란 아쉬움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완전한 대머리가 되기 전에 알아차리게 되어 다행이고 감사합니다”라는 솔직하고 당당한 고백 앞에서 나는 여러번 웃음을 터뜨렸다.
그 뒤를 잇는 저자의 이야기들은 마치 앞마당에서 오렌지를 따 음료를 내어 주던 친구의 부모님을 떠올리게 했다. 무언가 가르치려 애쓰기보다, 이미 익숙한 삶의 장면으로 나를 초대하는 느낌이었다. 구글에는 20:80 법칙이 있다. 직원이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 중 80퍼센트는 해야 하는 일에 쏟고, 나머지 20퍼센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끔 여유를 허락한다. 창의력은 바로 이러한 여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시야가 좁아진다. 문제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문제만 보일 뿐, 정작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하는 역설에 빠지기 쉽다. 창의력이란 긍정적인 정서를 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발현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 중에 부력의 원리를 깨닫고,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에서 쉬다 중력의 법칙을 떠올린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종종 행복해지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마음속 방 안으로 들여놓는다. 예쁜 옷이나 인테리어 소품, 정리를 위한 각종 수납함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뿐 아니라, 성장을 위한 지식과 안정을 위한 정보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도 닥치는 대로 모아둔다. 그러나 발 디딜 틈 없이 채워진 방에서는 결국 쉼도, 사유도 가능하지 않다. 추천사에서 말하듯, 행복한 삶에 필요한 것은 아파트 한채나 외제 차 한대가 아니라 이 책에 깃든 지혜에 가깝다. 마음속 물건들에 둘러싸여 지쳐 있는 이들이라면, 인생의 매뉴얼처럼 이 책을 천천히 펼쳐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싱어송라이터 모유진
모유진 싱어송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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