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도구를 이용해 투자은행(IB) 보고서와 외신 보도를 분석한 결과 '셀 아메리카'가 지구촌 자산시장에 생각보다 강력하고 광범위한 테마를 형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금값이 연일 고점을 높이며 온스당 5000달러에 바짝 근접한 가운데 브라질 헤알화와 칠레 페소 등 신흥국 통화가 연초 이후 3% 이상 뛰었다.
신흥국 통화 이외 자산시장에도 자금이 홍수를 이루는 모습이다. 아이셰어 코어 MSCI 이머징마켓 상장지수펀드(ETF)에 연초 이후 약 60억달러가 밀려들었다.
금은 전통적으로 위기 때 뛰고, 신흥국 통화는 위험 선호가 살아날 때 오른다는 것이 교과서적 상식이지만 2026년 초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 두 자산이 동시에 가팔라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달러 약세와 미·유럽 갈등, 그리고 디달러라이제이션(탈달러화) 흐름 속에서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달러 대신 금을 사들이고, 글로벌 자금은 다시 신흥국 채권·주식·통화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블룸버그 보도와 골드만 삭스 자료를 AI 기반 텍스트 분석으로 분류해 보면, 신흥국 주식 및 통화 강세와 동시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달러 약세', '자산 다변화', '셀 아메리카'로 확인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2025년 첫 금리 인하에 나선 뒤 미국과 신흥국 간 금리 격차는 다시 벌어졌고, 미국 국채와 달러의 '무위험 자산' 지위는 재정 악화와 정치적 불확실성, 무역 갈등 재점화 속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셀 아메리카'에 금과 신흥국 통화 동반 상승 [AI 일러스트=황숙혜 기자] |
이 틈을 타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액 구성에서 달러 비중을 줄이고 금을 늘리는 장기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국제 통계와 여러 리서치를 종합하면 2006년 이후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금 보유는 160% 이상 늘었고, 브릭스(BRICS) 국가들을 중심으로 금 매입이 집중되면서 2025년 말 금 가격은 온스당 4400달러를 돌파한 뒤 올해 들어서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금은 위험 회피 수단일 뿐 아니라 달러 의존도를 줄이려는 국가들의 '정치적 자산'으로 재부상했고, 이 과정에서 금과 EM 통화가 동시에 강세를 보이는 이례적인 조합이 만들어지고 있다.
CNBC와 마켓워치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관세 정책과 그린란드 문제를 둘러싼 미·유럽 갈등이 격화되면서 월가에서는 다시 한 번 '셀 아메리카'라는 표현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에버코어ISI와 도이체방크 등은 최근 노트에서 유럽과 기타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과 국채, 달러 보유를 줄이는 움직임을 포착했다며, 이를 미국 자산 신뢰에 대한 구조적 질문의 신호라고 해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올린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 이미지는 '미국 영토'라고 적힌 그린란드 푯말 앞에 성조기를 들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이 담겼다. 그의 뒤에는 J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이 서있다. [사진=트럼프 트루스소셜] |
사실 탈달러화는 어느 날 갑자기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는 극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십여 년에 걸쳐 진행 중인 느린 추세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결제은행(BIS) 통계를 보면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은 1999년 70%대에서 최근 55% 안팎까지 줄어들었다. 절대적인 1위 지위는 유지되고 있지만 나머지 45%에서 유로·엔·위안뿐 아니라 금과 기타 통화, SDR 등으로 분산이 빠르게 진행되는 모습이다.
흐름을 가속한 것은 지정학적 이벤트다. 러시아의 외환 동결과 미국의 '무기화된 금융제재'를 지켜본 신흥국들은 달러 자산이 더 이상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브릭스를 중심으로 한 이들 국가는 역내 결제에서 자국 통화와 금을 활용하는 구상을 공개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일부는 원유나 원자재 거래를 달러가 아닌 현지 통화나 금 기준 가격으로 정산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골드만삭스는 신흥국 통화가 선진국 통화 대비 초과수익을 내고 있는 배경으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먼저, 많은 신흥국이 미국보다 높은 실질 금리를 제공하고 있어 캐리 트레이드 매력이 크다는 설명이다. 브라질과 멕시코, 인도네시아 등은 물가가 둔화되는 와중에도 정책 금리가 두 자릿수 혹은 고 한 자릿수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어 환헤지 비용을 감안해도 투자 매력이 두드러진다.
둘째, 미국 경제가 둔화 신호를 보이면서 달러가 경기 민감 통화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발 충격이 발생할 때 과거에는 달러 강세와 신흥국 통화 약세가 공식처럼 작동했지만 최근에는 미국 경제가 흔들릴수록 미 국채 금리 하락과 함께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신흥국 통화는 상대적으로 견고해 보이거나 오히려 강세를 보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신흥국 주식과 채권으로의 자금 유입이 자국 통화 강세를 추가로 부추기고 있다고 골드만 삭스는 설명한다. MSCI 신흥국 지수는 9개월 연속 상승했고, 골드만삭스는 12개월 목표치를 1480으로 상향 조정했다.
물론 신흥국으로 유입되는 자금의 속도는 지정학적 긴장이 커질수록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신흥국 자산 풀 자체가 미국만큼 깊지 않기 때문이다. 씨티그룹은 보고서에서 '스트레스의 정점'을 지난 뒤 유럽과의 성장 격차에 다시 초점이 맞춰지면 미국 시장이 여전히 일부 투자자들에겐 최우선 투자처로 남을 수 있다고 적었다.
다만, 보고서는 "탈달러화와 방만 재정이라는 두 가지 테마가 다시 돌아왔다"며 "탈달러화는 2025년과 마찬가지로 신흥국 자산의 위험 프리미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잠재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shhwa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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